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의 저주’ 우려에 전격 합의… ‘쩐의 전쟁’ SM 인수, 카카오 판정승 [SM 인수전 타결]

안승진 2023. 3. 13.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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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는 경영권, 하이브는 플랫폼 협력
하이브 “인수 중단” 카카오 “존중”
SM 지분경쟁에 양측 주가 하락 등 타격
하이브 “가격 적정 범위 넘어서” 백기
‘상황 정리 필요’ 공감대… 협상 급물살
카카오, 경영투명화 ‘SM 3.0’ 속도낼 듯
카카오, SM 팬 플랫폼 독자 구축 방침
하이브는 통합 주장… 협력 불씨 남아
“훼손된 K팝 이미지 회복부터” 지적

한 달여간 벌어진 SM엔터테인먼트 경영권 인수를 둘러싼 카카오와 하이브 간 분쟁이 카카오의 판정승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양사는 SM 경영권은 카카오가 갖고 하이브는 플랫폼 협력을 하는 방향으로 합의했다.

하이브는 12일 입장문을 통해 SM 인수 절차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앞서 하이브는 지난달 10일 주당 12만원에 이수만 전 SM 총괄 프로듀서의 지분 14.8%을 인수, 1대 주주에 올랐다. 하이브는 같은 가격에 SM 주식을 공개매수하는 식으로 SM 경영권 인수에 나섰는데, 공개매수 지분 획득이 0.98%에 그치면서 실패로 돌아갔다. 카카오는 그 전인 지난달 7일 SM 경영진과의 제휴를 통해 신주발행 등의 방식으로 SM 지분 9.05% 확보에 나섰지만, 이를 막아달라는 이수만의 요청을 법원이 받아들이면서 제동이 걸렸다. 이후 카카오도 SM 지분 공개매수에 나서며 두 회사 간 이른바 ‘쩐(錢)의 전쟁’이 벌어진 상태였다.
서울 성동구 SM엔터테인먼트 본사 모습. 연합뉴스
하이브는 “카카오·카카오엔터테인먼트와의 경쟁 구도로 인해 시장이 과열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고 판단했다”며 “하이브의 주주 가치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의사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카카오와 하이브는 양측 대립 격화로 SM 주가가 상승하면서 경영권을 가져도 자금난에 빠지는 ‘승자의 저주’ 우려 가능성에 최근 논의를 벌여왔다. 금융 당국이 실패로 돌아간 하이브의 공개매수 과정에서 시세 조종 등 불공정행위가 있었는지 살펴본 것도 양측 부담을 가중한 것으로 알려졌다.

카카오와 카카오엔터도 입장문을 통해 “하이브의 SM 인수 중단 결정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카카오는 “자율적·독립적 운영을 보장하고, 현 경영진이 제시한 SM 3.0을 비롯한 미래 비전과 전략 방향을 중심으로 글로벌 성장에 속도를 내겠다”고 했다. 카카오가 SM 지분 15% 이상을 취득할 경우,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 심사를 받는다.

카카오는 26일까지 SM 주식 833만3641주(발행 주식의 35%)를 주당 15만원에 공개매수해 최대주주에 오르게 될 전망이다. 공개매수에 성공하면 카카오는 SM 지분 39.9%를 확보한다. 하이브가 오는 31일 SM 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로 제시한 후보들은 사퇴 절차를 밟는다. 하이브가 이 전 프로듀서와 공개매수를 통해 확보한 지분 15.8%의 처분 계획은 이번 발표에서 제외됐다.

카카오와 제휴한 현 SM 경영진은 지난달 3일 발표한 ‘SM 3.0’ 전략에서 이 전 프로듀서의 SM 참여를 배제하기로 했다. SM 경영진은 이날 “하이브의 SM 경영권 인수 중단 결정을 존중한다”며 “SM 3.0 전략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자금 블랙홀 파국 막자”… 카카오 판정승, 하이브는 실리 챙겨

글로벌 한류 및 K팝 열풍을 선도한 SM엔터테인먼트 경영권을 둘러싸고 주식 인수전과 여론전을 펼쳐왔던 하이브와 카카오가 12일 극적으로 합의했다. SM 경영권은 카카오가 가져가기로 했으며, 이사진도 카카오와 SM 현 경영진이 추천한 후보들로 채워진다. 대신 하이브는 카카오와 플랫폼 협업이라는 실리를 취하기로 했다. 한 달가량 진행된 ‘쩐(錢)의 전쟁’에서 느끼는 피로감과 위기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번 인수전의 여파로 SM 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지난 1월 7만∼8만원을 오가던 SM의 주가는 카카오가 15만원에 공개매수를 밝힌 지난 7일에는 장중 16만1200원을 넘는 등 요동쳤다. 하이브가 제2차 공개매수에 도전하는 등 한쪽이 양보하지 않을 경우 양쪽 모두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 ‘치킨게임’ 양상으로 흘러가는 듯했다.
‘전략적 동맹’ 맺은 K팝 제국들 12일 SM엔터테인먼트 인수전에서 경영권을 갖게 된 카카오의 경기 성남시 판교 아지트 모습(왼쪽). 하이브는 플랫폼 협력을 하기로 하고 인수 절차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이러다 보니 하이브와 카카오 둘 중 누가 SM 경영권을 가져가더라도 SM의 기업 가치를 훌쩍 뛰어넘는 비싼 값을 치러 ‘승자의 저주’에 빠질 가능성이 제기됐다. 그 영향으로 하이브와 카카오 주가가 떨어지는 등 주주들 피해도 우려되자 ‘현 상황을 정리하자’는 양측의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분석된다.

무엇보다 하이브가 카카오와 인수전을 포기한 가장 큰 원인은 자금력으로 보인다. 카카오가 제시한 주당 15만원을 뛰어넘는 수준의 공개매수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1조원이 훌쩍 넘는 자금이 필요했다. 김현용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하이브의 지난해 9월 말 기준 가용 현금은 1조1000억원 규모로 4분기 영업현금흐름 및 1분기 신규 차입금 3200억원까지 더하면 1조원 후반대가 최대 자금 동원 능력으로 여기에 미국 힙합 레이블 인수자금을 빼면 최대 인수 가능 SM 주당 가격은 16만원”이라며 “반면 카카오는 지난해 9월 말 기준 가용 현금이 5조7000억원에 달하고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연초 1조2000억원 투자 유치에 성공한 상황”이었다고 지적했다. 하이브는 이날 입장문에서 “현 상황에서는 SM 인수를 위해 제시해야 할 가격이 적정 범위를 넘어섰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SM 인수 경쟁에서 정작 업계를 떠받치고 있는 기둥인 아티스트와 팬은 안중에 없고 ‘돈’만 밝히는 기업 등 안 좋은 이미지만 부각되면서 K팝 전체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도 컸다.

어쨌건 SM은 ‘우군’인 카카오가 경영권을 갖게 되면서 현 경영진이 주창한 ‘SM 3.0’을 속도감 있게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SM 3.0’은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 ‘원톱’으로 진행되던 음반 제작 방식에서 탈피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SM은 특히 미래 먹거리의 핵심인 신인 육성을 속도감 있게 진행해 올해 신인 걸그룹, NCT 도쿄, 신인 보이그룹, 가상 가수 등을 내놓을 계획이다.
더불어 카카오와 손잡고 하이브나 JYP 등에 비해 열세로 꼽혔던 북미 시장 진출에 도전할 수 있게 됐다. 또한 카카오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웹툰, 웹소설 등 다양한 확장 지식재산권(IP) 개발도 추진할 전망이다. 캐릭터 사업에서 강점을 지닌 카카오와 협력해 다양한 굿즈 상품(MD)을 선보일 수도 있다.

하이브와 카카오가 합의했지만 구체적인 협업에서는 다소 이견이 보인다. 하이브는 “플랫폼 협업”이라고 밝혔지만, 카카오와 SM은 “SM 3.0을 추진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팬 플랫폼의 경우 하이브는 ‘위버스’를 직접 운영 중이고 SM은 자회사 디어유를 통해 ‘버블’이란 플랫폼을 가지고 있다. 합의 이전까지 하이브는 ‘위버스’로의 통합을 주장했다. 하이브 측은 “현시점에서 (카카오와) 정확한 협업 내용을 밝히기는 어렵다. 실질적인 협력이 될 수 있도록 준비해나갈 예정”이라며 “하이브가 가지고 있는 플랫폼은 하나다. 그쪽으로 이해해 주면 된다”고 밝혔다.

반면 ‘SM 3.0’에서는 SM이 직접 운영하는 팬 플랫폼을 구축하겠다는 전략이 포함돼 있다. 이에 대해 카카오 측은 “플랫폼을 포함해 여러 사업 협력을 하이브와 할 예정으로, 큰 그림에 대해서는 합의했으며 향후 세부 계획을 논의해 발표할 계획”이라고만 밝히며 구체적인 답변을 피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해외 K팝 팬들의 입장에서는 하이브와 SM이 양립하면서 다양성이 유지된 측면이 있다”면서 “이제는 SM 인수전을 통해 훼손된 K팝 이미지를 복구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이번 사태를 돌아봤다.

안승진·이복진·이도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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