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안 가려고 ‘뇌전증 시나리오’ 샀다...연예인·의사·공무원 등 137명 기소

김민소 기자 입력 2023. 3. 13. 14:42 수정 2023. 3. 13.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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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전증 환자 행세 하며 병역 감면
브로커 2명, 병역면탈자 108명 등 기소
배우·운동선수·대형로펌 변호사 등 적발
사회복무요원 근태 조작한 공무원 구속

‘뇌전증 병역비리’에 가담한 137명이 재판에 넘겨졌다. 병역면탈자들 중에는 운동선수, 연예인, 의사,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 아들 등이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뇌전증 병역비리는 허위로 뇌전증을 진단받아 병역을 감면받는 수법이다.

서울남부지검과 병무청이 꾸린 병역면탈 합동수사팀은 13일 병역면탈사범 67명을 추가로 기소하고 이 사건 종합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13일 오전 서울 양천구 남부지검 브리핑룸에 선 서울남부지검·병무청 병역면탈 합동수사팀./김민소 기자

이날 병역법 위반·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은 브로커 구모(47)씨와 김모(38)씨, 병역면탈자 50명, 공범 및 관련자 15명 등 총 67명이다.

앞서 검찰과 병무청은 지난해 12월 합동수사팀을 만들어 올해 1월부터 3월까지 브로커 구씨와 김씨, 프로배구선수 조재성씨, 배우 송덕호씨 등 70명을 재판에 넘겼다.

합동수사팀은 브로커 구씨와 김씨에게서 16억 상당의 범죄수익도 추징보전했다. 이들에게 금전적 대가를 제공하고 병역을 감면받은 면탈자들은 모두 108명이다.

공문서를 조작한 공무원 2명도 구속기소됐다. 이들은 서초구청 사회복무요원인 래퍼 나플라(본명 최석배)의 병역면탈 시도를 도운 혐의를 받는다.

◇ 현역 판정 받았지만... ‘뇌전증 시나리오’로 병역 감면

뇌전증 병역비리 범행 수법/병무청 제공

병역면탈 시도는 주로 이미 한 차례 병역 판정을 받은 이들에게서 나타났다. 현역 또는 보충역(사회복무요원) 처분을 받은 병역의무자들이 입영 직전이나 입영을 미루는 과정에서 뇌전증을 이용해 병역을 감면받은 것이다. 108명의 병역면탈자 가운데 103명이 이 같은 경우에 속했다.

브로커들은 군 입대를 앞둔 사람에게 수백에서 수천만원을 받고 의료기관과 병무청을 속일 만한 ‘뇌전증 시나리오’를 제공했다. 1~2년간의 상담을 통해 개인병원에서부터 대형병원까지 가는 맞춤형 시나리오를 제공했으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의뢰인의 경우 119에 허위 신고를 하는 방법까지 동원해 가짜 진단서를 받게 했다.

병역의무자들의 가족 등 주변인이 동원되기도 했다. 목격자 역할을 맡은 이들은 병역면탈자들이 실제로 뇌전증 증세를 겼었던 것처럼 의료기관에서 허위 진술을 했다. 합동수사팀은 이처럼 허위로 목격자 행세를 하거나, 더 나아가 대가를 지급하고 직접 계약을 체결하는 등 범행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주변인들 역시 공범으로 기소했다.

◇ 래퍼 나플라 ‘소집해제’ 위해 공문서 조작한 정황도

나플라

합동수사팀은 브로커 구씨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사회복무요원의 근태를 담당하는 공무원들의 병역비리 정황도 포착했다.

검찰은 서초구청 사회복무요원인 래퍼 나플라와 서울지방병무청 복무담당관 강모(58)씨, 서울 서초구청 공무원 염모(58)씨 등 3명을 병역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이들은 나플라의 사회복무요원 근태 기록을 꾸며내 병역면탈을 시도한 혐의를 받는다.

나플라는 자신의 소속사 대표 김모(37)씨와 함께 브로커 구씨에게 조기 소집해제를 의뢰했다. 구씨의 계획에 따라 우울증이 악화한 것처럼 허위 진단서를 발급받았으며 이를 빌미로 소집 해제를 수회 시도했다.

공무원들은 나플라의 조기 소집해제를 돕기 위해 출근 기록을 조작했다. 나플라가 제대로 출근을 하지 않은 날에도 정상 근무를 한 것처럼 141일간의 일일복무상황부를 꾸며냈다. 정상 근무를 하면서 우울증 등 정신질환을 호소해 지각과 조퇴가 불가피했다는 내용을 지어내기도 했다.

◇ “병역판정 기준 구체화하고 단속 강화할 것”

병무청은 이번 합동 수사 결과를 토대로 ‘병역면탈 방지 종합대책’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신체등급 판정 기준을 구체화하고 병역면탈에 대한 단속을 강화한다는 것이 종합대책의 골자다.

뇌전증 판정 기준도 바뀔 예정이다. 약물 복용 여부를 기존에는 소변검사로만 판별했다면, 앞으로는 혈액검사를 추가해 약물을 지속적으로 복용했는지 확인할 방침이다.

뇌전증 외에도 신체검사에서 4급에서 6급 판정이 증가한 질환은 ‘중점관리대상질환’으로 관리할 계획이다. 병역면탈 시도가 증가하거나 중점관리대상이 된 질환의 경우 중앙병역판정검사소에서 정밀 검사를 통해 신체등급을 최종 판정할 계획이다.

병역면탈 의심자에 대한 추적 역시 강화된다. 병무청은 병역면탈 통합 조기경보시스템을 구축해 의심자에 대한 데이터를 관리하고 이상 징후가 나타나는 이들을 색출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신체검사에서 4~6급을 받은 연예인, 체육선수 등을 별도관리 대상으로 두고 병역이행 과정을 검증하는 등 추적 관리에 나설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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