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 과학용어]2가·4가·9가… ‘다가백신’ 숫자 클수록 좋을까?

송복규 기자 2023. 3. 9.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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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궁경부암(HPV) 백신은 자궁경부암의 발생을 줄여줍니다. 종류는 2가백신과 4가백신, 9가백신이 있습니다.

한 산부인과 의원에서 인유두종바이러스(HPV) 백신 접종을 권유하기 위해 온라인 홈페이지에 올린 광고입니다. 자궁경부암은 알겠는데, 바로 다음에 2가·4가·9가처럼 종류가 있다고 합니다. 백신을 접종하기 위해 알아본 사람이라면 질병과 상관없이 숫자로 된 백신 종류를 봤을 겁니다. 잘 모르고 보면 숫자가 높을수록 좋다는 인식이 생길 수 있습니다.

병원의 광고에 나온 것처럼 숫자가 붙은 백신을 ‘다가(多價)백신’이라고 합니다. 말 그대로 다수의 바이러스에 대응할 수 있는 백신입니다. 최근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오미크론 변이에 대응하기 위해 2가 백신이 많이 쓰입니다. 미국 제약사 모더나와 화이자의 2가 백신은 이미 널리 접종되고 있고, 일본 제약사 다이이찌산쿄는 연내 허가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단가백신을 내놨던 한국도 2가 백신 개발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다가백신은 정확히 어떤 것을 의미하고, 흔히 가지고 있는 오해는 무엇일까요? 조선비즈는 다양한 질병에 사용되는 다가백신이 정확히 무엇인지 면역 분야 전문가인 정학숙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테라그노시스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이학박사)과 함께 풀어봤습니다.

서울 종로구 세란병원에서 의료진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오미크론 BA.4/5 변이 기반 모더나 2가 백신을 살펴보고 있다. /뉴스1

◇숫자는 성능 표시다?

다가백신은 한 바이러스 내에 속해 있는 다른 형(形)에 대한 항원성을 두 가지 이상 포함하고 있는 백신을 말합니다. 이해하기 쉽게 독감으로 예를 들겠습니다. 독감은 A형과 B형, C형으로 나뉩니다. 이 중에서 백신을 접종하는 것은 A형과 B형인데, A형의 경우 바이러스를 구성하는 물질의 종류가 많습니다. 이 물질들의 배합에 따라 독감 바이러스도 달라집니다. 이렇게 달라지는 바이러스 특성을 고려해 여러 개의 항원을 만들고, 그걸 모두 백신에 담으면 다가백신이 됩니다. 2가 백신이라면 항원이 2개인 셈인 겁니다.

여기서 ‘여러 가지 항원을 모두 백신에 담으면 좋은 건가?’라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백신에 항원을 무한정으로 넣을 순 없습니다. 항원은 우리 몸에 들어와 특수한 반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의 일부분입니다. 항원이 몸에 들어오면 면역계가 탐지하고 몸을 보호하기 위해 항체를 만듭니다. 항체는 항원을 무력화시키는데, 이런 방식으로 특정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체계를 만드는 것이 백신입니다.

백신은 치명적이지 않으면서 면역체계를 만들 수 있는 기준을 잘 잡아야 하는 기술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항원을 무작정 많이 넣으면 몸에서 거부반응을 일으키고 부작용이 나타나 날 수 있습니다. 항원의 적정량을 유지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무서운 질병일수록 백신 개발이 어려운 이유입니다. 사람에게 부작용을 일으키지 않을 항원의 용량을 100이라고 친다면, 2가 백신의 경우 서로 다른 2개의 항원을 50대 50으로 나눠야 합니다.

백신의 효능을 유지하는 것도 다가백신을 개발할 때 중요한 점입니다. 항원을 오른손잡이인 사람의 주먹에 비유해보겠습니다. 오른손만 이용해 주먹으로 사물을 친다면 힘이 강하게 실리지만, 양손을 이용해 타격하면 힘도 떨어지고 금방 지칠 겁니다. 이처럼 항원을 여러 가지 넣어 9가 백신을 만들었다고 해도 면역체계를 만들 정도의 효능이 안 되면 백신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면역체계를 만들었다고 해도 항원의 힘이 약해 백신 효과가 얼마 가지 못하고 사라집니다.

◇다가백신의 ‘선택과 집중’

항원의 효과가 필연적으로 분산될 수밖에 없는 다가백신은 ‘선택과 집중’으로 효능을 높여야 합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다가백신을 만들 땐 넣을 수 있는 항원의 용량이 제한적이기 때문입니다.

백신의 효능을 높이기 위해선 바이러스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야 합니다. 항원에는 우리 몸에서 만들어낸 항체가 부착되는 ‘에피토프(Epitope)’라는 부분이 있습니다. 에피토프를 잘 설정해서 ‘집중’적으로 공략할 수 있는 백신을 만들면 치명적인 반응을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습니다. 이 방법을 개발하고 훈련하는 것이 다가백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 질병통제센터(CDC)가 공개한 코로나19 바이러스 모형. /AP 연합뉴스

또 다른 다가백신의 키워드는 ‘선택’입니다. 독감으로 계속 설명하자면, A형 독감은 헤마글루티닌(HA)과 뉴라미니다제(NA)라는 물질로 구성됩니다. HA는 18가지, NA는 11가지의 종류를 가집니다. 독감은 수많은 인명피해를 낳을 수 있는 대표적인 질병이지만, 구성하는 물질 종류가 많아 주로 A형과 B형 내 항원을 고려해 3가나 4가 백신을 접종합니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매년 2월 말 그해에 유행할 독감 바이러스를 선정합니다. 다가백신의 효능을 극대화하기 위해 유행할 것으로 예상되는 항원을 예측하는 겁니다. 백신 제조사는 WHO의 발표를 참고해 매년 10월부터 접종할 독감 백신을 만듭니다. WHO의 예측이 정확할 경우 독감 백신 방어율이 60%에 달하지만, 예측이 실패한 경우에는 방어율이 10%로 떨어지기도 합니다.

◇다가백신은 단가백신보다 안전할까

백신에선 예방도 중요하지만 안전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최근 질병관리청은 코로나19과 관련해 2가 백신 접종을 적극적으로 권고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단가백신보다 2가백신이 부작용이 더 적게 나타났으니 안심하고 접종하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오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SK바이오사이언스 연구소에서 연구원이 국산 1호 코로나19 백신 '스카이코비원'을 들어보이고 있다. /뉴스1

질병관리청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올해 1월까지 접수된 코로나19 백신 이상 사례는 총 48만2451건이었는데, 2가백신의 이상 사례가 단가백신보다 적었습니다. 단가백신의 이상 사례는 1000건당 3.72건으로 나타났고, 2가백신은 1000건당 0.38건이었습니다. 통계적으로 거의 10배 이상 차이가 나는 셈입니다. 현재 활용되는 2가 백신은 화이자와 모더나에서 개발된 것들입니다.

다만 중앙방역대책본부의 통계에 왜곡이 있을 수 있다는 전문가 의견도 있습니다. 코로나19 백신 접종 초기에 단가백신을 접종한 사람 중 부작용이 있던 사람들은 2가백신을 접종하지 않았을 것이고, 이 때문에 2가백신을 접종한 사람의 풀이 자연스럽게 적어진 것을 고려해야 한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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