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과학자 확보와 의대 확충은 다른 문제”...보건의료계 KAIST 의전원 설립 반대 움직임

김명지 기자 2023. 3. 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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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ST 협조 요청, 복지부 산하기관 거절
“전남 경남 안되고, KAIST만 추진될 듯” 소문 무성
의사과학자 ‘환자’ 안보게 한다는데...취지 역행
복지위원장 “의료 공공성 강화를 위한 의대 확충은 전혀 다른 문제”
사진 / 23일 오후 서울 강남구 카이스트 도곡캠퍼스에서 이광형 총장이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2023.2.23 / 고운호 기자

윤석열 정부의 주요 국정 과제로 의사과학자 양성이 꼽히는 가운데, 한국과학기술원(KAIST)과 포스텍이 의대 설립에 나서면서 정부 부처간, 지역 간 묘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신규 의대 유치에 사활을 걸고 뛰어 온 순천·목포 등 의료 취약지에서는 현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가 결국 KAIST·포스텍만의 특혜로 끝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8일 의료계에 따르면 KAIST는 최근 의과학자 양성 대학 설립과 관련해 보건복지부 산하 기관인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협조를 구했다. KAIST는 충북도와 손잡고 오송에 조성되는 국가산업단지에 생명공학부 단과대 설립을 추진 중이다. 오송생명과학단지는 1~3단지가 있는데, KAIST는 이 중에서 3단지에 의사과학자 양성 의대를 설립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14일 김영환 충북도지사를 만나 오송 산업단지 조성사업과 관련해 “대한민국의 큰 발전을 위한 일이니 과학기술정통부와 보건복지부가 잘 살펴달라”고 주문했고,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 2일 라디오에서 “KAIST, 포스텍 같은 과학기술 특성화대학에 의대를 신설해 의사 과학자를 양성하는 방안 등을 포함해 여러 가지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밝히면서 이른바 ‘의과학자 양성 의대’ 설립은 급물살을 타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건산업진흥원은 KAIST의 협조 요청을 완곡히 거절했다고 한다. 의료계 관계자는 “의대 설립을 원하는 지자체가 얼마나 많은데, 복지부 산하 기관이 무턱대고 특정 지역, 특정 기관과 손을 잡았다가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의대 정원 확대는 지역간 의료 격차 해소와 ‘필수 의료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추진돼 왔다.

더욱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지방자치단체들은 신규 의대 설립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전남 목포와 순천 등 호남권에는 의대 유치가 숙원 사업인 곳이 많다. 당장 목포대와 순천대를 비롯해 경남의 창원대 등 전국 국립대 5곳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정춘숙 위원장을 만나 의대 설립 공동 건의문을 제출했다.

이들 5개 국립대학은 지난달 20일 조규홍 복지부 장관을 면담해 ‘국립대 의대 설립 공동건의문’도 전달했다. 의료 사각 지역의 국립대에 의대를 설립하는 것이 지역균형 발전을 위한 중앙정부의 역할이라는 취지다.

그런데 최근 교육부와 과기부에서 이른바 KAIST· 포스텍 의전원을 앞세우면서 분위기가 냉각되고 있다. 현 정부가 ‘지방 국립대 의대는 설립해주지 않고, 과학전문대학에만 특혜를 주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정치권에서도 “복지부가 호남에는 의대 설립을 해주지 않고, KAIST 포스텍만 해 준다더라”는 얘기가 돈다.

정치권에서는 당장 반대 목소리가 나온다. 야권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때는 의과학자 양성은 물론 의료 공공성 강화를 위한 의대 설립도 종합적으로 추진하겠다는 계획이 있었다”며 “이런 추진 계획을 모두 생략하고 의과학자 양성 의대만 설립한다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의과학자 양성을 위한 의대 설립은 마치 곁다리 같은 존재였는데, 1순위로 올라선다니 이해할 수가 없다”고도 했다. 지난 2020년 7월 당정협의에서는 의대가 없는 지역을 의대 신설이 가장 시급하다고 봤다.

KAIST가 주장하는 의대 설립이 모순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KAIST는 의대를 설립해 환자를 진료하지 않는 의과학자를 양성한다고 주장하지만, 환자를 보지 않는 의과학자가 무슨 쓸모가 있느냐는 것이다. 신약이나 새로운 의료기기를 개발해 내려면 환자 임상은 반드시 필요하다.

다만 신규 의대 설립은 의대 정원 확대 문제가 해결되고 나서 생각할 문제이기는 하다. 의대 정원 확대를 두고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한 의사 단체들이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고, 복지부는 이 문제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 내야 하는 주무부처다.

정춘숙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은 “의과학자 양성과 의료 공공성 강화를 위한 공공의대 확충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에 함께 각각 진행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 위원장은 또 " KAIST가 주장하는 임상을 전혀 하지 않는 의과학자가 원래의 취지인 ‘의사과학자’의 목표를 이룰 수 있을지는 좀 더 고민을 해 봐야 한다”고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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