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 평교사들 따돌림으로 투신한 아내, 도와달라” 호소…어린이집 “진상 조사 계획”

김수연 2023. 3. 13.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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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 모 어린이집 주임 교사 극단 선택…남편 “'자격증 출신'이라며 괴롭혀” 국회 청원
충남 계룡의 한 어린이집 교사가 극단 선택 사흘 전 받은 진단서. 남편 박모씨 제공
 
충남 계룡시의 한 국·공립 어린이집 소속 보육 교사가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다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숨진 교사의 남편은 아내가 대학에서 관련 학과를 졸업하지 않고 자격증을 취득해 보육 교사가 됐다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해왔다며 진상 규명을 호소했다. 해당 어린이집은 조만간 외부 공인 노무사를 중심으로 한 진상 조사에 착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13일 국회 국민동의 청원 게시판에 따르면 숨진 교사의 남편 박모씨는 “국공립 어린이집 주임 교사를 평교사 간 집단 모의 역갑질(따돌림)로 자살을 유도한 사건을 도와달라”며 “저는 육군 중령 박○○, 제 아내는 국공립 계룡 모 어린이집 주임 교사였던 故 ○○○”라며 자신과 아내의 실명을 공개했다.

이어 “실명 공개로 인한 불이익보다 아내의 명예 회복과 남은 세아이가 겪어야 할 시선과 말들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이 더 큰 가치가 있다”고 했다.

박씨에 따르면 아내 A씨는 2021년부터 계룡시의 한 국공립 어린이집에서 주임급 보육 교사로 근무해왔다. A씨는 대학에서 관련 학과를 졸업하지 않았지만, 자격증을 취득해 8년간 경력을 쌓은 점을 인정받아 주임 교사로 채용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동료 평교사들은 자신들과 달리 대학 관련 학과를 졸업하지 않은 A씨가 주임 교사를 맡았다는 점을 문제 삼기 시작했다는 게 남편의 전언이다.

A씨가 남긴 고충 신고서에 따르면 가해자들은 A씨가 업무를 지시하면 응대하지 않거나 서류철 표지 제작 등 기초적인 업무조차 “할 줄 모른다”며 따르지 않았다.

“저 사람을 주임으로 인정해야 하느냐”는 말을 들리도록 하거나, 공식 회의에서조차 “주임은 B선생님(따돌림을 주도한 평교사)이 해야 하는데”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교사실 정리 등 모두 함께해야 하는 업무가 있을 때에는 A씨만 남겨놓고 자리를 떠나기도 했다고 한다. 주
말이나 야간 근무도 모두 A씨 몫이었다. 학부모가 교사 상담을 요청하면 주임 교사에게 알려야 하지만, A씨에게 알리지 않고 그냥 돌려보내 업무상 곤란함을 겪게 하기도 했다.

커피를 마시거나 간식을 먹을 때도 A씨만 빼놓았다.

대화를 하다 A씨가 오면 뚝 그치거나, A씨 눈 앞에서 문을 닫아 버리는 등의 행동도 부지기수였다.
극단 선택한 어린이집 보육 교사의 남편 박모씨가 지난 10일 국회 국민동의 청원에 올린 호소문.
 
이들은 오히려 A씨가 다른 교사들을 괴롭혔다며 고충 신고서를 내기까지 했다. A씨가 업무 분장 시 평교사들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았다는 게 이유였다.

따돌림을 주도한 것으로 의심되는 B씨는 “내 남편이 모욕과 명예훼손으로 당신을 고소할 것”이라는 협박도 했다고 한다.

A씨는 지난해 한국어린이집총연합회 표창을 받았고, 어린이집 인증 평가에서도 만점 수준으로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힘들었던 한해를 마친 A씨는 원장에게 주임 역할을 더 이상 하지 못하겠다고 건의했으나 “할 사람이 없다”며 연임을 지시했다고 한다.

A씨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주임을 맡게 되자 괴롭힘과 따돌림이 더욱 강해졌다는 게 유족의 주장이다.

박씨는 “아내가 출근하기를 두려워했고, 어린이집 주차장에서 한동안 들어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힘들어하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A씨 진단서에는 ‘직장 내 스트레스로 인한 불면, 불안, 무의욕감 등의 다양한 증상으로 내원한 환자’라는 내용이 적혔다.

A씨가 극단적인 선택은 한 날은 그간 당했던 따돌림 행위를 적은 고충 신고서를 제출한 날이었다. 그러나 그날마저 A씨는 오후 10시가 넘도록 어린이집에서 홀로 야근을 해야 했다.

A씨가 남긴 마지막 말은 “새 학기 준비를 마치지 못해 휴일인 내일(3월1일)도 최종 점검을 해야 한다”며 “아이들을 잘 봐달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A씨는 남편, 세자녀와 함께 살던 아파트 1층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박씨는 “모성애가 강한 아내는, 엄마가 없으면 아이들 기가 죽는다며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부모 참여 수업 등에 꼭 참여하곤 했다”며 “직장 내 괴롭힘이 아니었다면 아이들을 남겨두고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사람”이라고 분노했다.

이어 “가해자들은 자신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무엇을 잘못했는지 전혀 모르고 있다”며 “오히려 장례 후 아내가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라는 소문까지 들려온다”고 호소했다.

아울러 “가해 교사들이 법과 규정에 따라 처리되고 실추된 아내의 명예가 회복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이와 관련해 해당 어린이집 측은 “진상 조사에 착수할 예정”이라며 “유족 측에서 외부 공인 노무사를 선임하기를 원해서 상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나아가 “선임이 이뤄지면 교사들이 조사받을 것”이라며 “다른 교직원들의 충격도 큰 상태”라며 심리적 지원 계획을 밝혔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자살예방 핫라인 1577-0199,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김수연 기자 sooy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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