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 사라지니 자위대가 나타났다 [박수찬의 軍]
한반도 일대에 일본 자위대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2018년 판문점 정상회담 직후 남북 관계에 훈풍이 불면서 수그러들었던 일본과의 안보협력 문제가 5년 만에 더 강력한 힘을 과시하며 재등장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윤 정부의 강제동원 문제 해결과 일본의 반격능력 확보를 크게 반기는 것도 한·미·일 안보협력을 강화하려는 의도와 무관치 않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공유하는 국가들을 한데 묶으려는 미국에게 정치·군사적 선물이 되는 이 국면은 반가울 수밖에 없다.
◆북한을 막으려면 일본과 손잡아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한쪽은 핵개발, 다른 한쪽은 과거사와 군비증강 및 우경화로 한국 내에서 비난받는 주변국 지도자다.
이들에 대해 미국측 인사들이 우리에게 말하는 내용은 사뭇 다르다. 반격능력 확보를 비롯한 일본의 군비증강과 역할 확대는 한국 안보와 한·미·일 안보협력에 긍정적이라는 것이다.
북한과 전면전이 벌어지면, 일본 소재 유엔군사령부 소속 7개 후방 기지를 통해 미국과 유엔사에 속한 전력제공국 증원전력이 한반도에 투입된다.
북한이 이들 기지에 탄도·순항미사일을 발사한다면, 한반도 증원전력 전개가 차질을 빚을 수 있다. 후방기지에서 인력, 무기, 군수품을 제때 한반도로 옮기지 못하면 한국이 손해라는 주장이다.
증원전력 전개를 차질없이 진행하려면 주일미군과 더불어 자위대가 유엔사 후방기지를 지키고, 미·일이 일본에 미사일방어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반도 유사시 북한이 설치할 기뢰를 제거하거나, 동해상에서 작전을 펼칠 미 해군 핵추진항공모함이나 강습상륙함을 북한 잠수함 공격으로부터 보호하는 과정에서 자위대의 역할이 필수라는 주장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일본 자위대가 반격능력을 갖추고 전력증강을 지속해야 하며, 북한과 일본 중 누가 더 한국을 위협하는지 묻는 것이나 다름없는 지적들이다.
이같은 시선은 동아시아를 바라보는 미국의 인식과도 맞닿아 있다.
미국은 미군이 머무는 한국과 일본, 괌과 오키나와를 하나의 단일 전장으로 본다. 단일 형태의 동아시아 전장에서 승리하려면 한·미·일 정찰 및 타격자산이 긴밀하게 연결되어야 한다.
3국 정상이 지난해 11월 북한 미사일 경보 정보 공유에 합의한 것을 놓고 “미사일 방어망 통합으로 가는 첫걸음”(크리스토퍼 존스톤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동아시아 국장)이라는 해석이 제기된 이유다.
지난 2014년 3국이 북한 미사일 정보 공유를 위해 체결한 정보공유약정(TISA·티사) 등을 제도적 기반으로 삼고, 인공지능(AI)과 초연결 네트워크를 적용해 추진중인 미국 합동전영역지휘통제(JADC2), 한국과 일본이 개발할 AI 지휘통제체계를 각국 정찰 및 타격자산에 연결하면서 3국간 상호운용성을 확보하면 미사일방어체계는 자연스레 하나로 묶인다.
단일 전장 개념은 동아시아에서의 미국 확장억제력에도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
미국 입장에서 동아시아 전장은 1개인데, 적용할 확장억제 개념이 2개(한국, 일본)인 것은 비효율적이다.
한반도 유사시 벌어질 다양한 상황에 대해 한국과 일본의 대응 의지가 서로 다를 수도 있다. 한쪽은 시급하고 압도적인 확장억제력 적용을 원하지만, 다른 한쪽은 그렇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일본이 역량을 키워 자국의 부담을 덜어주고 동맹국들의 군사력을 통합하려는 미국, 그런 미국의 의중에 호응해 군비를 증강하고 영향력을 넓히려는 일본, 핵과 미사일을 앞세워 동아시아를 흔드는 북한의 의도가 맞물리면서 자위대의 활동 반경을 더욱 넓히는 모양새가 되는 셈이다.
◆한·미·일 안보협력의 숨은 딜레마, 중국
북한이 핵위협으로 한국을 밀어붙이고, 미국과 일본은 북핵 대응을 앞세워 한국을 끌어들이는 정세 속에서 한국은 일본의 군비증강을 이해한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월1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외교부·국방부 업무보고에서 “일본도 이제 머리 위로 (북한의) IRBM(중거리탄도미사일)이 날아다니니 방위비를 증액하고, 반격 개념을 국방계획에 집어넣기로 하지 않았나. 그걸 누가 뭐라고 하겠나”라고 말했다.
여기에 강제동원 문제 해결책을 제시하면서 한·일, 한·미·일 안보협력을 위해 정권 출범 전부터 제시됐던 ‘숙제’를 해결한 현 정부는 미사일 경보 정보 공유와 연합훈련 확대 등을 추진, 안보협력에 대한 ‘봉인 해제’를 진행할 태세다.
일본은 미국의 기조에 적극 호응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지난 1월 외교·국방장관 연석 회담(2+2) 공동성명에서 중국을 “인도태평양과 그 밖의 지역에 가장 큰 전략적 도전”이라고 규정했다.
윤석열 정부는 어떨까. 지난 1월 발표한 인도태평양 전략과 지난달 공개한 국방백서에서는 중국을 “인태 지역의 번영과 평화를 달성하는 데 있어 주요 협력 국가”로 규정했다. 미·일과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이같은 차이는 대만 문제에서 한국의 태도와도 연결된다. 대만 해협에서 충돌이 발생하면, 한국은 수출입을 위한 해상교통로를 위협받는다. 하지만 미·일과 함께 대응하려 해도 중국과 지리적으로 인접한 상황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대비하려면 미국을 중심으로 3국간 정치적 사전 조율이 필수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 간 불신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조율에도 한계가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국경이 더이상 절대적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세계 각국은 합종연횡에 한창이다.
한국과 일본, 미국도 북한 위협에 맞서 안보협력을 강화하는 모양새다. 북한의 거듭된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동아시아 정세가 요동치는 상황에서 미군과 자위대의 활동 범위는 더욱 확대되고 있다.
북한 위협에 대응하려면 한·미·일 안보협력이 필수다. 하지만 협력 틀 안에는 한국이 직면할 딜레마도 숨어있다. 동아시아에서 벌어지는 신경전에 우리나라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기 전에 정부 차원의 면밀한 외교적 검토와 더불어 미국과의 공조와 협의가 요구되는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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