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와우리] ‘일제중대인권침해’ 상설 조사위 설치를
美·EU도 인권 언급없이 환영성명
전후 일제잔학행위 처벌·조사 부족
역사왜곡 초래… 사실·책임규명 시급
지난 6일 정부의 갑작스러운 ‘일제 징용 판결 문제 해법’ 발표에 당혹스러운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강제노동협약 등을 위반한 일본 정부와 기업의 사죄나 책임 인정 없이 포스코 등 한국 기업이 채무 변제를 한다. 미국, 유럽연합(EU)의 한·일 발표 환영 성명에는 ‘인권’은커녕 ‘강제노동’ 언급조차 없다. 이런 역사와 국제법의 실종에 대응하려면 지금이라도 상설 일제중대인권침해 조사위원회 설치를 통한 사실규명, 책임규명 작업이 필요하다.
전후 뉘른베르크 및 도쿄 국제군사재판소에서 전시 독일 및 일본 수뇌부에 대한 재판이 열리고, 개별 연합국 법원에서 하급 전범들이 기소되었다. 그런데 독일을 점령한 연합국은 1933년 나치 집권 후 유대인, 반체제인사 탄압 관련 처벌을 독일 사법체계에 맡겼고 1949년 독일 연방공화국 수립 후에도 독일 법원에서 나치 전범 처벌은 계속되었다.
반면 연합국은 일본인이나 조선인, 대만인에 대한 잔학행위는 처벌하지 않았으며, 연합국 포로나 민간인에 대한 전쟁범죄는 연합국 법정에서만 다루었다. 1952년 점령 종료 후에도 일본 법원에서 일제 전범 처벌은 전무했다. 일제 만행의 사실규명과 책임규명이 더뎠던 근본 원인이다.
게다가 유럽의 나치 침략 피해국들과 달리 아시아의 일제 침략 피해국들은 한국처럼 전후 식민통치에서 벗어난 가난한 독재국이 대부분이었다. 신생 정부들은 정치경제적 고려로 국내 배보상 요구를 억눌렀다. 1965년 한국이 청구권협정으로 5억달러를 받았지만 사망자 8910명에 대한 소액 보상만 실시하고, 1972년 중국이 1000억달러에 달하던 배상청구를 포기한 배경이다.
전후 국가 차원의 일제 잔학행위 조사도 요원하였다. 1990년대 초 일본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공론화되자 뒤늦게 조사에 나섰지만 조사 주체는 독립성, 전문성이 없는 내각 외정심의실의 외무성 출신 관료들이었다. 이들은 문서 조사를 중시하면서도 연합국 전범재판 기록은 배제했다.
1993년 8월 ‘위안부’ 모집의 강제성을 인정하고 사죄한 고노담화는 이런 부실한 조사 결과 후 나왔다. 일본 우파는 이를 한국과의 ‘정치적 야합’이라 비판했고, 아베 정권의 ‘고노담화 검증’ 여론전도 여기에 초점을 맞추었다. 한국 정부는 ‘고노담화’ 작성 과정이 아닌 ‘위안부’ 제도 자체에 대한 국제조사를 역으로 제안할 수 있었지만 담화 계승만 요구하는 데 그쳤다.
한국은 2004년 일제 강제동원조사위원회가 설치되었으나 국내 과거사 조사위를 모델로 한시 기구로 만드는 바람에 몇 차례 연장 끝에 2015년 문을 닫았다. 최근에는 일제 군수공장이자 강제노역 현장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추진도 가능한 인천 일본육군조병창의 핵심 건물 철거까지 개발 목적으로 강행되고 있다.
일제 강제노역과 성노예 범죄가 한·일 간 ‘역사관 차이’(영국 이코노미스트지)로 치부되는 몰인권적 시각은 유감이지만 우리 책임도 크다. 이스라엘의 야드바셈처럼 상설조사기구를 설치하여 객관적 사실과 국제법에 입각한 조사, 자료 번역과 홍보, 관련 기록과 유적지 보존과 세계유산 등재 등 적극적 노력이 요구된다.
신희석 전환기정의워킹그룹 (TJWG) 법률분석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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