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큰 일'에 韓반도체 당혹…겪고보니 자립 키운 '예방주사'

세종=김훈남 기자, 최민경 기자, 세종=유선일 기자, 한지연 기자 2023. 3. 10. 07: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MT리포트]수출규제 4년 무엇을 남겼나(上)

[편집자주] 윤석열정부가 6일 강제징용과 관련한 해법을 제시하고 일본과의 관계개선을 공식화하면서 2019년 7월 일본의 기습으로 시작된 수출규제도 4년만에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 전망이다. 반도체·디스플레이 필수 3대 소재를 공격한 일본의 수출 규제를 시작으로 후방 산업에선 공급망 재편을 통한 특정국가 의존도 낮추기 작업이 진행됐고 소비자들 사이에선 노노(NONO)재팬으로 불리는 일본 상품 거부 움직임이 일상화됐다. 지난 4년간 수출규제가 우리 산업과 시장에 준 변화를 진단하고 일본과의 통상갈등 해소 이후 우리 경제가 집중해야할 과제를 짚어본다.

韓 반도체 몰락 노린 4년 전 '日의 기습'…독 아닌 약이 됐다
2019년 7월 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딜라이트를 찾은 관람객이 전시된 반도체웨이퍼를 살펴보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이날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리지스트, 고순도 불화수소(에칭가스) 등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패널 핵심소재에 쓰이는 3개 품목에 대해 한국 수출 규제를 강화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추가로 외국환관리법상 우대제도인 '화이트(백색) 국가' 대상에서 한국을 아예 제외하는 내용으로 정령(한국의 시행령에 해당)을 개정하기 위해 이날부터 의견수렴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사진=뉴스1


# 2019년 6월30일 산케이신문과 니혼게이자이신문 등 주요 일본 언론은 일제히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조치를 보도했다. 반도체·디스플레이 제조공정에 들어가는 핵심소재인 포토레지스트와 불화수소, 불화폴리이미드에 대한 수출 허가를 강화하고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관리 우대대상국)에서 제외하는 조치였다. 2018년 기준 포토레지스트의 일본산 의존도는 93.2%. 우리 주력 산업 반도체를 노린 명백한 기습이었다.

일본의 기습적 수출규제 이후 4년. 우리 반도체 산업은 지난해 역대 최고액 수출이라는 기록을 써냈다. 불시의 기습에도 실제 반도체 공정이 멈추는 최악의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다. 오히려 일본산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면서 미-중 패권경쟁, 코로나19(COVID-19) 대유행 이후 전면으로 떠오른 공급망 리스크의 예방주사를 맞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9일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100대 소재·부품·장비 핵심전략기술 품목 가운데 일본 제품의 수입 비중(의존도)은 2018년 32.6%에서 지난해 21.9%로 10.7%p(포인트) 감소했다. 이 가운데 반도체 품목 수입액 중 일본 비중은 2018년 34.4%에서 지난해 24.9%로 9.5%p 감소했다.

일본이 수출규제 품목으로 내걸었던 3대 품목을 살펴보면 포토레지스트의 일본산 의존도는 2018년 93.2%에서 지난해 77.4%로 15.8%p 하락했다.

같은 기간 불화수소는 41.9%에서 7.7%로, 불화폴리이미드는 44.7%에서 33.3%로 떨어졌다.

지난해까지 반도체 수출액이 증가함에 따라 수입액은 늘었지만 일본산 필수소재에 대한 의존도가 약화된 것으로 파악됐다.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소재에 대한 일본의 공격은 역설적으로 우리나라 제조업의 공급망에 대한 접근 방식을 '생산성'에서 '안보' 개념으로 바꾸는데 기여했다. 품질이 보장되고 가격이 적절했던 일본 제품에 대한 높은 의존도가 약점으로 드러났고 우리 주력 제조설비가 멈추지 않는 것도 고려하게 됐다.

정부와 산업계의 움직임도 빨라졌다. 일본의 수출규제가 나온 한달뒤 소재·부품·장비 경쟁력강화대책을 마련하고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통해 R&D(연구개발) 예산 2485억원을 투입했다. 2021년 일몰예정이었던 소부장 특별법은 상시법으로 전환하는 한편 특별법 지원 대상을 소재와 부품에서 소재·부품·장비로 확대하는 등 공급망 안정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

반도체·디스플레이 업계 역시 불화수소와 불화폴리이미드 국산화에 성공했고 일본 의존도가 가장 높았던 포토레지스트는 유럽으로의 공급망을 확대했다. 제도적 기반을 바탕으로한 국산화와 수입선 다변화 노력을 병행한 결과가 핵심소재 일본 의존도 하락으로 이어졌다는 평가다.


특히 세계경제 패권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힘겨루기가 거세지고 2020년초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세계 물류에 차질이 발생하면서 안정적인 공급망 확보 필요성이 커졌다. 코로나보다 반년가량 앞선 일본의 기습에 대응한 경험이 공급망 안정화 필요성을 일찌감치 깨닫게 한 셈이다.

정부는 일본의 수출규제 1년이 지난 2020년 7월 대일 전략품목으로 설정했던 소부장 정책 대상을 글로벌 차원의 338개 이상 품목으로 확대했다. 코로나19 이후 예상되는 공급망 재편에 대비하는 한편 미래 시장 선점을 위한 공격적인 육성 정책을 내놓은 셈이다. 반도체 뿐만 아니라 바이오와 미래차 등 소부장 공급망 확보가 필수적인 산업에 대한 R&D 투자를 확대하고 중소·벤처기업 경영자금 지원 정책이 따라왔다.

이같은 소부장 강화 정책은 윤석열정부에서도 이어졌다. 산업부는 2030년까지 핵심 소부장 품목에 대한 국내 생산 비중을 50%이 상으로 올리고 특정국 의존도를 50%이하로 낮추기 위한 '산업공급망 3050' 전략을 올해 업무계획에 담았다. 바이오와 우주, 방산 등 첨단산업 중심의 소부장 핵심전략기술을 150개에서 200개로 확대하는 한편 2030년 200개 소부장 으뜸기업을 육성한다는 목표를 담았다. 2020년 개정한 소부장 특별법도 상반기 중 개정, 대체수입선 발굴 등 공급망 다변화 체계를 지원할 예정이다.

이시욱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대학원 교수는 "일본 수출규제 이후 지정학적 리스크로 인해 국내 소부장 기업의 지원을 통한 공급망 안정화를 꾀하는 계기가 됐다"며 "경제적 이해 관계가 비슷한 우리와 일본 정부가 얽혔던 실타래를 풀면서 국제사회 공조를 추구하는 한편 국내에서도 공급망을 강화할 수 있는 대기업-중소기업 상생 분위기 등을 만드는 것은 바람직 하다"고 말했다.

"日과 협력 환영·국산화 노력 계속"…두 마리 토끼 잡는 韓반도체

일본의 수출규제 해제를 앞두고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공급망 불확실성이 해소되는 동시에 일본과의 반도체 산업 협력이 늘어날 것으로 본다. 4년 가까이 지속된 소부장(소재·부품·장비) 핵심 품목에 대한 국산화 노력은 공급망 다변화 전략의 일환으로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일본의 반도체 핵심소재 수출 규제가 풀리면 한일 양국의 반도체 산업이 새 국면을 맞는다. 우선 반도체 산업 공급망의 잠재적 리스크가 사라진다. 소부장은 장치산업인 반도체 산업 특성상 제조 기업 근처에 공장을 두는 '현지공장화'를 하는 경우가 많다. 거리가 가까울수록 운송료 등이 적게 들고 품질도 좋아지기 때문이다. 국내 반도체 업계는 이번 수출 규제 해제로 일본 소부장 업체들의 한국 현지 공장화가 더 많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업계는 양국 분위기가 해빙되면 R&D(연구개발) 등 더 적극적인 수준의 협력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한다. 그간 두 나라의 관계 자체가 얼어붙은 탓에 일본이 수출 규제한 3가지 핵심 소재(에칭가스·포토레지스트·폴리이미드)가 아니더라도 반도체 산업 협력 자체에 있어 기업들이 정부의 눈치를 봐야했다.

일본 의존도가 높았던 일부 품목을 국산화해낸 것과 별개로 일본이 여전히 소부장에서 글로벌 탑의 위치를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한 예로 반도체 기판에 사용되는 마이크로 필름 ABF는 일본의 아지노모토가 100% 독점 생산한다. ABF가 없으면 아예 IC칩을 만들 수 없는 셈이다. 후공정에서도 일본의 이비덴, 신코, 레조나크, 아지노모토 등이 글로벌 우위를 점하고 있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은 "반도체 기술 발전을 위해선 한국과 일본 간 협업이 많이 필요하다"며 "수출 규제 당시에는 기업 협력에도 일본 정부가 관여했지만 (수출 규제 해제로) 그런 리스크가 제거되면 일본과의 소부장 협업이 더 잘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반도체 기업들은 소부장 국산화 시도는 더 확대할 방침이다. 4년 전 '큰 일'이 예방주사가 된만큼 공급망 다변화 노력을 이제 와서 줄일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반도체 관련 품목 수출 규제 당시 당혹스러웠던 것은 사실이지만, 실질적 타격은 미비했다는 것이 국내 반도체 업계의 중론이다. 규제가 소재에 대한 수출 허가가 '포괄'에서 '개별'로 변경된 것인만큼 완전한 수출 금지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일본으로서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메모리반도체 맹주가 있는 한국 시장이 무시할 수 있는 정도의 규모가 아니었다. 오히려 일본의 수출 규제를 피해 일본 소부장 기업들이 한국에 생산라인을 구축하기도 했다. 일본 스미토모 자회사인 동우화인켐은 2021년에 전북 익산에 생산라인을 건설했다.

일본 수출규제가 오히려 한국의 소부장 경쟁력 강화 계기가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국내기업인 솔브레인과 SK머티리얼즈가 불화수소 국산화에 성공했다. SKC코오롱PI는 폴리이미드를 제조한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100대 소부장 핵심전략기술 중 반도체 핵심품목 수입액의 일본 비중은 수출규제 전인 2018년 34.4%에서 지난해 24.9%로 9.5%포인트 줄었다.

국내 반도체 기업 관계자는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민관이 협력해 국산화 노력에 매달리면서 지금은 일본산을 대체할만큼 시스템을 갖춘 상황"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그 사이 전세계적 반도체 패권 경쟁이 더 심화되면서 공급망 안정화를 위해선 반드시 다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기업들이 더 체감했을 것"이라며 "일본 수출 규제가 해제되더라도 국산화도 다변화의 한 축이니,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더 하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소부장 공급망 日 전환 가능성 낮다"…"결국은 기술 자립뿐" 목소리
[세종=뉴시스] 강종민 기자 = 강감찬 산업통상자원부 무역안보정책관이 6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한국과 일본 정부는 수출규제에 관한 현안사항에 대해 지난 2019년 7월 이전 상태로 되돌리기 위한 양자협의를 신속히 해나가기로 했다고 밝히고 있다. 2023.03.06.

"국내 반도체 기업이 소재·부품 공급망으로 일본 기업으로 전환할 가능성은 낮다"

일본의 수출 규제 이후에 대한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지난 4년간 우리 기업들이 주요 소재·부품에 대한 일본 의존도를 많이 낮췄다는 이유에서다. 향후 한일 관계가 재차 악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도 주된 근거다.

다만 일본의 글로벌 부품·소재 경쟁력 등을 고려할 때 양국간 안정적 협력 관계를 이어갈 필요가 있다는 조언이다. 궁극적으론 한국의 기술 자립도를 계속 높여갈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9일 전문가들은 일본의 수출 규제가 풀려도 삼성·SK 등이 수출 제한 3대 품목(포토레지스트, 고순도 불화수소,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공급망을 일본 기업으로 전환할 가능성은 낮다고 진단했다.

지난 2019년 일본의 수출 제한 조치 후 우리 기업들이 주요 소재·부품·장비(이하 소부장)에 대한 국산화, 공급망 다변화로 일본 의존도를 크게 낮췄기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한국의 100대 소부장 핵심전략기술 일본 수입액 비중은 2018년 32.6%에서 지난해 21.9%로 떨어졌다. 반도체 분야 100대 소부장 핵심전략기술 수입액 비중은 같은 기간 34.4%에서 24.9%로 감소했다.

송영관 KDI(한국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일본 수출 규제 해제 시 국내 기업에 있어) 단기적 효율성 측면에서는 긍정적"이라면서도 "정치적 문제나 소재·부품의 안정적 공급 여부 등을 고려할 때 삼성·SK가 일본 기업으로 공급망을 전환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김규판 KIEP(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삼성·SK는 3대 수출 제한 품목의 공급망을 이미 많이 대체했을 것"이라며 "수출 규제 해소가 현재로선 한국 기업에 혜택을 주는 상황이 아니다. 삼성·SK가 거래상 우위에 있는 구조"라고 말했다. 이어 "(공급망 변화는) 철저히 시장 경쟁 원리에 입각해 결정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뉴스1) 오대일 기자 =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6일 오후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배상 문제 해결을 위한 대통령실 입장을 브리핑하고 있다. 2023.3.6/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다만 이번 수출 규제 해소, 나아가 한일 관계 복원이 우리 산업계 전반에 도움이 될 것이란 분석이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고품질 부품·소재에 있어 일본의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에 공급망 확보 차원에서 수출 규제 해소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한일 양국 간 협력을 위해선 CPTPP(포괄적·점진적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IPEF(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와 같은 경제협력체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다. 아울러 국제 관계의 변화 가능성, 프렌드쇼어링(우호국과의 공급망 구축) 확대 흐름 등을 고려하면 궁극적으로는 우리나라 기술 자립도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송 선임연구위원은 "핵심 (소재·부품 등) 부문에서 중국·일본과의 파트너십이 강화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며 "결국 한국의 대응책은 기술 자립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 기업으로선 베트남 등으로 생산기지 이전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선 일본·베트남·호주·캐나다 등이 가입된 CPTPP에 가입할 필요도 있다"고 밝혔다.

김 연구위원은 "미국을 중심으로 구성된 IPEF를 통해 한일 간 공급망 협력이 필요하다"며 "지금은 '자원 전쟁'의 시대다. 일례로 한국과 일본이 제3국에서 희토류 등을 공동 개발·조달하는 협력을 하게 된다면 큰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김훈남 기자 hoo13@mt.co.kr, 최민경 기자 eyes00@mt.co.kr, 세종=유선일 기자 jjsy83@mt.co.kr, 한지연 기자 vividhan@mt.co.kr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