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정부, 법치 유린을 멈추라

한겨레 2023. 3. 13.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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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일제 강제동원]강제동원 해법 어떻게 볼 것인가 ③
지난 11일 오후 서울 중구 시청광장 동편에서 열린 ‘강제동원 굴욕해법 강행 규탄 및 일본의 사죄배상 촉구 2차 범국민대회’에서 참석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혜윤 기자

김창록 ㅣ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박진 외교부 장관은 3월6일 강제동원 문제에 관한 정부의 ‘해법’을 발표하면서 일본이 “법치라는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가장 가까운 이웃”이라는 점을, 해법을 내놓은 근거의 하나로 들었다. 일본 정부도 한국 대법원의 강제동원 배상 판결이 국제‘법’을 위반했다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한·일 두 정부가 ‘법치’라는 구호 아래 ‘대동단결’한 형국이다.

2018년 10월30일 일본 전범 기업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대한민국 대법원 판결이 선고된 직후부터 일본 정부는 판결이 “국제법 위반”이라고 비난했다. 일본이 말하는 국제법은 1965년 체결된 한-일 청구권 협정이라는 양자 조약이다. 하지만 대법원 판결은 조약 해석에 관한 기본 원칙을 정한 국제법인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 협약’에 따라 청구권 협정의 조문을 상세하고도 타당하게 해석한 것이다. 그런데도 일본 정부는 일체의 근거 제시 없이 청구권 협정의 조문만을 내밀며 판결을 공격했다.

일본 정부야말로 청구권 협정을 부당하게 동원해 한국의 사법 주권을 침해하고 있으며, 주권 상호 존중이라는 국제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규범을 어기고 있는 것이다. ‘1965년 국교 정상화 이후 최악’이라고 일컬어진 한-일 갈등은 국제법에 따른 대법원 판결 때문이 아니라, 국제법을 위반한 일본 정부의 부당한 공격 때문에 생겨난 것이며, 그것이야말로 사태의 핵심이다.

한국 정부의 ‘해법’도 ‘반법치’이기는 마찬가지다. ‘제3자 변제’ 등 생경한 법률용어로 치장하고 있지만, ‘해법’의 핵심은 판결이 선고한 일본 기업의 손해배상 책임을 면제해주는 것이다. 대법원은 일제의 한반도 지배는 헌법 전문이 규정한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에 비춰 불법 강점이며, 강제동원은 불법 강점에 직결된 반인도적 불법행위로 청구권 협정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판시했다. 한국 정부의 ‘해법’은 이를 부정한 것으로 헌법 위반이다.

한국 정부는 북핵 등 안보 상황을 내세우지만, 그것이 이렇게 일본 정부에 전면 투항해야 하는 근거는 되지 못한다. ‘고령의 피해자를 위해 신속하게’라고도 주장하지만, ‘외교 교섭을 하고 있으니 매각 명령에 관한 재항고 사건에 대해 결정을 미루어달라’고 대법원에 의견서를 제출해 결정을 지연시키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한국 정부다.

한국 정부는 고령의 피해자를 위한다면서, 이미 대법원에서 승소 확정판결을 받은 피해자들과 진행 중인 60여건의 소송에서 승소가 확정되는 피해자들에게만 돈을 주겠다고 한다. ‘대법원 승소 판결까지 받아 오면 일본 기업 대신 돈을 주겠다’라는 것이 어찌 고령의 피해자를 위한 신속한 해결인가? 이는 일본 기업의 책임을 면제해주는 것이 ‘해법’의 절대 목적이라는 사실을 자인한 것에 불과하다.

정부가 제시한 해법은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일본 기업 대신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돈을 준다는 것인데, 재단 설치의 근거법인 ‘강제동원 특별법’에 따르면 청구권 협정과 관련이 없는, 일본 기업의 책임을 면제해주는 것은 법률의 목적 범위를 벗어난 것이다.

아울러 재원은 한-일 청구권 자금 수혜를 본 한국 기업의 ‘자발적 기여’로 마련한다는데, 대법원 판결에 따르면 강제동원은 청구권 협정의 적용 대상이 아니다. 그러므로, 청구권 협정에 따라 일본 정부로부터 받은 무상 3억달러는 강제동원과 관련이 없고, 그 무상 3억달러로부터 지원을 받은 포스코 등 한국 기업은 강제동원 문제에 관해 책임이 없다. 따라서 한국 기업들이 일본 기업의 채무를 대신 변제하기 위해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에 돈을 출연하는 것은 배임이 될 수 있다.

한·일 정부는 ‘법치’라는 구호를 내걸며 실은 ‘반법치’로 나아가고 있다.

이것이 한국과 일본이 지향해야 할 미래의 모습일 수는 없다. 일본 정부는 한국 대법원 판결에 대한 부당한 공격을 멈춰야 한다. 한국 정부는 대법원 판결을 부정하는 ‘해법’을 즉각 철회해야 한다. 대법원은 최종 결정을 서둘러 신속하게 판결이 집행되게 함으로써, 인권을 지키는 최후 보루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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