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양행, 창업자 故유일한 박사 52주기 추모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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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양행이 창업자 고(故) 유일한 박사 영면 52주기를 맞아 10일 경기 부천 유한대학 유일한 기념홀에서 추모식을 가졌다.
추모식에 앞서 유한양행 임직원들은 유일한 박사 묘소인 유한동산에서 묵념과 헌화를 하며 고인을 뜻을 기리는 시간을 가졌다.
유 박사는 한국 기업의 선구자로서 1926년 '건강한 국민만이 주권을 되찾을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제약사 유한양행을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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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대에 걸쳐 전 재산 사회에 환원해
[파이낸셜뉴스] 유한양행이 창업자 고(故) 유일한 박사 영면 52주기를 맞아 10일 경기 부천 유한대학 유일한 기념홀에서 추모식을 가졌다.
유 박사는 지난 1971년 3월 11일 76세를 일기로 영면했다.
이날 추모식은 유족 및 조욱제 사장을 비롯한 유한양행 임직원, 유한재단, 유한학원, 유한 가족사 임직원과 재학생 등 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히 거행됐다.
추모식에 앞서 유한양행 임직원들은 유일한 박사 묘소인 유한동산에서 묵념과 헌화를 하며 고인을 뜻을 기리는 시간을 가졌다.
조 사장은 추모사에서 "유 박사의 일생은 모든 것이 신의와 성실에 기초한 진취적인 기업가요, 선구적인 교육가요, 헌신적인 사회운동가, 애국애족의 독립운동가였음을 되새기게 한다"고 말했다.
유 박사는 한국 기업의 선구자로서 1926년 '건강한 국민만이 주권을 되찾을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제약사 유한양행을 설립했다. 1971년 3월 11일 작고할 때까지 기업의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고 공익법인 유한재단을 설립하는 등 모범적인 기업 활동과 이윤의 사회 환원 정신을 몸소 실천한 기업인이었다.
그는 '기업은 사회의 것'이라는 일념으로 1936년 개인기업이던 유한양행을 주식회사 체제로 전환했고, 우리나라 최초로 종업원지주제를 채택했다. 국내에서는 두 번째로 주식 상장을 통해 기업공개를 단행(1962년)했고, 1969년에 이미 경영권 상속을 포기하고 전문경영인체제를 정착시켰다.
영면 이후 공개된 유언장에서 유 박사는 손녀 유일링(당시 7시)의 학자금 1만달러를 남기고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했다. 유 박사의 딸인 고 유재라 여사도 지난 1991년 세상을 떠나며 보유 주식 등 200억원대 재산 모두를 사회에 기부해 2대에 걸쳐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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