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52시간제 대부분 동의 안 할 것"이란 고용부 차관...대체 근거는 어디에

곽주현 2023. 3. 11.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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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전경련 "MZ세대 대부분이 개편 원해"
정작 MZ세대 "보상 있어도 초과근무 싫다"
생산직·중소기업 재직자 찬성 여부 불확실
민주노총 관계자들이 지난 9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고용노동부의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안' 폐기를 요구하고 있다. 안다은 인턴기자
"대부분의 노동법 학자나 현장 사람들은 주 단위 관리 방식이 불합리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주 52시간제의) 주 단위 규율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동의하는 방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말은 안 하고 있을 수도 있지만."
권기섭 고용노동부 차관

정부가 주 최대 69시간 근로가 가능한 근로시간제도 개편안을 발표한 뒤 여진이 이어지고 있다. 권기섭 고용노동부 차관은 지난 9일에도 이같이 대다수가 제도 개편을 원한다고 설명했지만 긍정보다는 부정적인 여론이 우세한 상황이다.

개편안은 매주 52시간 상한을 지켜야 하는 기존 제도를 유연화해 월·분기·반기·연 단위로 '평균 주 52시간'을 맞추는 게 핵심이다. 특정 주에는 최대 69시간(11시간 연속휴식 적용) 또는 64시간(11시간 연속휴식 무적용)까지 일할 수 있는 구조인데, 자연스레 장시간 노동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정부 "MZ세대가 원하는 개혁"

정부가 꾸준히 내세운 '방패'는 MZ세대다. 지난해 9월 13~18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를 통해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MZ세대가 반긴다'는 근거로 제시해 왔다. 앱 이용자 2,424명 대상 설문조사에서 '평소 어떤 이유로 근로시간 조정이 필요하다고 느끼는가'란 질문에 '여가 및 자기계발'을 택한 응답자가 36.9%로 가장 많았다. 이어 '업무량 변동'(26.4%), '육아 등 가족돌봄'(24%) 순이었다. 다만 질문 자체에 근로시간 조정이 필요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어 정부의 근로시간 개편안에 동의하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최근 조사도 정부 주장을 뒷받침했다. 20, 30대 임금근로자 70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현 정부의 근로시간 유연화 정책에 긍정적인 답을 한 응답자는 82%에 달했다. '노사 합의에 따라 필요시 연장근로를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는 응답이 48.4%, '소득 향상을 위해 연장근로를 적극적으로 희망한다'는 답변도 11.7%나 됐다.

연장근로 악용 가능성에 대한 우려에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6일 "요즘 MZ세대는 기성세대와 달리 '부회장 나와라, 회장 나와라, 성과급이 무슨 근거로 이렇게 됐냐' (할 수 있을 정도로) 권리의식이 굉장히 뛰어나다"며 "적극적인 권리의식이 법을 실효성 있게 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정작 MZ노조 개편안에 반대 입장...고용부 조사에서도 부정여론 높아

유준환 의장(오른쪽 두 번째)을 비롯한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 위원들이 지난달 21일 서울 용산구 동자아트홀에서 열린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 발대식에서 결의문을 낭독하고 있다. 뉴스1

그러나 정반대 설문조사 결과도 많다. 고용부가 지난해 말 15~34세 청년 7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청년들이 희망하는 주당 근로시간은 42.28시간에 불과했다. '추가 근로시간에 대한 보상이 있어도 더 많은 시간을 일해야 하는 직장에는 취업하지 않을 것'이라는 답변은 46.7%나 됐다. 장시간 노동에 대해 청년들의 부정적 입장이 드러난 셈이다.

결정적으로 'MZ노조'들의 모임인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가 정부의 제도 개편안에 공식적으로 반대하고 나섰다. 새로고침은 지난 9일 출범 후 첫 의견문을 통해 "연장근로 관리단위 확대는 노동자 근로조건을 개선해 온 국제사회 노력과 역사적 발전 과정에 역행한다"라며 "개편안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근로시간 개편으로 '크런치 모드' 등 장시간 노동 직격탄이 우려되는 정보기술(IT) 업계도 부정적인 것은 비슷하다. 이달 7일 IT노조는 "주 69시간제는 과거로의 퇴행"이라며 "일이 많을 땐 연장근무와 휴일근무까지 하고, 쉴 때 길게 쉰다고 하는 건 기계를 돌릴 때나 쓸 수 있는 말"이라고 꼬집었다. 지난해 민주노총 화섬노조 IT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IT업계 종사자 90.6%는 "고용부가 추진하는 연장 근로시간 단위 변경에 반대한다"고 답했으며, 61.8%는 "현행 최대 주 52시간제부터 더 줄여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생산직·중소기업 근로자는 찬성한다는데

이외 정부가 '찬성하는 입장'으로 언급한 건 제조업·생산직·중소기업 등이다. 최근 SK이노베이션 등 일부 대기업 제조 현장에서는 '4조 3교대' 대신 '4조 2교대' 근무 형태를 도입해 하루 12시간씩 주야간 교대 근무를 하고 쉬는 날을 늘리는 근무체계를 도입하고 있다.

정부가 내세우는 '쉴 때 제대로 쉰다'는 논리와 통하는 지점이 있지만 모든 사업장에서 이를 환영하는 것은 아니다. 한화솔루션이 최근 여수공장 근무자를 대상으로 4조 2교대 도입 여부를 투표에 부쳤지만 부결됐다. 장시간 근무로 인한 안전사고 우려 등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중소기업 재직자의 경우 더 많은 임금을 위해 '주 52시간제 폐지'를 희망하는 경우가 있으나 정부 개편안에 따르면 관리단위가 길어질수록 근로시간 총량은 오히려 줄어들기 때문에 임금 상승과는 거리가 멀다.

다양한 부정적 여론에도 권 차관은 "주 52시간제 부작용이 나오는 이유는 그런 규제 방식이 시장에서 잘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상식적이지 않은 규제라 근로감독도 제대로 이뤄지기 힘든데 앞으로 규정과 규제가 합리성을 찾으면 감독도 강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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