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칼럼] 누구를 위한 `공동소송 대리`인가

2023. 3. 13.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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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기 ICT과학부 차장

변리업계가 연일 시끄럽다. 지난 20년 간 변리업계의 최대 숙원이자 현안인 '공동소송 대리'를 둘러싼 책임 공방이 엉뚱한 곳으로 튀고 있다. 그동안 공동소송 대리 도입에 같은 입장을 견지해 왔던 대한변리사회와 지식재산 주무 부처인 특허청 간 갈등 구도로 번지고 있기 때문이다.

변리사회 입장에서 같은 편이라고 생각했던 특허청이 갑작스럽게 등을 돌린 데 대한 격한 반응이 지난달 24일 열린 대한변리사회 정기총회에서 폭발했다. 이번 정기총회에는 변리사회의 관리·감독기관의 수장인 이인실 특허청장이 이례적으로 참석하지 않았다. 변리사회 측은 행사 전날 특허청에 "청장님이 총회에 참석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사실상 참석 불가 통보를 했다는 얘기도 나올 정도다.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한 해의 중요한 사안을 결정하는 총회는 후반부로 갈수록 특허청과 이인실 청장을 성토하는 장으로 바뀌었다. 급기야 변리사회의 관리·감독기관을 특허청에서 산업통상자원부로 변경하는 긴급 안건이 상정·의결됐고, 회원들은 이 청장의 퇴진 촉구 운동에 의견을 모았다. 여느 정기총회 때와 사뭇 다른 분위기가 연출된 셈이다. 총회 참석 변리사도 예년보다 많은 400명이 훌쩍 넘어 행사장을 꽉 채웠을 정도였다.

왜 이렇게 변리사회와 특허청 사이에 신뢰가 깨지게 됐을까. 총회 전날(2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공동소송 대리'를 골자로 한 변리사법 개정안 논의 과정에서 이 청장의 애매모호한 입장과 발언이 변리사회가 등을 돌리게 된 결정적 이유가 됐다.

이 청장은 법사위 위원들이 법 개정 필요성을 묻는 질의에 "산업계와 과학기술계의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는 애초와 결이 다른 발언을 해 변리사들의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지난 2009년 이후 14년 만에 법사위에 어렵게 상정된 개정안의 통과를 기대했던 것과 달리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후 개정안은 좀 더 깊이 있는 토론을 위해 '법안의 무덤'으로 불리는 법안심사 제2소위로 회부됐다. 그러자 변리사회는 즉각 반발하며 특허청장의 퇴진 촉구 집회까지 열게 됐다.

공동소송 대리는 특허분쟁소송에 있어 기술 전문성을 갖춘 '변리사'와 법률 전문가인 '변호사'를 법률 소비자 선택에 따라 대리할 수 있도록 선택권을 부여한 제도다. 17대 국회에서 처음 발의됐지만, 변리사에 비해 막강한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법조계 반대에 부딪혀 지난 20대 국회까지 연이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폐기됐다.

이렇듯 발의와 폐기를 반복해 온 공동소송 대리는 전문가 집단인 변리사와 변호사 간 '밥그릇 싸움'이자 '직역 다툼'으로 비춰지면서 일반 국민들의 관심과 공감을 얻지 못한 측면이 있다. 더 중요한 것은 법안의 최종 고객이자 법률 소비자인 과학기술계와 산업계의 보다 강력한 지지와 행동도 이끌어 내지 못해 법조계를 설득하지 못한 점은 분명 특허청과 변리사회에 책임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변리사회와 특허청이 대립하는 것은 상황을 더 악화시킬 뿐이다. 나아가 이런 갈등 구도가 공동소송 대리를 오히려 '직역 다툼' 프레임에 갇히게 해 반대측에 좋은 빌미가 될 수 있다. 법조계와 법무부, 법원행정처는 변리사회와 특허청이 계속 갈등하길 내심 바랄 것이다.

오는 6월 출범하는 유럽통합특허법원(UPC)이 우리에게 좋은 사례가 될 것 같다. UPC 출범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유럽 변리사도, 유럽특허청도 아닌 유럽 내 노키아, 아스트라제네카 등 37개사로 구성된 'IP 기업 연합'이다. 즉, 기업의 요구인 동시에 법률 소비자가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주장과 요구는 간결했다. "유럽의 미래를 담보하는 기술 중심 중소기업에 더 넓은 선택권과 정의에 대한 더 나은 접근성을 보장하기 위해 적절한 소송 수행 자격을 갖춘 유럽 변리사(EPA)에게 소송 대리권을 인정하는 것을 강력 지지한다"는 내용이다. 변리사회와 특허청이 그토록 바라던 공동소송 대리가 진정 누구를 위한 것인지 곰곰히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이준기 ICT과학부 차장 bongchu@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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