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아니면 돼!

한겨레 2023. 3. 9.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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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연예인 여럿이 지방 어딘가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유명 예능프로그램에 시그니처 대사가 있었다.

그래서 '나만 아니면 돼'는 우리 모두가 이심전심 공유하는 현실이자 우리 아이들에게는 치명적인 독극물이다.

너네는 백년 전 탄소 배출하며 선진국이 됐으면서, 왜 지금 우리의 발전은 막느냐는 항변에 그나마 저공해산업으로의 변환을 생각할 여유가 있는 나라도 말문이 막혔다.

'나만 아니면 돼'가 아니라 '나라도 해야지'라는 그 용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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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틱]

지난해 10월6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올림픽공원에서 신영초등학교 학생들이 수원환경운동연합, 다산인권센터, 인권교육온다와 함께 기후 위기 대응을 촉구하는 캠페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크리틱] 임우진 | 프랑스 국립 건축가·<보이지 않는 도시> 저자

남자 연예인 여럿이 지방 어딘가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유명 예능프로그램에 시그니처 대사가 있었다. 얼굴이 클로즈업된 강호동씨가 과장된 표정으로 소리치면, 그 화면 아래에 큼지막한 폰트로 이 대사가 떴다. 또 다른 유명 예능프로그램에서도 벌칙을 받는 꼴찌가 되지 않기 위해 서로 안간힘을 쓸 때마다 단골로 이 문구가 등장했다. “나만 아니면 돼!”

‘지속가능한 발전’

언젠가부터 많이 들려오지만, 피부에 딱 와닿지는 않는 말이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위기의식이 커지며 199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유엔환경개발회의(UNCED)에서 채택된 21세기 지구환경보전을 위한 기본원칙이다. 미래세대에 필요한 자원을 남겨 두면서도, 현세대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방법을 찾자는 슬로건이다. 미래세대도 최소한 우리 세대만큼은 살 수 있도록 보장하는 한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과 자연자원을 소비하자는 뜻이다.

지금 당장 탄소배출을 막을 현실적인 대안이 없어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완곡한 표현을 사용했고 그래서 다소 편하게 들리는 맹점이 있지만, 지구온난화의 실체적 진실을 마주하면 간담이 서늘해진다. 이상기온으로 인한 극단적 가뭄, 혹서, 한파는 이제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매년 천만명이 들르는 프랑스의 알프스 스키장들은 이번 겨울에 반 이상이 이상고온으로 개장하지 못했고, 앞으로 아이들에게 스키를 가르치는 게 의미가 있을까 자문하는 단계까지 왔다. 빙하가 녹으며 바닷물 수위가 오르는 현상은 더 치명적이다. 느린 속도여서 체감하지 못하는 해수면 상승은, 백년 안에 전세계 수많은 도시를 수장시킬 것이다. 지구 전체로 보면 6억명 넘는 인구가 해발 10m 아래 도시에 사는데, 뉴욕, 런던 상하이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지구는 약 10퍼센트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남은 땅에 수용할 역량이 있을까? 우리나라 해변도 예외가 아니다. 부산 인구의 두배에 이를 이주자를 한국의 다른 도시들이 수용할 수 있을까?

진실과 대면할수록 인류가 생존할 수 있을지 더욱 암담해지지만, 아이러니한 것은 그때마다 “그래서 어떡하라고?” 식의 문제에 봉착한다는 것이다. 개인이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문제가 너무 거대해, 마치 다른 세상 일처럼 모호하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내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가 물속에 가라앉고 있는데도, 나에게는 지금 떨어지는 집값이 더 걱정이다. 아마도 나는 없을, 나와 상관없는 먼 미래 때문에 지금 나의 안락과 쾌락을 깨는 것은 왠지 손해 보는 장사 같다.

그래서 ‘나만 아니면 돼’는 우리 모두가 이심전심 공유하는 현실이자 우리 아이들에게는 치명적인 독극물이다. 심각성을 절감한 학자들과 여러 단체의 노력으로 잘사는 유럽연합(EU)과 몇 나라는 탄소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탄소배출권 거래 제도라도 도입했지만, 전세계 3분의 2가 넘는 나라는 자국 산업에 악영향을 끼친다며 참여를 거부했다. 너네는 백년 전 탄소 배출하며 선진국이 됐으면서, 왜 지금 우리의 발전은 막느냐는 항변에 그나마 저공해산업으로의 변환을 생각할 여유가 있는 나라도 말문이 막혔다. 결국 우리 모두는 조금씩 데워지는 솥 안에서 모두 공멸할 개구리가 될 운명이다.

‘그래서 무슨 말이 하고 싶은데?’ 같은 짜증 가득한 반문으로 채워질 공허한 거대담론을 되풀이하려는 게 아니다. 단지 한겨울 방바닥이 서늘하다고 실내온도를 올리고 반팔 옷을 입는 대신 실내화와 내복을 입고 실내온도를 내릴 용기, 한두층 올라가기 위해 20층 위에 있는 승강기를 불러 내리는 대신 계단을 걸어 오를 정도의 용기가 우리에게 있는지 궁금할 뿐이다. ‘나만 아니면 돼’가 아니라 ‘나라도 해야지’라는 그 용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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