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등만 켜진 희매촌 거리…불을 밝히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죠”

강은 기자 2023. 3. 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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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성매매 집결지의 역사 기록하는 신동화씨
강원도 원주 학성동 성매매 집결지 ‘희매촌’ 인근 원주시여성커뮤니티 센터에 지난 3일 저녁 환하게 불이 켜져 있다. 이날 기록활동가 신동화씨(왼쪽)가 센터에서 주민들과 ‘성평등 모임’을 열고 있다. 희매촌 골목 입구에는 현금자동인출기(ATM)가 놓여 있다(사진 왼쪽부터 시계 반대 방향).
‘자매포주 감금사건’ 보도 후
대중의 관심 금세 사그라들어
성매매 업소 수십 곳 영업 중
도시재생 사업도 반대 부딛혀
비슷한 아픔 반복 않으려면
어떤 일들 있었는지 기록해야
업소들 바로 옆 문화공간에선
주민들과 모임 등 변화 조짐

“쉿! 주무시는 분도 계세요.”

좁은 골목으로 걸어가던 기록 활동가 신동화씨(35)가 고개를 돌려 속삭였다. 신씨가 들어간 골목 초입엔 ‘청소년 통행 금지’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지난 3일 오후 3시, 강원도 원주 학성동 일대 성매매 집결지 ‘희매촌’은 고요했다.

희매촌에서는 낮과 밤의 시간이 거꾸로 흐른다. 저녁이 되면 이곳 여성들의 하루가 시작된다. 여성들이 붉은 등 켜진 ‘유리방’에 자리 잡는다. 중년 남성이 어슬렁거리거나 차창이 짙어 안을 볼 수 없는 차량이 골목을 서행한다. 이들은 짧은 옷에 10㎝ 넘는 굽 높은 구두를 신고 날이 밝을 때까지 손님을 받는다.

“왜 여기에 ATM 기기가 있는지 아세요?” 신씨가 골목을 빠져나오다가 현금인출기를 가리켰다. “성을 사는 사람들은 흔적을 남기기 싫어하거든요. 혹시라도 걸리면 안 되니까. (매매촌에) 들어가기 전에 돈을 찾아간대요. 가끔 술 취한 손님은 업주한테 카드를 주면서 현금을 뽑아다 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는데…업주가 두 배, 세 배로 받아도 신고를 못하겠죠.”

■‘희매촌’에서 무슨 일이

신씨는 사진과 주민들의 구술로 희매촌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바로 옆 동네인 단구동에 살며 카메라를 들고 희매촌을 찾는다. 다니던 회사에서 성추행 피해를 당한 뒤 직장을 그만두고 원주로 이사한 지 10년째다. 지난해 9월에는 ‘로컬플리커’라는 1인 출판사를 만들었다.

희매촌 문제에 관심을 둔 건 2021년부터지만 본격적으로 기록 작업을 시작한 건 지난해 6월부터다. 당시 학성동 성매매 집결지의 한 업소에서 포주 자매가 여성들을 목줄로 묶어두고 동물 배설물을 먹이거나 손톱 밑을 바늘로 찌르는 등 1년간 학대했던 사실이 언론을 통해 드러났다. 그는 “자극적인 사건이라 대대적으로 보도됐지만, 관심은 금세 사그라들었다”고 말했다.

희매촌은 옛 원주역 앞 구도심에 형성돼 있다. 1950년 한국전쟁 전후로 실향민이 모여 ‘희망촌’을 이뤘는데, 인근 윤락여성이 모여 살던 ‘매화촌’이 영역을 넓히면서 함께 ‘희매촌’으로 불렸다. 원주 미군기지에 주둔하던 군인들 발길이 끊이지 않아 일대가 호황을 누렸다. 정부는 전국 성매매 집결지 여성들을 외화벌이 수단으로 이용하면서 이들을 방치했다.

희매촌에서 자매포주 감금사건이 발생한 지 9개월이 지났으나 일대 성매매 업소 수십 곳은 여전히 영업 중이다. 원주시에 따르면 희매촌에는 총 35개 업소에서 여성 40~50명가량이 성매매에 종사한다. 희매촌에서 거리상담을 하는 춘천길잡이의집 라태랑 소장은 “건너편 방석집까지 합하면 학성동 일대 업소는 60개가 넘고 인원은 100명 이상”이라고 했다. 원주시는 2019년부터 도시재생을 추진해 지난해 완료할 예정이었으나 업주 반발 등에 부딪혀 사업이 늦어지고 있다.

■‘희매촌’ 바로 옆에서 불을 켜다

신씨는 성매매 집결지를 기억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했다. “업소 내부에 들어가본 적이 있는데요. 곰팡이가 가득하고 창문도 없고….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 아닌 거예요. 비슷한 아픔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이곳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기록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성매매 집결지 특유의 폐쇄성은 기록 작업을 어렵게 하는 가장 큰 걸림돌이다. 신씨는 “종사자나 업주는 물론 사정을 잘 아는 주민 중에서도 마음을 열고 말해줄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20년간 이곳에서 활동해온 라 소장도 “희매촌은 업주들 간 조직력이 강해 다른 성매매 집결지보다 폐쇄성이 짙다”고 했다. 이날 밤 라 소장이 희매촌 일대 30여곳의 유리방을 두드리며 물티슈와 자활지원 안내책자를 나눠주고자 했으나 문을 열어주는 여성은 1~2명에 불과했다.

작게나마 변화의 조짐도 보인다. 신씨 활동 이후 희매촌에 대해 이야기하는 주민들이 점점 모이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희매촌 문제 해결을 위한 강연 및 포럼’도 열렸다. 청중들 일부는 한 달에 한 번 ‘성평등 모임’에도 참여하고 있다.

사람들이 모이면서, ‘공간에 불을 밝히는’ 이유가 생겼다. 성매매 업소가 아닌 곳에서 불을 켜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신씨는 말했다. “밤이 되면 업소 관계자를 빼곤 모두 건물에 불을 끄고 이 근처를 떠나거든요. 밤에 이곳에 불을 켠다는 건 폭력적이진 않지만 가장 적극적인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이날 밤 희매촌 일대에는 유리방 업소가 밝히는 붉은빛과 바로 옆 문화공간에서 신씨와 주민들이 밝히는 노란빛이 동시에 새어나오고 있었다.

원주 | 글·사진 강은 기자 e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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