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휴가 다 털자”…‘못 쓴 연차 3.6일’ 소진땐 10조 효과

임성현 기자(einbahn@mk.co.kr), 양세호 기자(yang.seiho@mk.co.kr) 2023. 3. 10.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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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경제효과 휴대폰·자동차보다 커
쏘나타 4.9배, 갤폴드 1.6배
30일 오전 김포국제공항 국내선 출국장이 연말을 맞아 여행을 떠나는 여행객들로 붐비고 있다. [박형기 기자]
게임회사에서 기획자로 일하는 A씨(32)는 오는 6월 2주간 휴가를 내고 제주도 여행을 떠날 예정이다. A씨가 재직중인 회사는 탄력근무제를 활용해 매달 일정 시간만 근무하면 나머지 시간은 연차에 붙여 장기휴가로 사용할 수 있다. A씨는 “1년에 한두번씩 길게 국내외에서 휴가를 쓰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제조업종에서 상품개발자로 재직 중인 B씨(32)에게 장기휴가는 ‘그림의 떡’이다. B씨는 “작년에도 연차 중 절반 밖에 못썼다”고 한숨지었다. 올해도 B씨는 휴가 대신 수당을 받을 처지다.

한국 근로자들은 연평균 1915시간 일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중 5위에 오를만큼 세계적으로 ‘과로하는 나라’다. 오랜 시간 일하는 반면 휴가는 적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2021년 기준 한국 근로자의 평균 연차는 15.2일, 이 중 실제 연차사용은 11.6일이다. 연차 소진율은 76.1%에 그치고 있다.

한국에서 정규직 직장인의 경우 1년 이상 일하면 연 15일 유급휴가가 생긴다. 2년마다 1일씩 휴가가 늘어나 장기 근속자는 최대 25일이 된다. 하지만 이마저도 온전히 사용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쪼개 쓰거나 남겨서 연차보상비를 받고 있는 실정이다.

휴가는 근로자들의 ‘워라벨(일과 삶의 균형)’ 측면은 물론 경제 전반으로도 효과가 크다. 가뜩이나 수출 한파에 소비 부진까지 덮친 한국으로선 여가활동 확산으로 소비 활성화를 촉진하는 선순환의 고리를 만들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만성 적자인 여행수지를 개선하는 데도 휴가의 효과는 크다. 뒤집어 말하면 지금 한국 사회는 휴가를 통한 국내 소비 진작과 여행수지 개선이라는 효과를 고스란히 날리고 있는 셈이다.

10일 매일경제와 한국경제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국내 임금근로자가 연차를 100% 소진할 경우 경제 전체에 미칠 생산유발효과는 연간 10조4000억원에 이른다. 휴가를 통해 국내 여행, 음식, 문화, 오락, 스포츠 등 여가 활동 전반에서 일어나는 소비 효과다. 다만 국내 경제 파급효과만을 추정하기 위해 해외여행 기간의 현지 지출이 아닌 국내에서 발생하는 항공비, 면세품 구입까지 포함했다.

특히 여가활동 소비 1원당 생산유발액은 1.76원에 달한다. 국내 제조업의 핵심 상품인 휴대폰(1.48원), TV(1.57원), 컴퓨터(1.71원)보다 효과가 크다. 작년 한해 총 3만 1929대 판매된 ‘국민차’ 쏘나타의 생산유발액이 2조1269억원인 것을 감안하면 연차 100% 소진의 경제효과가 4.9배 큰 것이다. 지난해 240만개 팔린 삼성전자의 인기 휴대폰 갤럭시Z4폴드의 생산유발액(6조 3900억원) 보다도 1.6배 많다.

여행과 레저 등이 갖는 전후방 산업과의 연계 효과가 그만큼 크다는 의미다.

부가가치 파급효과도 크다. 연차 100% 소진의 부가가치유발액은 연간 5조원에 달한다. 쏘나타(5958억원), 갤럭시Z4폴드(1조 9429억원)의 부가가치를 압도한다. 휴가 소진의 1원당 부가가치 유발액은 0.85원이다. 휴대전화(0.45원), TV(0.46원), 컴퓨터(0.66원), 승용차(0.72원) 등 국내 주력 생산품을 통틀어도 월등한 비교우위를 갖고 있다.

이처럼 휴가 촉진을 통한 소비 확대는 부작용이 적고 경제의 선순환을 가능케 하는 가장 효율적인 경기부양책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 근로자들의 평균 연차인 15.2일의 생산유발효과는 무려 44조 1000억원에 달한다. 휴가가 국내 여가활동 확산으로 이어질 경우 가뜩이나 수출과 함께 소비도 급격히 위축되는 상황에서 내수진작에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상호 한경연 경제조사팀장은 “휴가를 통한 소비는 제조업 못지 않은 전후방 산업 유발 효과를 갖고 있다”며 “자유로운 휴가의 기반이 마련된다면 여가수요가 늘면서 내수진작 효과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골칫거리’인 여행수지 적자를 해소하는데도 한 몫을 한다. 한국은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 이후 만성적인 여행적자를 겪고 있다. 2000년 이후 22년 연속 적자행진이다.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작년 한해 여행수지 적자만 79억3000만달러를 기록했다. 수출부진으로 상품수지가 무너지는 상황에서 여행수지를 포함한 서비스수지가 버팀목이 돼야 하지만 오히려 짐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최근 20년간 국제수지를 통해 개별수지가 경상수지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결과 여행수지가 1억달러 늘어날때 경상수지는 1억 8800만달러 불어나는 것으로 조사됐다. 수출 등 상품수지가 0.94억달러, 해외배당 등 본원소득수지가 1억 1000만달러 증가하는 것에 비하면 여행수지의 영향력이 훨씬 큰 것이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외국인 입국자는 339만명이다. 지난해 소폭 회복됐지만 여전히 코로나19 이전 수준에도 못미친다. 반면 해외로 빠져나가는 한국인은 지난해 658만명에 달해 2배 가까이 많았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도 “휴가를 통한 부수적인 경제효과가 크다”며 “직접적인 소비 진작 효과 함께 간접적으로 근로자의 생산성을 높이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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