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만난세상] ‘한글책임교육’ 한다던 학교의 배신

김희원 2023. 3. 13.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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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연재가 시작된 '초등생활탐구' 첫 기사에 대한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예비 초등 부모가 가장 궁금해하는 것 중 하나인 '입학 전 한글 공부'에 관한 기사였는데, 부모들은 "이런 거짓 기사 쓰지 마라. 학교에서 한글 못 배운다", "한글뿐 아니라 다른 과목도 학원 안 가면 수업 못 쫓아간다. 공교육 문제 많다" 등 격한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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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연재가 시작된 ‘초등생활탐구’ 첫 기사에 대한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공감 아닌 공분(公憤)이 말이다.

예비 초등 부모가 가장 궁금해하는 것 중 하나인 ‘입학 전 한글 공부’에 관한 기사였는데, 부모들은 “이런 거짓 기사 쓰지 마라. 학교에서 한글 못 배운다”, “한글뿐 아니라 다른 과목도 학원 안 가면 수업 못 쫓아간다. 공교육 문제 많다” 등 격한 반응을 보였다.
김희원 이슈부 기자
예상보다 훨씬 거센 비판에 그 이유가 궁금해졌다. 기사에는 ‘입학 전 일부러 한글 공부를 할 필요는 없다’는 교사와 ‘미리 공부하고 오는 것이 도움될 수 있다’는 교사의 각기 다른 의견이 실렸지만, 댓글은 온통 ‘안 가르쳐도 된다’는 말에만 분노를 쏟아내고 있었다.

부모들은 이미 공교육에 ‘배신’당한 경험이 상당해 보였다. “입학하자마자 담임교사가 ‘누가 제일 잘 쓰나 보자’며 받아쓰기를 시켜 한글을 미리 배우지 않은 우리 아이는 울어버렸다”는 사연에는 나도 화가 났다. 그러면서도 ‘일부 교사들의 문제일 것’이라 생각했다.

이런 믿음은 내 아이를 입학시키면서 바로 깨졌다.

입학식 날 교장선생님은 운동장에 선 1학년 아이들에게 “교문에 걸린 현수막 문장을 다 함께 읽어보자”고 했다. 아이들의 입학을 축하하고 환영하는 아름다운 내용이었지만 읽지 못해 주눅 든 아이들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다음날 담임선생님은 알림장에 ‘아침에 읽을 책을 가져오라’면서 ‘만화책은 안 된다’고 했다. 일찍이 독서습관을 기르자는 좋은 취지겠지만 이 역시 한글 공부를 하지 않고 입학한 어떤 아이에겐 두려운 일 아닐까.

수업 계획표를 보니 입학 넷째날이 되어서야 아이들은 ㄱ, ㄴ, ㄷ을 배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교사들은 이미 입학식 당일부터 아이들이 한글을 읽을 수 있을 것이라 전제하고 있지 않았나. 이런 상황에서 ㄱ, ㄴ, ㄷ부터 가르치는 수업은 어떨지 궁금하다. “가르치긴 하는데 일주일간 시늉만 내더라”던 한 부모 비판이 현실이 되는 것 아닐까.

요즘 아이들 대부분이 한글을 미리 배우고 입학하는 것은 맞다. 2020년 교육부 설문조사 결과 예비 초등 부모의 87%가 “한글을 가르치고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국가 교육과정에서 문자를 처음 배우는 때는 초등 1학년이다. 사립 교육기관에서는 자체적으로 한글 수업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지만, 국공립 어린이집과 유치원의 누리과정에서는 한글을 가르치지 않는다.

앞으로도 누리과정에 한글이 포함될 가능성은 작다. 많은 부모가 취학 전 한글 학습을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는 반대하는 입장이다. 이른 시기에 문자를 학습하는 것은 아이들의 고른 두뇌 발달에 도움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변해야 할 것은 학교다. 한글은 초등 1학년 때 배워도 늦지 않으며, 입학할 때 한글을 읽지 못해도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는 믿음을 학교가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줘야 한다. 학교마저 87%의 한글 선행을 당연히 여기고 ‘한글책임교육’ 시늉만 내는 것은 공교육에 대한 13%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많은 학교가 이런 식으로 공교육 불신을 자초하고 있다. 학교는 ‘책임’이란 단어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김희원 이슈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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