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당에 찍힌 이단아…천재성 알아본 스탈린이 살려줬다 [Books]

박대의 기자(pashapark@mk.co.kr) 2023. 3. 10.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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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윌슨 지음, 장호연 옮김, 돌베개 펴냄

지구 위 어떤 생명체도 자신이 태어나는 과정에 개입하지 못한다. 누구도 부모를 선택할 수 없고, 자신이 살아갈 환경을 고를 수 없다. 약 80억명에 달하는 지구의 인구수만큼 개개인에게 부여되는 환경은 제각각이다. 그래서 인간들은 상상한다. 지금과 다른 조건에서 태어났다면 자신의 인생이 어떻게 바뀌었을지를. 특히 자신의 의지로 상황을 바꿀 수 없는 불행한 순간이라면 더욱 그렇다.

이런 가정(假定)은 천부적 재능을 가진 자들에게 더 자주 적용된다. 러시아를 대표하는 음악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도 그중 하나다. 1906년에 태어난 그는 러시아에서 제국이 망하고 사회주의 국가가 세워지는 격변의 시기에 천재성을 발현했다. 13세의 나이에 작곡을 시작했고, 19세에는 교향곡을 완성했다. 20대 초중반에 작곡한 여러 교향곡과 니콜라이 고골의 풍자 소설을 각색한 오페라 ‘코’는 그가 전위적이고 진보적인 작곡가라는 점을 세상에 알린 작품이 됐다.

하지만 보수적인 음악인들은 지금까지 음악과 전혀 다른 난해하고 실험적인 그의 작품이 형식주의라며 비판했다. 특히 그의 명성을 드높인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은 당시 소련을 지배하던 정권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초연 후 2년간 177회 상연되며 대중에게 큰 인기를 누린 작품이었지만, 정권은 작품 속 여주인공이 부르주아를 미화한다며 맹공격했다. 작품의 유명세에 공연장을 찾은 정권의 수장 스탈린은 공연 도중 자리를 박차고 나갔고,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에 그의 작품은 이단으로 표현됐다. ‘피의 숙청’이라 불리는 시기에 정권의 눈 밖에 난 그는 생명의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스탈린 정권은 그의 천재성을 버리지 못했다. 소련은 이미 국제적으로 유명 인사가 된 그를 체제 선전의 도구로 쓰기 시작한다. 그는 정권의 이중적 행태로 삶의 고비마다 이득을 보기도 하고 위기를 겪기도 했다. 살아남기 위해 그는 자신의 성향을 감추고 공산당이 원하는 작품을 쓸 수밖에 없었다.

스탈린이 죽은 후에도 그의 삶은 변하지 않았다. 흐루쇼프는 그가 공산당에 입당하도록 강제했고 ‘체제의 앞잡이’로 활동하도록 만들었다. 그 탓에 사회적 지위는 유지할 수 있었지만, 자신의 의지는 점차 잃어갈 수밖에 없었다.

쇼스타코비치는 훗날 정권의 입맛에 좌우되지 않았다면 자신의 작품이 훨씬 선명하고 날카로우며 화려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생각을 감추기보다 드러내고, 더 순수한 음악을 썼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그렇다고 인생에서 쓴 음악들을 부끄러워하지는 않았다. 그에게 자신의 음악은 모두 자신이 낳은 자식들이었다.

‘쇼스타코비치’는 그의 인생을 집요하게 탐구해 재구성한 평전이다. 저자는 역사적 자료와 함께 생전 쇼스타코비치와 관계를 맺은 수많은 사람을 인터뷰해 한 편의 다큐멘터리처럼 책을 완성했다. 책의 부제인 ‘시대와 음악 사이에서’에서 알 수 있듯, 책은 혼돈의 시대에 스스로 음악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줄타기했던 쇼스타코비치의 인생을 세밀하게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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