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동대학살 진상규명은 ‘반일’이 아닌 인간 존엄의 문제”

김송이 기자 2023. 3. 12.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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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40년간 기록한 오충공 감독
오충공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이 지난 9일 서울 중구의 한 카페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며 자신이 감독한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기록 영화 포스터를 펼쳐 보이고 있다.
피해·가해·목격자 이어 유족 담아
100주기 맞춘 세 번째 다큐 준비 중
“재일교포 아니면 누가 할 수 있을까”
국가가 외면한 진실 끝까지 찾을 것

“역사를 똑똑히 기억하는 것은 ‘반일’이 아니라 죽은 자의 존엄을 지키는 일입니다.”

오충공 다큐멘터리 감독(68)은 올해로 100주기인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관동대학살) 희생자들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40년을 바쳤다. 살아 있는 학살 피해자는 물론 가해자와 목격자 등을 만나 “학살이 분명히 있었다”는 증언을 기록한 결과물이 다큐멘터리 <감춰진 손톱자국-관동대진재와 조선인 학살>(1983)과 <불하된 조선인-관동대진재와 나리시노 수용소>(1986)이다. 오는 8월엔 학살 희생자 8명의 유족 14명을 찾아다닌 이야기 <1923 제노사이드, 100년의 침묵, 역사부정>(가제)을 공개할 예정이다.

오 감독은 지난 10일 제25회 지학순정의평화상을 수상했다. 그는 수상소감에서 “관동(간토) 지방 각지에 매몰된 조선인 추도비를 찾고 증언과 자료를 모아온 시민단체가 함께 받는 상이라고 생각하겠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를 언급한 이유는 그간 관동대학살의 흔적을 기록해온 이들은 국가가 아닌 시민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9일 서울 중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오 감독은 “역대 한국 정부, 역대 대통령 누구 하나 일본 정부에 진상규명을 요구하지 않았다”고 했다.

관동대학살은 1923년 일본 도쿄, 요코하마 등지에서 규모 7.9의 강진이 발생했을 당시 일본 군경과 자경단 등에게 재일조선인 6600여명과 중국인 650여명 등이 살해된 사건이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 같은 유언비어가 삽시간에 퍼지면서 학살이 벌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독립신문은 당시 희생자 수를 ‘6661명’이라고 보도했고, 1952년 이승만 정부가 관동대학살 피해자 명단을 작성했다. 하지만 이후 국가 차원의 피해조사나 진상규명은 이뤄지지 않았다. 오 감독은 “그때 부상당한 조선 사람과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누구한테 말해야 하나”라면서 “관동대학살이라는 범죄에 한국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했다.

오 감독은 정부가 외면한 역사를 대신 기록했다. 두 번째 영화 <불하된 조선인>에선 기미즈카란 이름의 일본 노인이 카메라 앞에 앉아 학살에 가담했던 과거를 고백한다. “(조선인들에게) 어떻게 죽고 싶냐고 물었더니, ‘칼 대신 총으로 한 번에 죽고 싶다’고 했다. (중략) 총을 구해서 조선인을 줄지어 세워 두고 3명을 한 명씩 총으로 쐈다.” ‘학살을 보았다’고만 하던 이들은 카메라 앞에서 “학살에 가담했다”며 불편한 진실을 털어놓았다. 오 감독은 “그 할아버지들이 ‘역사를 반복하면 안 된다’는 유언을 남겨준 것”이라고 했다.

유족들 중에는 일본에 일하러 갔던 가족이 어떻게 됐는지 모르는 경우도 있었다. 보다 못한 오 감독이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희생자 유족을 찾아 호적과 족보를 확인하고, 이들의 입을 통해 일본에 갔던 조상의 행적을 조각조각 모았다.

피해자나 가해자는 물론 유족 2·3세도 고인이 됐거나 고령이다. 함께 관동대학살 기록을 모아오던 시민단체 동료들도 나이가 많이 들었다. 60대 후반인 오 감독이 비교적 ‘어린 편’에 속한다. 오랜 스승이자 관동대학살 연구에 선구자 역할을 해온 강덕상 선생도 학살 100주기를 보지 못하고 2021년 세상을 떠났다.

기록을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런데 재일교포가 하지 않으면 누가 할까.” 그는 관동대학살 기록을 “시대의 책무”로 여겼다. 강 선생이 “(오 감독이) 기록을 남기지 않으면 관동대학살은 미완의 역사로 남을 것”이라고 했던 말도 마음 한쪽에 자리하고 있다. 오 감독은 “100년으로 끝이 아니고 101년, 102년 넘어서도 계속해야겠다 싶다”고 했다.

그는 일본 사회의 분위기가 앞선 두 작품을 만든 1980년대와 달라졌다며 우려를 표했다. 학살 행위 자체를 부정하는 일본 극우세력의 ‘역사부정’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도지사가 대표적이다. 오 감독은 관동대학살의 진상규명 요구는 ‘반일’ 같은 한·일 간 문제가 아니라 보편적 인권 문제로 봐야 한다고 했다. 그는 “100년이 됐는데도 학살을 부정하는 건 사자를 두 번 죽이는 인권침해”라며 “역사적 맥락을 통해 학살이 왜 일어났는지 알아야만 반복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 김송이 기자 songy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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