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득도

구영기 전 생명그물 대표 2023. 3. 13.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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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영기 전 생명그물 대표

내가 투수 플레이트에서 포수 미트까지 공을 던지려면 있는 힘을 다해 마치 곡사 포탄처럼 한껏 포물선을 그려야 한다. 손도 작고 팔 힘도 약해서 그렇다. 부끄러우니 언감히 공 던질 마음도 내지 않는다. 그런 형편이라 주눅 잡혀 여럿이 하는 운동은 슬그머니 피한다. 억지로 권해 막부득이 끼이게 되면 마음이 위축되어 외려 실수나 연발하니 이 또한 못 할 짓이다.

‘열 번 찍어 아니 넘어가는 나무 없다’ 이르지만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마라’는 말도 있다. 말뜻으로 따진다면 둘 다 맞는 말이라 어느 하나를 따르기 난감할 때가 잦다. 내가 죽자사자 매달려서 연습에 연습을 거듭한다 해도 중학 야구선수만큼도 던질 수 없음을 안다. 참담하지만 이게 내 꼬락서니다. 언젠가 통영 세병관 처마 밑 댓돌이 낙숫물에 패인 걸 보고 내심 느낀 바도 있지만, 그러기에는 내 인생이 너무 짧다. 아예 야구선수로 승부 걸 셈조차 하지 않는다.

프로야구 선수가 던진 공이 거의 직선으로 날아가는 걸 보면 황홀하다. 돌직구에다 슬라이더니 포크 볼이니 나로서는 엄두도 못 낼 공들을 냅다 던지는데 그걸 또 가뿐하게 쳐 내는 타자가 있다. 하지만 그런 선수가 밥 먹고는 내도록 타격 연습에만 매달려도 타율 3할대를 이루기 어렵다. 이게 현실이다.

프로 구단에 이름만 올려도 그야말로 대단한 선수 아닌가. 개중에 날고뛴다 해서 어찌저찌 메이저리그에 발을 들인다손 치더라도 두각을 드러내는 건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세상은 우리의 상상 이상으로 무서운 곳이다. ‘소년이여 꿈을 가지라’ 했지만 실은 꿈만으로 어쩌지 못하는 게 너무 많다. 쓸데없이 헛꿈만 차서 인생 망치는 일도 수두룩하다.

세상에는 엄청난 서원을 세워 아예 문을 걸어 잠근 채 평생을 면벽 수행하는 수도승도 있고, 이승과 돌담을 치고 주구장창 도만 닦는 수도사도 있다. 평생으로 그러하고 나서 얼마나 대단한 그 무엇을 깨달았는가가 너무 궁금하다. 죽음을 앞둔 시점에 꼭 여쭙고 솔직한 대답을 듣고 싶다. 먼 옛날에는 고난의 수행 끝에 도를 얻은 분이 구름을 불러 타고 높은 산 깊은 곳으로 들어가 다시는 볼 수 없었다고도 하더라만, 요즘은 왜 그런 일이 안 일어나는지 그 또한 궁금하다.

세상은 무한 연속되는 홀론 속 홀론으로 이루어진다. 사람의 인체계통은 한 커다란 구성체계를 이루는데 대부분의 장기는 서로 다른 여러 조직으로 만들어진다. 한 조직은 다시 매우 작은 세포 집단으로 구성한다. 이들 각 계통들이 저마다 맡은 중요한 임무를 수행함과 동시에 서로 협력하는 덕분에 우리가 건강하고 효율적인 삶을 살 수 있다.

사람의 몸은 대략 100조 개의 세포로 구성되어 있다 한다. 그런데 대부분이 미생물이고 인간 세포는 그중 10퍼센트 밖에 되지 않는다. 물론 박테리아 세포 크기가 인간 세포보다 훨씬 작기 때문에 낱으로 따질 때 말이지만. 이 손님들 대부분은 우리 세포 안이 아니라 피부나 장내에 존재한다. 장에 사는 균이 하는 가장 중요한 활동은 음식물을 분해하는 일로 알려져 있다. 우리가 먹는 음식물에 없는 비타민 B나 K를 만들기도 한다. 그들의 기여에 대한 작동 원리는 아직 규명되지 않았지만 상호 영향은 실로 지대하다.

신비롭게도 세포들 하나하나마다 인간의 모든 유전 정보가 담겨 있다(적혈구는 예외다). 세포는 그 정보로 몸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과정을 수행한다. 모든 유전자는 하나 또는 그 이상의 특수한 단백질을 합성하기 위한 설계도를 지니고 있다. 바로 이 단백질이 세포 내의 고유한 주인공이며 그들 간의 상호작용이 몸의 모든 기능을 결정짓는다.


여기서 깨닫는 중요한 사실은 내 몸 건강이, 특출 나거나 득도한 몇몇 세포들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평범한 바닥 세포들이 온전해서 맡은 바 제 역할을 건실히 해 낼 때만 비로소 건강해진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아주 비범한 인재나 도인 몇몇이 꼭 있어야 좋은 세상이 되는 게 아니라 하찮은 한 사람 한 사람들이 올바른 정신과 양심을 가지고 살아갈 때 건강해진다고 믿는다. 우리도, 세포도 모두 관찰자가 아니라 얽힌 참여자다. 별스레 득도 따위 그런 것에 기대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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