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서 배우는 도시재생] ④슬럼가에서 세계적 기업 집적지로

백도인 2023. 3. 9. 06:0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유로스타 종착역 킹스 크로스…교통허브 이점 살려 역세권 개발 모범 세워
공원·광장 등 공공공간 확대하고 철저한 보행자 중심 거리 조성
구글 등 세계 120개 기업 몰리고 인구도 50% 이상 급증

[※ 편집자 주 = 세월이 흐르면서 도시가 쇠퇴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도시가 쇠퇴했다고 그냥 버려둘 수는 없다. 그래서 도시재생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정부가 한해 1조원이 넘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도시재생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도시재생의 역사는 일천하다. 곳곳에서 문제점이 나타날 수밖에 없고, 앞으로의 갈 길도 멀고 험하다. 도시재생의 선진지인 영국 런던의 사례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 이유다. 연합뉴스는 세계적으로 도시재생이 가장 앞서 시작된 런던의 사례를 통해 우리나라 도시재생의 길을 모색하는 기사를 매일 1편씩 6편으로 내보낸다.]

역세권 개발의 모범 킹스 크로스 (런던=연합뉴스) 백도인 기자 = 유로스타의 출발역이자 종착역인 세인트판크라스역과 킹스 크로스역 일대의 모습. 2023.3.9 doin100@yna.co.kr

(런던=연합뉴스) 백도인 기자 = 런던 중심부에 위치한 킹스 크로스는 오래전부터 산업 및 운송 허브로 기능해왔다. 1850년에 북부 지역과 연계하기 위해 증기기관차 정류장인 킹스 크로스역이 건립됐고 1868년에는 중부지역을 연결할 기차역인 세인트판크라스역이 추가로 만들어졌다. 이후 킹스 크로스역에 지하철 6개 노선까지 연결되면서 이 일대는 런던 최고의 역세권으로 발돋움했다. 이들 2개의 역을 중심으로 각종 물류 시설과 산업시설이 빼곡하게 들어찼고 호텔과 상점가, 노동자를 위한 주택들도 폭넓게 형성됐다. 그러나 새로운 변화를 수용하지 못하면서 점차 쇠락의 길을 걸었고 버려진 건물들과 오염된 토지, 일거리가 없는 가난한 노동자들이 넘쳐났다. 결국 매춘과 마약, 범죄가 난무하는 런던의 대표적 슬럼가라는 오명을 뒤집어써야 했다.

오랜 암흑기를 거친 킹스 크로스는 2007년 세인트판크라스역이 영국과 유럽을 잇는 유로스타의 출발역이자 종착역으로 재건립되면서 반전의 시작을 알렸다.

활기 띠는 유로스타 출발역 '세인트판크라스' 내부 모습 (런던=연합뉴스) 백도인 기자 = 유로스타의 출발역이자 종착역인 세인트판크라스역 내부가 쇼핑몰과 어우러지면서 활기를 띠고 있다. 2023.3.9 doin100@yna.co.kr

세인트판크라스역에는 지상의 유휴 공간에 쇼핑몰, 레스토랑, 카페 등이 조성됐고 그 자체로 훌륭한 복합 상업 공간의 역할을 맡게 됐다. 2012년에는 킹스 크로스역이 전면적인 리모델링을 거쳐 재개장했다. 유로스타, 기차, 지하철이 모두 통과하는 데다 복합 상업 공간까지 들어서면서 이들 역의 이용자만 연간 1천만명이 넘는다.

이러한 막대한 유동 인구를 바탕으로 주변 지역의 재생사업도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10여년에 걸친 오랜 논의와 준비 기간을 거쳐 킹스 크로스 일대의 재생사업에 대한 마스터플랜이 2006년 완성됐다. '인간을 위한 도시'라는 원칙을 확립했고, 철저하게 공공성을 극대화하며 보행자 중심의 도시를 만들기로 했다. 26만여㎡의 부지 가운데 70% 이상을 공원과 광장 등의 공공장소, 저렴한 임대주택, 주민을 위한 문화 및 여가시설로 쓴다는 세부적인 계획이 마련했다. 역사적 가치가 있는 건물들을 마구잡이로 밀어버리고 새 건물을 짓는 대신 최대한 복원 또는 개조한다는 기준도 세웠다. 이를 구체화해 20개의 새 거리, 10개의 새로운 공공장소, 최대 2천 가구의 주택, 50개의 신축 건물을 조성하고 20개의 역사적 건물 및 구조물을 복원하기로 했다.

대형 석탄창고에서 복합 쇼핑몰로 변신한 키싱루프 (런던=연합뉴스) 백도인 기자 = '키싱루프(Kissing Roofs)'라는 이름이 붙은 킹스 크로스의 복합 쇼핑몰. 장기간 방치된 대형 석탄 창고 2개를 리모델링해 이어 붙여 만든 것으로, 킹스 크로스를 대표하는 건축물 가운데 하나다. 2023.3.9 doin100@yna.co.kr

본격적인 도시재생은 역 인근의 화물터미널 부지, 석탄 창고 및 야적지, 중심부 등 3곳을 축으로 해 진행됐다. 먼저 화물터미널 부지의 재생사업은 런던예술대학의 6개 칼리지 중 하나인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가 대형 건물과 창고를 리모델링해 이전하면서 획기적인 전기를 맞는다. 5천여명의 학생과 교직원이 유입되면서 이 일대에 활기를 불어넣은 것이다. 인접한 리젠트 운하 옆에는 대규모 야외 광장을 만들어 학생뿐만 아니라 시민 누구나 이용하는 휴식·전시 공간으로 활용했다. 학교와 2개의 역을 연결하는 보행 전용 거리를 조성한 것도 이 일대 활성화에 큰 역할을 했다. 기발한 디자인을 동원해 공동주택으로 재탄생시킨 가스 저장고들은 또 다른 상징물이다.

석탄 창고와 야적지는 쇼핑가로 거듭났다. 핵심 작품은 장기간 방치된 대형 석탄창고 2개를 리모델링한 복합 쇼핑몰 '키싱루프(Kissing Roofs)'다. 키싱루프는 두 개의 건물 위 날개가 맞닿은 것처럼 지붕을 하나로 연결한, 기발한 아이디어의 산물이다. 내부에는 식당, 카페, 패션, 뷰티 등 각 분야의 희소성 있는 브랜드들을 주로 입주시켜 다른 쇼핑몰과 차별화했다. 지붕 아래의 야외에는 탁 트인 광장과 대형 계단, 시소, 의자 등을 설치해 시민 휴식 공간으로 제공했다.

독특한 디자인의 공동주택으로 변신한 가스 저장고 (런던=연합뉴스) 백도인 기자 = 방치된 가스 저장고를 독특한 디자인의 공동주택으로 리모델링한 '개스 홀더'. 킹스 크로스의 도시재생사업을 상징하는 건축물 가운데 하나다. 2023.3.9 doin100@yna.co.kr

작은 창고들과 리젠트 운하를 따라 늘어서 있던 버려진 건물들 역시 분위기를 그대로 살려 50개가 넘는 소규모 상가, 카페, 식당, 술집 등으로 재탄생시켰다.

역세권 한 가운데 있는 삼각형 형태의 중심부는 그 성격에 맞게 복합 업무지구로 계획했다. 기업 종사자와 시민을 위한 대규모 광장을 만들고 쇼핑 거리이자 전시 및 휴식 공간인 다목적 거리도 만들었다. 그리고 스타트업 기업부터 글로벌 대기업까지 모두가 입주할 수 있는 19개의 업무용 빌딩을 건립했다. 영국의 심장부이면서 유럽으로 연결되는 출발점이라는 지리적 이점까지 더해지면서 이곳에는 구글, 메타, 나이키, 소니 뮤직 등 글로벌 기업 120여개가 입주했다. 그렇게 10여년의 도시재생사업을 거치면서 킹스크로스는 핵심 업무지구이면서 활기 넘치는 주거지역이자 쇼핑가로 탈바꿈했다. 인구도 10여년 만에 7천여명에서 1만2천여명으로 비약적인 증가세를 보였다.

독특한 디자인으로 리모델링된 킹스 크로스역 (런던=연합뉴스) 백도인 기자 = 기존 시설을 최대한 살려 독특한 디자인으로 리모델링한 킹스 크로스역 내부. 1850년에 북부 지역과 연계하기 위해 증기기관차 정류장으로 건립된 킹스 크로스역은 2012년 전면적인 리모델링을 거쳐 재개장했다. 2023.3.9 doin100@yna.co.kr

사업을 주관한 킹스크로스 파트너십은 "킹스 크로스는 런던에서 가장 규모가 크면서 가장 성공한 재개발사업 중 하나로, 버려진 산업 현장이 새로운 거리, 광장, 공원, 주택, 대학으로 탈바꿈하면서 활기를 되찾았다"며 "뛰어난 위치와 다양한 유산, 강한 지역 공동체 의식 등을 엮어 독특하고 특별한 킹스 크로스를 만들 수 있었다"고 자평했다.

doin100@yna.co.kr

▶제보는 카톡 okjebo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