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황군’ 그렸던 자리에 ‘베트남 파병 국군’을 그려 넣다

한겨레 2023. 3. 9.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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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사라진 그림 이야기다.

<적진육박> 이라는 그림도, 그림에 대한 기억도 스리슬쩍 사라졌다.

정말 사라졌을까? 1972년 김기창은 <적영> 이라는 그림을 그렸다.

1992년 한국과 베트남이 수교하자 더욱이나 불편한 그림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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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역사다]

[나는 역사다] 운보 김기창 | <적진육박>(1944~), <적영>(1972~)

지금은 사라진 그림 이야기다. 1944년 3월10일 결전미술전람회가 열렸다. 경복궁에 있던 조선총독부미술관 등에서 태평양전쟁에서 일본군을 응원하는 전쟁선전 미술작품들을 전시했다. 조선총독부 정보과와 조선군사령부 보도부 등이 후원했다. 조선인 화가 김기창도 참여해 일본화 부문 조선군 보도부장상을 받았다. 어린이 잡지에 사진이 실리기도 했다.(이 사진이 나중에 발목을 잡을 줄이야.)

제목은 ‘적진육박’. 착검된 소총을 든 살기등등한 군인이 밀림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가는 장면을 위에서 내려다본 구도다. 그림은 좋다. 적도 부근 남양군도에서 적진으로 몰래 다가가는 ‘일본 황군’의 늠름한 모습이다. 전쟁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일본 만화가 미즈키 시게루의 회고를 보면, 항복 대신 옥쇄를, 운 좋게 살아남아도 자결을 강요받는 게 황군의 현실이었다.

이듬해 해방이 왔다. 해방 뒤 운보라는 호를 쓰기 시작한 김기창은 여전히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였다. 오랜 세월 만원권 지폐에 자리잡았던 세종대왕 얼굴도 그가 그렸다. <적진육박>이라는 그림도, 그림에 대한 기억도 스리슬쩍 사라졌다.

정말 사라졌을까? 1972년 김기창은 <적영>이라는 그림을 그렸다. ‘적 그림자’라는 뜻이다. 그림은 좋다. 베트남 전쟁터에서 적진을 향해 몰래 다가가는 한국군의 늠름한 모습을 담았다. 월남전쟁기록화전에 출품됐던 작품인 이 그림을 당시 국무위원들이 사서 국방부에 기증했고, <적영>은 국방부 현관에 내걸렸다.

눈 밝은, 기억력 좋은 이들이 <적영>의 비밀을 알아차렸다. 자세도 구도도 <적진육박>과 똑같았다. <적진육박>의 ‘황군’은 사라지지 않았다. 군복을 갈아입고 <적영>에서 되살아났을 뿐. 이런 그림이 국방부에 걸리니 논란이 일 수밖에. <적영>은 다른 우여곡절도 겪었다. 1979년 12월 전두환 일당의 쿠데타 때 국방부 건물에서 총격전이 벌어지면서 그림 속 병사가 눈알에 총탄을 맞았다나. 나중에 해당 부분을 복원했다고 한다. 1992년 한국과 베트남이 수교하자 더욱이나 불편한 그림이 됐다.

2018년 3월16일 <적영>은 국방부 현관에서 떼어졌다. 문재인 대통령의 베트남 방문을 일주일가량 앞두고 있던 때였다.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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