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임동민 “불 같은 성격 줄었죠…피아노 앞에서 중요한 건 양심”
나와 닮은 슈베르트…희노애락 담겨
2005년 쇼팽 콩쿠르 3위…韓 최초
“음악가로 놓치려 하지 않는 것은 양심”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시간은 사람마다 다르게 흐른다. 무려 4년 만의 솔로 리사이틀. 길다면 긴 시간이지만, 임동민은 “오랜만의 공연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고 했다. “하루에 10시간씩 피아노를 치던” 어린시절을 지나 어느덧 30여년. 누군가의 앞에 나서든 나서지 않든 임동민(43)의 곁에는 언제나 피아노가 있었다.
“굳이 좋아하는 작곡가를 꼽으라면 쇼팽과 슈베르트”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임동민이 마침내 슈베르트로 돌아왔다. 지난달 거제를 시작으로 11일(춘천문화예술회관), 12일(원주백운아트홀), 17일(롯데콘서트홀), 19일(강릉아트센터)를 거쳐 오는 7월 2일 경기아트센터까지 전국 10개 도시 투어를 이어간다. 오로지 슈베르트로만 구성된 연주회를 여는 것은 국내 데뷔 이래 이번이 처음이다.
본격적으로 시작될 공연을 앞두고 최근 서초동의 연습실에서 만난 임동민은 “리사이틀을 이어갈수록 음악적으로 나아지길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공연을 할 땐 관객이 어떻게 받아 들이냐 보단, 어떻게 나의 연주를 할 것인가에 더 집중하는 편이에요. 준비한 만큼 잘 연주하는 것이 관건이고, 그것이 개인적인 만족도를 가르는 것 같아요.”
![피아니스트 임동민이 4년 만의 솔로 리사이틀로 돌아온다. 전곡 슈베르트를 선보이는 것은 국내 데뷔 이래 이번이 처음이다. [봄아트프로젝트 제공]](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303/09/ned/20230309080115766sqpg.jpg)
지난 첫 공연을 돌아보며 곧 다가올 공연의 준비에 여념이 없는 때다. 슈베르트는 그에게 각별한 작곡가다. 우스갯소리로 “나의 인생과도 닮은 점이 많다”고 말한다.
“누구나 그렇듯이, 저도 살면서 이런 저런 힘든 일들이 많이 있었어요. 슈베르트의 삶도 그랬던 것 같아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슈베르트는 먹고 살기 힘들 정도로 가난했다고 해요. 아버지는 교사셨고, 그래서 (슈베르트가) 안정적인 직업을 갖기를 원했지만, 음악가라는 프리랜서의 삶을 산 거죠. 게다가 그의 음악은 리트(가곡)가 주를 이루는데, 그 시대엔 인기있거나 잘 팔리는 곡이 아니었고요.”
슈베르트의 음악에선 “순수하고 슬프면서도 쓸쓸한 감정”이 와닿았다고 한다. “슬프지만 슬픈 감정에 휩쓸리지 않으려 하고, 울고 싶은데 울지 않으려 하는 것이 들려요. 워낙 힘든 삶을 살았기에 마치 조울증 환자처럼 슬픔과 밝음의 극단적인 감정이 음악에도 투영되는 것 같아요.”
공연에선 ‘즉흥곡’ 전곡과 피아노 소나타 D.960으로 관객과 만난다. 깊숙하게 응집된 에너지를 밀어내는 단단함, 그러면서도 부드러운 연주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이다. 임동민은 “슈베르트의 곡엔 인간이 희노애락, 우리가 살면서 느끼는 모든 감정이 들어있다”고 했다.
“특히 피아노 소나타 21번(피아노 소나타 D.960)은 슈베르트의 건강이 악화된 시점에 작곡해 생을 마감하기 직전에 완성한 곡이에요. 비극, 사색, 슬픔, 고독의 감정이 더욱 부각되는 작품 중 하나죠.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 않고 승화해 환희와 기쁨을 표현한 점이 더 비극적으로 다가와요. 연습을 하다보면 눈물이 흐를 때도 있어요. 이런 극적인 표현은 슈베르트만이 가능해요. 제가 그를 비운의 천재 작곡가라고 생각하는 이유이기도 해요.”
임동민은 대부분의 연주자들에 비하면 다소 늦은 나이인 아홉 살에 피아노를 시작했다. 세계 무대에선 일찌감치 이름을 알렸다.
“10~20대는 주로 피아노 연습만 하면서 지냈어요. 20대는 좌절과 고독과 연습의 시기였죠. 30대는 한국에 돌아와 사회적 경험을 하면서 세상을 알게 된 시기였어요. 성숙해졌다는 장점도 있지만, 안 좋은 일들도 어려움도 있었죠. 세상에 좋은 사람만 있는 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됐고요.”
20대엔 ‘한국인 최초’의 타이틀을 달아봤다. 국제 콩쿠르에서의 입상 내역도 화려하다. 1996년 국제 영 쇼팽 콩쿠르 1위, 이탈리아 부조니 콩쿠르 3위, 차이콥스키 콩쿠르 5위, 프라하 봄 국제 콩쿠르 2위, 2005년 한국인 최초 쇼팽 국제 콩쿠르 3위에 올랐다.
쇼팽 콩쿠르 입상 이후 그는 ‘국가대표 피아니스트’였다. 그 시기엔 “미국에서도 알아보고 인사를 했을 정도”다. 이후 조성진(2015년 쇼팽 콩쿠르 1위), 박재홍(2021년 부소니 콩쿠르 1위), 임윤찬(2022년 밴 클라이번 콩쿠르 1위) 등 수많은 후배 음악가들이 국제 콩쿠르에서의 우승 소식을 전하고 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선배의 마음도 남다르다. 콩쿠르에 대한 논쟁은 여전하다. 지나친 경쟁과 콩쿠르만을 위한 음악, 예술이 아닌 콩쿠르를 잘 하는 음악 기계의 육성을 꼬집는 시각도 많다.
임동민은 “사실 콩쿠르는 어려운 주제”라며 “예술에 정답이 없는 것처럼 콩쿠르도 그렇다”고 말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한국 음악가들에겐 콩쿠르 이외에는 여전히 대안이 없다는 거예요. 그만큼 클래식 음악계에서 설 수 있는 무대와 활동의 기회가 적어요. 콩쿠르가 음악가의 성장에 중요하냐, 심사가 공정하냐 아니냐에 대한 입장은 여러 가지일 수 있어요. 제가 알고 있는 큰 음악가들은 콩쿠르에 부정적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한국 음악계에선 아직 콩쿠르 외엔 대안이 없다는 점이에요.”
40대에 접어든 지금, 임동민은 “음악가는 항상 똑같다”며 “늘 연주하고, 연구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뭔가를 더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고 한다.
오랜 연주 활동으로 최근엔 직업병(?)도 찾아왔다. “몇 년간 손이 많이 아프더라고요. 병원에선 염증이 있다고 해서 약을 먹으려 해요. 치료가 잘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죠. 통증은 있지만, 불사하고 피아노를 치는 거예요.”
크고 작은 어려움과 힘듦이 슬럼프로 올 때도,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지난 30여년, 음악과 연주가 늘 좋았던 것은 아니다. 스스로는 ‘슬럼프’라는 표현 대신 ‘힘든 시기’라고 말한다. 연주자로서 손의 통증을 오래 안고 있는 시간 역시 “무척 힘든 시기”라고 했다. 특별히 극복할 수 있는 노하우는 없다. 요즘엔 “종교의 도움”을 받는다. 그는 “불 같은 성격이 달라졌다”고 한다. 이젠 “마음을 다스리며 안정을 취한다”고 했다.
“피아노를 전공하기로 마음 먹은 이후 이 직업을 천직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힘들고 어려운 시기가 와도 피아노 앞에 앉으면, 양심을 저버리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음악이라는 예술은 순수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고, 배신하지 않아요. 음악엔 정치도 없고요. 한 사람으로서, 음악가로서 양심을 지키며 음악을 하는 것이 제가 가고자 하는 길이에요.”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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