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중국 경제 어려운 건 미국 탓"…느닷없는 시진핑의 불평, 왜?
3월 양회 기간, 시진핑 주석의 느닷없는 한마디가 소개됐습니다. 그것도 미국을 꼭 집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국이 주도하는 서방이 중국을 봉쇄하고, 포위하고, 탄압을 해서 중국 경제에 전례 없이 심각한 도전을 안겨줬다."
월스트리트 저널의 보도에 따르면 시진핑 주석이 중국 기업인들을 모아놓고 "중국 경제 어려운 건 미국 탓"이라고 했다는 겁니다. 매우 이례적인 일입니다.
이어 50대의 젊은 외교부장, 별명이 '늑대 전사'라는 뜻의 '전랑'인 친강 외교부장 역시 기자회견장에서 "미국이 브레이크를 밟지 않는 한 충돌이 필연적일 것"이라며 반미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전국에서 올라온 대표들이 수도 베이징에 모여 있는 중국 양회* 기간에 기꺼이 '미국'이라는 소재를 도마 위에 올린 건데, 시진핑 주석과 중국 공산당은 뭘 노리고 이런 전략을 택했을까요? SBS 경제자유살롱에 출연한 전문가들의 해석을 정리했습니다.
*중국 양회 : 매년 3월 베이징의 인민대회당에서 열리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입법부 역할)와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34개 영역 대표들이 입법 제안하는 정책자문기구)를 지칭하는 말. (▶ 관련 영상)
[ https://youtu.be/RCjSXhn2kng ]
고작 5%…'3연임 파티' 대신 '내실 다지기'?
이번 양회를 통해 공식적으로 3연임을 시작한 시진핑 주석이 '화끈한 경제 살리기'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이 많았는데, 이 기대에 못 미치는 수치가 발표된 겁니다. 국내외 투자기관들은 높은 성장률에 익숙한 중국인들의 눈높이에 맞는 목표치, 대략 '5.5~6%의 성장률 목표'와 그걸 맞출 수 있는 '내수 경기 부양책'을 예상했습니다. 아래 표에서 보듯이 그런 희망을 반영해 관련 주가도 제법 올랐습니다.
하지만 시진핑 주석은 화끈한 경기 부양책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SBS 경제자유살롱에 출연한 박수현 KB증권 신흥국팀장은 이렇게 분석했습니다. (▶ 관련 영상)
[ https://www.youtube.com/watch?v=lomt49bfuAw ]
"5%라는 숫자 아래 숨겨져 있는 키워드를 보면 리스크 관리가 꼽힙니다. 리스크 관리, 안정 이런 단어가 굉장히 많이 나왔는데, 시진핑 주석이 평소에 말하던 '안전 전략'에 부합하는 겁니다. 글로벌 경제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경기 부양보다는) 부실을 먼저 정리하고 가야 하겠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결국은 부동산부터 정리하겠다는 겁니다."
지금은 경기 부양으로 파티를 벌일 때가 아니라 대내외적인 경제 충격에 대비한 '내실 다지기'에 힘을 써야 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는 해석입니다.
주요 부동산 기업의 위험을 효과적으로 예방 및 해결하고 자산 부채 상황을 개선하며 무질서한 확장을 방지하고 부동산 산업의 안정적인 발전을 촉진한다.
"有效防范化解优质头部房企风险,改善资产负债状况,防止无序扩张,促进房地产业平稳发展"
- 중국 정부 업무 보고 원문 중
한마디로 시진핑 주석이 '미중 갈등 격화 등 예측이 쉽지 않은 경제적 충격'을 감안해 내실 다지기에 방점을 찍었고 그 결과 5%라는 '보수적인 숫자'가 등장했다고 볼 수 있다는 겁니다. SBS 경제자유살롱에 출연한 전가림 호서대 교수의 해석입니다.
"결국 5%는 마지노선이 되는 겁니다. 기구 개편을 하게 되면 목표를 굉장히 보수적으로 잡는 경향도 있습니다. 좋은 성적을 초과달성했다는 모습을 보일 겁니다."
실제로 전 교수는 중국 정부가 속으로는 더 높은 경제 성장을 예상하고 있다고 봤습니다. 그 근거는 신규 취업자 숫자입니다. 전 교수는 "보통 경제 성장률 1%가 220만 명을 고용하니까, 5%면 1천100만 명을 목표로 하는데, 이번에는 1천200만 명을 목표로 내놨죠. 무슨 얘기일까요? (속으로 생각하는 목표는) 5%가 넘는다는 겁니다"라고 해석했습니다.
이제 SBS 경제자유살롱에 출연한 두 중국 전문가의 '양회를 통해 본 중국 경제 정책'을 종합해보겠습니다.
마윈이 사라졌어요…시진핑의 선택은 '반도체'
그래서 SBS 경제자유살롱에 출연한 전문가들은 이번 국방비 증액에서 읽어내야 할 건, 국방비 증액을 포함한 전반적인 '국가 안보 비용'에 대한 중국 정부의 의지라고 분석합니다. (▶ 관련 영상)
[ https://www.youtube.com/watch?v=ZaBQlcB-ltE ]
실제로 시진핑 주석은 우리말로 '안보'로 해석할 수 있는 '안전'이라는 단어를 즐겨 씁니다. 여기서 안전이란 세이프티(Safety)가 아니라 시큐리티 (Security) 개념인데, 시진핑 주석이 지난해 20차 당 대회 연설에서 이 단어를 수십 번 반복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번 양회에서도 안전을 강조하기는 마찬가지였는데, 유독 이번에는 '미국으로부터의 안전'으로 읽히거나 해석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SBS 경제자유살롱에 출연한 전가림 호서대 교수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이번에도 안전이라는 단어가 굉장히 많이 나왔습니다. 그 안전이 누구로부터 위협을 받는 거냐? 미국으로부터라는 거, 그래서 모든 건 미국과의 대항적인 구도 안에서 판단을 해야 되는 겁니다. 예를 들어 이번 기구 개편에서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은 부분이 금융입니다. 미국이 가장 강하고, 중국이 가장 취약한 부분입니다. 과거에는 금융보험 감독위원회하고 증권 감독위원회로 이원화되어 있었는데, 이걸 다시 하나로 만듭니다. 왜? 미국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합쳐놓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겁니다."
특히 시진핑 주석은 이 '안전 개념'에 부합하는 산업들을 중시합니다. KB증권은 최근 바로 그 '4가지 산업에 대한 투자 집중'과 관련된 보고서를 내놓았습니다. (▶ 관련 영상)
[ https://www.youtube.com/watch?v=XNyP3iRWCRg ]
KB증권 보고서에는 "시장은 이번 정부 업무 보고에서 강조한 데이터 경제를 포함한 4가지 산업, 즉 데이터, 에너지, 군사, 농업으로 선호도가 집중될 전망"이라는 분석을 내놓으면서 '4대 안보 전략 산업'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이 보고서를 쓴 박수현 팀장이 SBS 경제자유살롱에 출연해서 내놓은 설명입니다.
"시진핑 주석이 장기 집권을 앞두고 지금 안보 전략에 굉장히 집중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기술 자립화가 안보의 핵심입니다. 데이터 안보, 에너지 안보가 있는데, 이게 국가 안보와 연결된다는 겁니다. 이번 양회에서도 빅테크 기업들의 수장이 빠지고 반도체, 전기차 같은 업체의 대표들이 왔습니다."
바로 이 부분, "마윈이 사라지고, 레이쥔이 등장했다"는 대목이 그래서 상징적입니다.
예전 양회에는 마화텅 텐센트 회장이나 마윈 알리바바 창업자가 한 자리씩을 차지했었습니다. 이른바 빅테크 인사들입니다.
자료 사진을 한 장 보겠습니다. 2018년 마윈 알리바바 회장과 마화텅 텐센트그룹 회장이 '중국 개혁개방 40주년 경축식'에서 유공자 표창을 받은 뒤 기념 촬영을 하는 장면입니다. 하지만 이들 두 명은 이번에는 초대받지 못했습니다.
대신 전인대 대표에 레이쥔 샤오미 회장, 화훙반도체 장쑤신 회장, 샤오펑자동차의 허샤오펑 회장, 고어텍(애플협력업체)의 장빈 회장이 임명됐습니다. 아직 이들의 참석 사진은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번 전인대 구성을 통해 "이제 중국 정부는 국가 안보와 관련된 산업을 밀어준다. 반도체, 에너지, 전기차 같은 사업이 그것이다"라는 메시지를 선명하게 전달한 겁니다.
중국의 경제 정책이 미국과의 갈등을 염두에 두고 진행되기 시작했다는 해석에 부합하는 또 하나의 근거는 바로 중국의 중앙은행인 인민은행 외환 운용 방식입니다.
박수현 KB증권 팀장은 "중국의 외환보유고 구성이 빠르게 바뀌고 있어요. 미국 국채의 비중이 줄어들고, 금을 계속 늘리고 있어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가 돈이 다 묶여 있는 것을 보고, 미국과의 충돌을 앞두고 있는 중국 입장에서 더 이상 미국 국채는 안전 자산이 아니라고 판단한 겁니다."
우크라이나전쟁을 통해 러시아 제재를 목격한 뒤 '미국이 건드릴 수 없는 딴 주머니를 차야 한다'는 교훈을 얻은 겁니다. 최근에는 중국 정부가 중국 기업들에게는 "해외에 있는 재산을 줄여라"라는 주문을 했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미국의 자산 동결에 대비한 거라는 해석이 따라다닙니다.
늑대 전사가 유럽에 건넨 따뜻한 한마디…외톨이 피하기?
먼저 요즘 유행하는 '모임 결성' 이야기부터 해보겠습니다. 최근 상식 시험에 나올 법한 모임들이 부쩍 늘었습니다. 정리해보겠습니다.
"미국은 있고, 중국은 없다."
경제부터 군사까지, 완전히 성격이 다른 이 모임들을 하나로 관통할 수 있는 문장입니다. 그리고 이 모임을 해설하는 언론의 기사 속에서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는 표현이 빠지지 않습니다.
이걸 바라보는 중국의 마음은 어떨까요? 혹시 푸틴의 얼굴이 떠올랐을까요? 혹시 국제사회에서 외톨이가 될까 봐 신경이 쓰이지는 않았을까요?
그래서였는지 '늑대 전사 외교'라는 평가를 받으며 미국에 거친 언사를 내뱉는 걸로 잘 알려진 친강 중국 외교부장이 "정세가 어떻게 전개되든 중국은 EU를 전면적 전략 파트너로 간주한다"라며 유럽을 향해 그답지 않은 부드러운 발언을 내놓았습니다. '미국과 싸우는 상황이 오더라도 잘 지내도록 애쓰겠다'는 뜻으로 해석되면서 언론들은 '서방 갈라치기'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SBS 경제자유살롱에 출연한 박수현 KB증권 팀의 설명입니다.
"중국이 가장 신경 쓰는 게 타이완이라면 미국이 가장 신경 쓰는 게 유럽이겠죠. 그런 전략의 일환이고요. 유럽이 경제를 생각하면 중국을 완전히 배척하기 어렵다는 점도 고려했겠죠. 전략상의 선택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번 양회에서 시진핑 주석이 미국에는 모진 소리를 했지만, 유럽을 포함한 다른 나라들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모진 소리를 하지 않았던 것도 이런 배경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SBS 경제자유살롱에 출연한 전가림 호서대 교수는 '미국이 다른 나라들과 연합하는 상황에 대해 중국은 매우 불편하다"라고 평가했습니다.
하나의 산에 두 마리의 호랑이가 있을 수 없다
이제 다시 처음 얘기로 돌아가보겠습니다.
시진핑 주석이 양회 기간에 "미국의 봉쇄, 탄압 때문에 중국 경제가 어려워졌다"는 취지의 비난을 했습니다. 이 비난이 화제가 된 건, 이례적으로 '미국'을 콕 찍어서 비난했고, 그게 그대로 공개됐다는 점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SBS 경제살롱에 출연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1) '경제 내실부터 다지자'는 경제 정책 방향 2) 국가 안전을 보장하는 반도체, 에너지 분야 지원 정책 3) 미국과 다른 나라를 구분해서 펼치는 외교 정책 등에서 중국이 공개적이고 본격적인 '미중 갈등' 준비에 들어갔다는 겁니다.
손승욱 기자ssw@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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