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밤 긴급대책 쏟아낸 美당국 …"제2 리먼사태 없을것"

권한울 기자(hanfence@mk.co.kr) 2023. 3. 13.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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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금융위기와는 다른 'SVB 파산사태' 향배는

◆ SVB 파산 쇼크 ◆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여파로 12일(현지시간) 뉴욕시 소재 시그니처은행이 연쇄 파산한 가운데 한 직원이 시그니처은행 본사에 커피를 들고 들어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가 2008년 세계 금융위기의 악몽을 소환했지만 실제로 글로벌 금융 시스템 위기로는 번지지 않을 것이라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SVB의 초고속 파산 소식에 이어 지난 9일(현지시간)에는 가상화폐에 특화된 미국 29위 은행 시그니처뱅크까지 연쇄 도산하면서 전 세계 금융권이 술렁였다. 하지만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미 언론은 2008년 금융위기를 촉발시킨 리먼 브러더스 사태와는 여러모로 다르다고 지적했다. 파산 원인과 미 당국의 대처, 금융 시스템 등 세 가지 요인을 감안할 때 15년 전처럼 위기가 전방위적으로 확산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것이다.

우선 은행이 파산에 이르게 된 이유가 크게 다르다. 2008년 투자은행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은 미국 부동산 가격 하락에 따른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이 도화선이 됐고, 이 영향으로 다른 투자은행까지 줄줄이 파산하며 세계 금융위기로 번졌다. 하지만 이번 SVB 파산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공격적으로 기준금리를 인상한 영향이 컸다. SVB는 막대한 예금을 받아 미국 장기국채라는 초우량 안전자산에 투자했으나 연준의 긴축으로 국채금리가 상승(국채 가격 하락)하면서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자금 인출이 이어지면서 국채를 강제 매각하는 상황에 몰리며 손실을 떠안게 됐다.

미 플로리다대 재무 전문가인 제이 R 리터 교수는 워싱턴포스트에 "SVB를 둘러싼 염려는 갚을 능력 이상으로 지출한 사람들의 탐욕으로 발생한 2008년의 상황과는 큰 차이가 있다"며 "SVB의 근본 문제는 최근의 금리 인상"이라고 지적했다. WSJ도 2008년 금융위기와 현재의 은행 부문에서 발생하는 긴장은 크게 다르다고 분석했다. WSJ는 "SVB가 투자한 채권은 만기 시 전액 상환이 보장된다는 점에서 2008년 금융시장을 몰락시켰던 위험성이 큰 주택담보대출과 관련된 복잡한 신용상품과는 거리가 멀다"고 평가했다.

미 정부의 신속한 대응도 2008년과는 확연히 달랐다. 미 금융당국은 이날 SVB에 고객이 맡긴 돈을 보험 대상 한도와 무관하게 전액 보증하고 유동성이 부족한 금융기관에 자금을 대출하기로 했다.

미 재무부와 중앙은행인 연준,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는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공동 성명을 발표하며 SVB 사태가 금융 시스템 전체의 위기로 확산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적극 개입하기로 했다. 2008년 미국 금융위기는 전 세계 부동산과 주가 하락, 소비 위축, 투자·고용 감소로 이어지며 세계적인 실물경기 침체로 전이된 바 있다.

재닛 옐런 재무부 장관도 이날 CBS 방송에 출연해 상황이 15년 전과는 다르다고 강조하면서 "미국의 은행 시스템은 정말로 안전하고 자본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구제금융이나 공적자금 지원을 배제했다는 점도 눈에 띈다. 미 정부가 이번에 발표한 조치는 예금보험 대상에서 제외된 은행 고객을 보호하고 다른 은행들의 뱅크런(대량 인출 사태)을 예방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으로, 2008년 이뤄진 구제금융이나 공적자금 지원은 배제됐다.

미 정부는 2008년 7000억달러 규모의 구제금융을 조성한 바 있다. 납세자의 돈으로 월스트리트의 빚을 갚아주는 것인데 이때 '도덕적 해이' 논란이 거세지고 연방정부 부채 확대에 거부감이 큰 공화당의 반대가 예상된다는 점을 고려해 예금주들만 살리는 쪽으로 정부 지원을 최소화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아울러 연준은 은행에 유동성을 지원하기 위한 새로운 기금(BTFP)을 조성하기로 했다. 은행이 국채, 모기지 담보 채권, 기타 증권을 연준에 담보로 제공하고 최장 1년간 연준에서 현금을 대출받을 수 있도록 한 조치다. SVB처럼 미실현 손실이 난 미 국채를 시장에 팔아 어려움을 겪지 않고,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길을 연 것이다. 이번 금융당국의 발 빠른 폐쇄 조치와 BTFP 기금 정책으로 시장은 큰 고비를 넘겼다는 평가다.

SVB의 영국 자회사도 HSBC에 매각되며 유동성 위기가 일단락됐다. 파이낸셜타임스는 13일 "HSBC가 밤사이 SVB 영국 자회사 백기사로 나타났다"며 "이번 협상에는 영국 정부와 중앙은행인 영란은행도 참여했다"고 보도했다. 인수가는 1파운드(약 1578원)로 알려졌다. CNN은 영란은행의 성명을 인용해 "모회사의 파산으로 파산 상태에 놓인 SVB UK의 예금이 안전해졌다"고 전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금융 분야의 규제가 강화되면서 은행들의 건전성이 높아진 것도 SVB 파산에 따른 위기가 제한적일 것이라는 관측에 힘을 싣고 있다.

[권한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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