[북클럽] 독자와 함께 춤을

곽아람 기자 2023. 3. 14. 00: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북클럽 뉴스레터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91200

너무 처리할 정보가 많아서 뇌가 하나로는 모자란다는 생각 해 본적 있으신가요?

저는 휴대전화를 집어들었다가 ‘내가 뭐 하려고 핸드폰을 들었더라?’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

컴퓨터를 열었다가 각종 이메일 처리하느라 바빠 원래 컴퓨터를 켠 목적을 잊는 일도 부지기수입니다.

미국 생산성 전문가가 쓴 ‘세컨드 브레인’은

“천재는 잘 기억하는 사람이 아니라 잘 기록하는 사람”이라는 전제 하에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핵심 정보만 기록하는 법에 대한 안내서입니다.

아마존 베스트셀러 1위와 월스트리트저널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한 책인데요.

그만큼 현대인들이 정보의 과부하로 허덕이고 있다는 방증이겠죠.

저자는 노벨상 수상한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의 예를 들면서

마음 속에 12개의 질문을 항상 유지하되

그 외 나머지는 ‘잘 잊어버리라’고 조언합니다.

그렇지만 12개 질문도 너무 많게 느껴지는 걸 보면,

세컨드 브레인 뿐 아니라 서드 브레인도 필요할지 모르겠군요.

창의력 꿈꾸는가? 12개 핵심 주제에 집중, 나머지는 잊어라

대부분의 베스트셀러는 기꺼이 수동적인 소비자가 되려는 독자를 염두에 두고 쓴 작품입니다. 표지의 선전 문구는 그 책이 지닌 위압적이고 공격적인 힘을 강조할 때가 많습니다. 책장을 넘기는 걸 멈출 수 없다, 가슴이 덜컹한다, 머릿속을 태운다, 심장이 멈출 것 같다 이게 뭐죠? 전기 충격 고문입니까?

어슐러 K. 르 귄(1929~2018)의 산문집 ‘마음에 이는 물결’에서 읽었습니다. 르 귄은 ‘SF판타지의 여왕’으로 불리는 미국 작가. 대표작 ‘어스시 연대기(Earthsea Cycle)’로 세계적인 팬층을 확보하고 있지요.

/현대문학 어슐러 K. 르 귄 산문집 '마음에 이는 물결'.

‘첫 번째 문단으로 독자를 사로잡아라’ ‘충격적인 장면으로 독자를 강타하라’ ‘독자에게 숨 쉴 시간을 주면 안 된다’…. 글쓰기 책에 으레 나오는 베스트셀러 작법이지만 르 귄은 이를 “무서운 개를 풀어놓는 것 같다”며 비판합니다.

르 귄은 “독자를 무력한 희생자나 수동적 소비자가 아니라 적극적이고 똑똑해서 협업할 가치가 있는 상대로 보는 작가들은 언어 공격과 포격 없이도 독자를 주의를 끄는 것이 가능하다 믿는다”고 말합니다.

상대를 억지로 범하지 않고 함께 춤을 추는 겁니다. 이야기를 춤으로, 독자와 작가를 함께 춤추는 파트너로 생각해보세요. 작가가 춤을 이끄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이끄는 것과 밀어붙이는 것은 다릅니다.
아르헨티나 탱고 챔피언들의 스승으로 불리는 바네사 비샬바(왼쪽)와 파쿤도 피녜로 /마포문화재단

글쓰기도 의사소통이라는 걸 많은 이들이 간과하지만, 누군가 내 이야기에 귀기울여주길 바란다면 상대를 대등한 존재로 여기는 게 우선이겠죠. 르 귄은 말합니다. “작가에게 얻어맞고 전기 충격을 받은 경험밖에 없는 독자라면 조금 연습이 필요할지 모르지만, 일단 춤 추기를 시도해 본 뒤에는 ‘무서운 개들’ 사이로 결코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기자들도 르 귄과 같은 고민을 자주 합니다. 기사 첫 머리인 ‘리드(lead)’로 강렬하게 독자들의 시선을 붙잡고, 업계 용어로 ‘야마’라고 하는 확실한 주제에 따라 기사를 써야 한다는 것이 기사의 정석처럼 되어 있지만 과연 모든 기사를 그렇게 쓰는 것이 옳은가, 하고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단어와 문장이 이미 세상에 넘쳐 나기에, 담백하고 슴슴한 말들로 독자들과 소통하고픈 갈망이 그 어느 때보다 더 큰지도 모르겠습니다. 독자 여러분과 함께 춤을, 꼭 르 귄이 말하는 탱고가 아니더라도, 오랫동안 함께 추고 싶습니다.

곽아람 Books 팀장

북클럽 뉴스레터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91200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