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지가 나빠서? 자원이 없어서? 불평하지 마라 나라의 가난은 정치 때문이야

김슬기 기자(sblake@mk.co.kr) 2023. 3. 10.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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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문화·인구이동·자원
상호 작용하며 경제 성장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게임의 규칙'인 정치제도
【게티이미지뱅크】

'세상은 어떻게 부유해지는가.' 이 책의 원제는 사회과학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이었다. 두 저자는 "부의 기원에 관한 단 하나의 명쾌한 답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결론부터 내린다.

인류의 역사는 수천 년간 불가능할 것 같던 빈곤의 굴레를 타파하고 부를 쌓기 위한 투쟁의 역사이기도 했다. 촉망받는 미국 경제학자 마크 코야마 조지메이슨대 경제학과 교수, 재러드 루빈 채프먼대 경제학과 교수가 애덤 스미스, 재러드 다이아몬드, 장하준 등 다양한 연구자들의 이론을 통해 경제학의 궁극적인 물음인 부의 탄생 설화를 집대성한 책이 나왔다.

세계는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부유하다. 증거는 넘쳐난다. 오늘날 많은 나라의 평균 소득은 한 세기 전 세계 최고 부국이던 미국의 평균 소득보다 높다. 우리의 가장 부유했던 선조들조차 우리가 누리는 스마트폰이나 평면 TV 같은 사치품은 물론, 실내 수도, 전기, 예방접종, 낮은 아동 사망률, 긴 기대수명을 누리진 못했다. 빈곤에서의 탈출은 단 하나의 원인으로만 가능했다. '경제성장'이다. 저자는 취약 계층 보호, 여성 역량 강화, 건강, 문해력, 교육, 여가 활동 등 공정사회를 만들기 위한 과제들조차 경제성장을 통해서만 이룰 수 있음을 강조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폭력과 불관용, 정치적 양극화가 가장 극심하게 나타나는 곳도 경제가 쇠퇴하는 지역이었다. 경제성장이 이뤄지지 않으면 공정한 사회조차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경제성장의 대부분은 지난 2세기 동안 산업혁명 이후에 이뤄졌다. 경제가 용솟음치듯 발전한 '성장의 개화'를 통해서다. 과거에도 일시적 도약은 있었다. 고대 그리스, 이슬람 지역, 중국 송대, 몽골 등에서다. 하지만 이들이 일시적 성장에 그친 이유는 빠른 가속화를 만들지 못해 부족해진 지속성이다.

부의 빅히스토리 마크 코야마·재러드 루빈 지음 유강은 옮김, 윌북 펴냄, 2만4800원

이 책은 '부국'이 "경제가 쪼그라드는 시기를 더 적게 경험한 나라"라고 정의한다. 선진 세계는 경제 구조가 다르다. 지속적인 경제성장은 사회와 생산의 극적인 재조직화를 동반한다. 도시화와 더불어 제조업, 서비스 부문 같은 비농업 부문의 성장이 이뤄지면 공장, 대기업, 주식시장이 성장하는 선순환이 일어난다.

경제학자, 역사학자, 정치학자 등 사회과학자는 주로 지리, 제도, 문화, 인구 변동, 식민주의 등 부의 기원이 된 하나의 측면에만 초점을 맞추며 다른 논증은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 책의 절반가량은 '하나의 원인설'을 논파하는 데 집중한다. 예를 들어 '석탄 매장량'은 영국이 부상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일본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종교'는 중동의 경제성장에 영향을 미쳤지만 중국에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번영의 요인은 결코 하나가 아니며, 역사적 맥락 속에서 상호작용을 통합적으로 살필 때만 완전한 답을 얻을 수 있다.

책의 후반부는 여러 연구의 강점과 약점을 평가하며 가장 설득력 있는 주장을 가려낸다. 산업혁명의 발상지 영국에 초점을 맞춰 북서부 유럽의 경쟁력을 분석하며 저자들은 경제 발전과 정치 발전의 연관성에 주목한다. "정치 제도가 경제성장을 부추기거나 약화하는 역할을 해왔다는 사실을 배제한 채 장기적 경제성장에 관한 설득력 있는 이야기를 풀어낼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가장 극적인 실증은 한국에서 찾을 수 있다. 책의 10장에서는 한강의 기적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한국을 비롯한 고도성장 국가들에는 공통점이 있음을 짚어준다. 문화 규범, 시장 접근성, 지리는 중요한 요인이다. 이 모든 것보다 중요한 것은 '게임의 규칙'인 정치 제도다. 한반도의 남과 북에서 분화된 정치 제도는 경제사에서 유례없는 성장의 극적인 양극화를 만들어냈다. 또 문화는 제도와 상호작용하며 성장을 가속화하는 강력한 요인이다. 문화는 결혼과 출생률도 좌우한다. 교육을 중시한 개신교와 유럽의 개인주의, 중국의 친족 기반 문화는 각각 시대에 따라 경제 선도국이 되는 데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

다행히 이 책은 번영하는 세계의 미래에 관해서도 낙관적이다. 경제성장은 기후위기의 가장 큰 원인이지만, 해결책의 핵심이기도 하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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