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동정담] 어느 세입자의 죽음
지난주 인천에서 전세 사기 피해자의 안타까운 죽음을 기리는 추모제가 열렸다. 빌라 등 2700여 채를 차명으로 보유하고 전세보증금을 가로챈 일당에게 보금자리를 빼앗긴 피해자는 30대 젊은 나이임에도 극단적 선택을 했다. 미추홀구 전세 사기 피해대책위원회는 추모제에서 "세입자의 삶을 파탄 낸 범죄자 일당을 엄중 처벌해 달라"고 호소했다.
고인은 2년 전 보증금 7000만원에 전세계약을 맺었다. 최근 집이 경매로 넘어가면서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르면 소액 임차인은 전셋집이 경매에 넘어가더라도 다른 채권에 우선해 보증금 일부를 돌려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이 제도마저 기댈 수 없었다. 그의 전셋집에 근저당이 설정됐을 때 인천 지역 소액 임차인 기준은 '보증금 6500만원 이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피해자 상담센터를 찾았지만 저금리 대출, 임시 거주지 지원과 같은 답변을 들었다고 한다.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소액 임차인 기준이 500만원 더 높았더라면 그가 희망의 끈을 놓아버렸을까. 전세 사기 사건이 불거진 뒤 정부가 지난달 소액 임차인 대상과 우선변제액을 올렸지만, 여전히 부족하다. 서울의 경우 보증금 1억6500만원 이하 임차인에게 5500만원까지 우선변제해준다. 인천 등 광역시는 보증금이 8500만원을 넘지 않아야 한다. 서울에서 1억6500만원 이하 전세 비율이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그마저 전세 사기를 당해도 3분의 1만 보장해주는 셈이다.
정부와 국회가 전세 사기 대책을 쏟아내는 가운데 젊은 피해자의 죽음은 정부 대책이 아직 갈 길이 멀었음을 보여준다. 악덕 임대인 신상 공개 같은 새로운 아이디어도 의미 있지만, 기존의 세입자 보호제도 취지를 살리는 것도 중요하다. 소액 임차인 기준을 현실화하거나 보증금이 얼마건 최소한의 우선변제권을 인정해주는 게 공정과 상식이다. 그래야 이번 같은 비극이 반복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박만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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