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애국심에 기대 인재 데려다 쓰는 시대 끝났다”...지방과 출연연 함께 사는 법

대전=최정석 기자 2023. 3. 13.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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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성 한국생명공학연구원장 인터뷰
코로나 치료제·백신 개발 위한 전임상 지원
“감염병 대응 체계 있지만 인력 부족이 문제”
“정부-지자체 벤처 협업 통해 인력 유출 막아야”
지난 7일 대구 유성구 한국생명공학연구원(생명연)에서 만난 김장성 원장.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제공

지난해는 한국 생명과학 연구계와 제약·바이오 업계에 기념할 큰 희소식이 날아 들었다. 정부가 5년간 25조원을 집중 투자해 기술수준을 대폭 끌어올리기로 공표한 12대 국가전략기술 중 하나로 ‘첨단 바이오’가 이름을 올린 것이다. 김장성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원장은 “한평생을 생명공학자로서 살아왔지만 지금만큼 이 분야가 주목받을 날이 올 거라고는 기대해본 적 없다”며 “정말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서울대학교 농생물학과를 졸업해 한국과학기술원(KAIST) 생화학 석사, 종양생물학 박사를 따고 미국 텍사스대 MD앤더슨암센터에서 박사 후 연구원을 지냈다. 이후 생명연에 책임연구원으로 들어와 미래연구정책본부장, 부원장을 거쳐 원장 자리까지 올랐다.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제약·바이오는 단순한 미래 먹거리를 넘어 사회 문제를 해결할 핵심 기술로 떠올랐다. 미국 제약사 화이자와 모더나를 비롯한 글로벌 대기업은 물론 SK바이오사이언스, 셀트리온과 같은 국내 기업들도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 열을 올리며 제약·바이오 산업은 ‘퀀텀 점프’에 성공했다.

지난 3년간 인류가 코로나19와 벌인 전쟁에서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일종의 무기 생산공장으로서 기능했다면 생명연은 무기 성능과 안전성을 확인하는 ‘사격장’ 역할을 맡았다. 2019년 11월 중국에서 코로나19 첫 감염이 확인된 지 5개월 만인 2020년 4월 생명연은 ‘코로나 영장류 감염 모델’을 개발했다. 중국, 네덜란드, 미국에 이어 전 세계 네 번째였다.

이 모델을 통해 동물실험(전임상)을 지원받아 성능과 안전성을 확인받은 제품이 국산 코로나19 1호 백신인 ‘스카이코비원’과 코로나19 치료제인 ‘렉키로나주’다. 이들을 포함해 총 11개의 백신·치료제 성분물질이 생명연에서 전임상을 통과해 임상 단계까지 넘어갔다. 생명연은 진단키트 제조업체들에 제품 성능 확인에 필요한 단백질을 만들어 제공하기도 했다.

코로나19 치료제‧백신 개발을 위한 영장류 감염 모델이 진행 중이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제공

그렇다면 어느 미래에 또 다른 팬데믹이 와도 이처럼 신속한 대처와 유의미한 성과를 내놓을 수 있을까. 김 원장은 이 부분을 우려하고 있었다. 제약·바이오는 물론 모든 산업계와 과학기술계가 맞닥뜨리고 있는 ‘인력 부족 문제’ 때문이다.

김 원장은 “코로나 영장류 감염 모델만 해도 생명연 정직원 2명, 박사 후 연구원 1명, 학생 연구원 3명 등 총 6명이 이뤄낸 기적같은 성과”라며 “해외 영장류 감염 모델 센터에는 박사급 인력만 몇 백명씩 근무하는데 우리는 사람이 없으니 불가피하게 소수정예로 운영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지방에 있는 정부출연 연구기관(출연연)은 어느 때보다 인력난을 강하게 실감하고 있다. 생명연도 마찬가지 처지다.

여전히 대다수 구직자들이 수도권 밖에 있는 일터를 선호하지 않는다. 만에 하나 지방에 내려간다고 해도 높은 연봉을 요구하면 이를 맞춰주기는 어렵다. 애국심에 기대 국가 기관에서 일해달라는 호소도 이제는 먹히지 않는 시대다.

김 원장은 “출연연이 서둘러 성격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완성된 인력보다는 학교를 갓 졸업해 실무 경험이 부족한 젊은 사람들을 데려와 키워내는 것이다. 이들을 지역 연구개발(R&D)특구에 들어와 있는 기업에 배출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선순환 구조를 그려야 한다고 김 원장은 설명했다.

김 원장은 “우선 지방 특구가 살아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해 50주년을 맞이한 대덕특구 재창조위원회 위원도 맡고 있는 김 원장은 특구의 새로운 미래를 위한 개편안 마련에 힘쓰고 있다. 김 원장을 이달 7일 대전 유성 생명연 집무실에서 만났다.

지난 7일 대구 유성구 한국생명공학연구원(생명연)에서 만난 김장성 원장. /생명연 제공

-팬데믹이 끝을 보이고 있다. 생명과학 분야에 특화한 출연연 원장으로서 감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

“출연연에서 오래 근무하긴 했지만 솔직히 누군가 ‘출연연의 역할이 뭐냐’고 물어보면 자신있게 대답하기 어려웠다. 출연연 역할이라는 게 추상적이고 애매한 부분이 있었다. 그런데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출연연이 국가와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방향성이 재정립됐다. 특히 백신이나 치료제와 같은 것들을 개발할 때 우리가 어떤 시스템을 만들어야 제약·바이오 기업들에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실질적으로 깨달았다.”

-국산 백신과 치료제 개발 과정에서 생명연이 어떤 역할을 했나.

“가장 대표적인 건 ‘코로나 영장류 감염 모델’을 빠른 시간 안에 완성해서 치료제와 백신 개발 과정에 필수적인 전임상 과정을 지원했다는 점이다. 최초 코로나19 발병 소식이 2019년 11월이었고 외신이 떠들썩해진 게 12월이었다. 사실 그때부터 심상치 않았다. 백신과 치료제를 만들어 허가를 받으려면 영장류를 이용한 전임상이 필수인데 만약 코로나19가 전 세계에 퍼지면 영장류 수입이 어려워질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곧바로 영장류 감염 모델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2020년 4월에 모델을 완성했는데 당시 이러한 모델을 보유한 국가가 중국, 네덜란드, 미국밖에 없었다.”

-국산 백신과 치료제가 생명연이 만든 전임상 모델을 거쳐 허가를 받은 건가.

“그렇다. SK바이오사이언스가 개발한 국산 1호 코로나19 백신 스카이코비원, 셀트리온이 개발한 코로나19 치료제 렉키로나주가 생명연을 거쳐 허가를 받은 제품들이다. 이들을 포함해 치료제용 물질 6개, 백신용 물질 5개의 성능과 안전성 시험을 생명연에서 해줬다. 이제 코로나가 거의 끝나면서 관련 치료제나 백신은 전임상 지원이 줄었지만 코로나 이외에 다른 감염병에 대해서는 여전히 지원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감염병 치료제와 백신을 개발해 허가를 받으려면 전임상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그래서 이 부분은 과기정통부 산하에 국가전임상시험지원센터를 만들어 개발을 돕고 있다.”

-다른 성과는 없나.

“진단시약과 진단키트를 만드는 과정에도 생명연이 도움을 줬다. 진단키트 유효성을 확인하려면 코로나19 항원을 비롯한 단백질들이 필요한데 이건 민간 기업에서는 생산이 어렵다. 그래서 생명연이 진단키트 성능 시험에 필요한 단백질들을 만들어 제공했다. 또 팬데믹 게임체인저였던 ‘mRNA(메신저 리보핵산) 백신’을 개발하는 과제도 돌입했다. mRNA 백신은 미국 펜실베니아대의 드루 와이즈먼 교수 연구팀이 처음 아이디어를 냈는데 현재 와이즈먼 교수 연구실에 소속된 젊은 연구자들과 국제 공동 연구를 진행 중이다. 우리도 mRNA 기술을 가지려면 이를 처음 만든 연구팀과 협력하는게 빠른 길이라고 생각했다.”

지난 7일 대구 유성구 한국생명공학연구원(생명연)에서 만난 김장성 원장.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제공

-코로나19를 계기로 다방면에서 체계가 잘 갖춰진 것 같다. 다음번 팬데믹 대응도 문제 없는 건가.

“그 부분은 장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시스템을 갖추는 것만큼 중요한 건 그 시스템을 효과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인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산업계나 과학기술계 가리지 않고 나오는 말이 ‘인력난’이다. 특히 바이오 분야는 더더욱 그렇다. 사실 최근 바이오 업계에서 각광받는 전공은 AI(인공지능)다. AI 기반 빅데이터 분석이 신약 후보물질 탐색이라든가 그런 쪽에서 필요한 데가 매우 많다. 그런데 국내 AI 전공자들은 전부 네이버, 카카오로 빠진다. 그쪽에서 주는 연봉을 제약·바이오 업계가 감당할 수가 없다. 또 생명연을 비롯한 출연연들이 대부분 지방에 있는데 사람들이 지방에서 일을 하지 않으려 한다. 인력이 서울과 수도권으로 계속 쏠리면서 지방 소멸이 가속화된다. 애국심에 호소하며 우수 인재를 데려다 쓰는 시대도 진작에 끝났다. 새로운 노력들이 필요하다.”

-그럼 인재를 어떻게 모아야 하나.

“지방이 일하기 좋은 곳, 살기 좋은 곳이 돼야 한다. 지금은 그러지를 못하니 지방 거점 대학교를 나온 인력들도 전부 서울과 수도권으로 빨려 들어간다. 지역 인재가 유출된다는 거다. 이를 막으려면 인재들이 지역 안에서 돌게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최근 충남대를 비롯한 지역 대학, 대학 병원들과 양해각서(MOU)를 열심히 맺고 있다. 대전에는 생명연이나 대기업에서 스핀오프한 벤처들이 상당수 있다. 이런 가운데 대학을 갓 졸업한 이들은 기업에서 당장 필요로 하는 인력이 아니다. 실무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그 부분을 출연연이 파고들어야 한다고 본다. 젊은 고학력자들을 출연연이 흡수해 기업이 원하는 수준까지 키워낸 후 배출해야 한다. 출연연에서 경험을 쌓은 인재들이 지역 벤처로 넘어가 회사를 성장시키면 더 많은 사람이 필요해질 것이고, 출연연에서 그 인력을 충당해준 뒤 대학에서 새로운 사람을 더 뽑는 선순환 구조를 그리고 있다.”

-출연연 혼자 고군분투한다고 될 일이 아닌 것 같은데.

“물론이다. 협력 기관들을 주변에 잘 깔아놓고 서로가 역할을 나눠서 가져가야 한다. 그런 점에서 대덕특구 역할이 중요하다고 본다. 올해 50주년을 맞이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함께 대덕 특구 혁신안을 만들고 있다. 이미 2021년 만든 대덕특구 재창조위원회에서 정부-기업 간 융합 과제를 진행하고 있는 것들이 있다. 50주년 혁신안에는 대덕특구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과학기술계의 향후 50년을 위한 계획과 정책들이 담길 예정이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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