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인재(人材) 없는 인재(人災) 시대

2023. 3. 9.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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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逍遙)하다. 사전적 정의에 의하면 자유롭게 이리저리 슬슬 거닐며 돌아다닌다는 뜻이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1979년 한국교육개발원이 개발하여 초등학생의 여름방학 과제물로 배포하였던 '탐구생활'은, 자연 속을 소요하며 동식물을 탐구하고 자발적으로 학습할 수 있도록 구성한 학습 교재이다. 정답이 없는 체험 속에서 아이들은 다양한 생명체의 생태계를 통해 지식과 지혜를 배우고 세상을 익히며 무한한 상상력을 키워나갔다.

소요의 중요성은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에서도 잘 나타난다. 아리스토텔레스와 그의 제자들은 자연을 산책하면서 학문을 논하였고 세상의 진리를 깨우쳤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심 분야였던 형이상학, 논리학, 윤리학, 정치철학, 자연철학, 생물학 등에 대한 강의는 한정된 강의실이 아닌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이루어졌다. 교수의 질문에 제자들은 자유롭게 대답하였고 정답은 없었다.

지금의 우리나라 학교 공간에서는 이러한 '소요'가 허용되지 않는다.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추구하는 인재는 '인문학적 상상력, 과학 기술 창조력을 갖추고 바른 인성을 겸비하여 새로운 지식을 창조하고 다양한 지식을 융합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사람'이지만, 여전히 학교는 대학을 가기 위한 통과 의례적 공간으로서만 존재할 뿐이다. 학생의 자유와 행복권을 보장하고 창의적 인간을 육성하겠다는 취지 아래, 자유 학기제, 자유 학년제 등을 마련하였지만, 이는 고등학교 교육과정 및 대학 입시 체제와는 동떨어져 오히려 학업 결손만을 불러왔다는 지적을 받아버렸다.

자유 학기제, 자유 학년제의 결과를 불신한 학부모들은 진작 사교육 시장으로 발길을 돌렸고, 서울 강남 대치동 학원 초등부에 'SKY입시반'을 넘어 '의대반'까지 신설되었다는 것을 보면, 교육이라는 몸체를 받치고 있는 두 바퀴가 서로 엇박자로 굴러가고 있는 느낌이다. 대학에 진학해서도 이러한 엇박자는 끝나지 않는다. 의대 진학을 위해 매년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학생들의 자퇴율이 급증하고 있고, 심지어 KAIST 또한 매년 평균 100여 명이 의대 진학을 이유로 자퇴하는 실정이라고 한다.

대학은 학생부종합전형이라는 이름으로 학생들의 무한한 가능성을 정량이 아닌 정성적으로 평가하겠다고 하지만, 결국 대학이 원하는 활동을 기록하는 '서술형 시험지'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열린 공간에서 창의 융합적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아닌, 닫힌 거푸집에서 인재를 주조하고 있는 꼴이다.

의대 쏠림 현상은 다양한 선택지가 마련되어 있지 않은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하나의 정답지가 아닌 다양한 해답지를 준비해야 한다. 정해진 답은 이미 챗GPT가 한발 앞서 알려준다. 챗GPT가 알려주지 않는 그 길을 학생들과 함께 걸어가야 하겠다. 하나의 정답지가 아닌 다양한 해답지를 준비하여 학생들을 인재(人材)로서 성장할 수 있게끔 이끌어주는 것이 교육의 올바른 가치 실현이라 볼 수 있겠다.

[이중명 남해해성고등학교 이사장·아난티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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