될 것 같던 ‘EU 내연차 금지법’, 독일이 반대한 까닭은

류정 기자 2023. 3. 9.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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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 거부권 행사에 투표 무기 연기… ‘100년 車패권’ 놓기 힘들었나

“2035년부터 내연기관차 신차 판매를 금지할 것”이라고 호언장담해온 EU(유럽연합)의 계획이 독일의 반발로 무산 위기에 놓였다. 당초 EU 이사회는 7일(현지 시각) 이 같은 법안을 투표에 부치려 했지만, 독일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투표 일정이 무기한 연기된 것이다. 이 법안을 주도하는 것처럼 보였던 독일이 “법안 승인 철회”를 선언하고, 이탈리아·폴란드·불가리아까지 동조하면서 다수 유럽 회원국들은 당황하고 있다.

자동차 업계에선 “1880년대 칼 벤츠와 고틀러 다임러가 내연기관차를 발명한 뒤 독일이 100년 넘게 유지해온 자동차 산업의 패권을 쉽게 내주지 않겠다는 입장을 명확히 한 것”으로 EU의 ‘2035 플랜’이 쉽게 달성되지 않을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독일, “e퓨얼 허용하라”

지난해 10월 독일을 포함한 EU 회원국과 유럽 의회, EU집행위원회가 최종안을 승인했을 때만 해도 내연차 금지법은 순조롭게 통과될 것처럼 보였다. 지난 2021년 12월 취임한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사회민주당)는 친환경 정부를 강조하면서 이 법안을 지지해왔다. 독일 환경부는 지난해 3월 “EU 계획에 맞춰 가솔린·디젤·하이브리드차 금지 시점을 2040년에서 2035년으로 앞당긴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지난해 6월 자유민주당 소속인 크리스티안 린드너 독일 재무 장관이 “우리가 엔진차를 포기하면, 다른 제조사들이 남은 시장을 차지할 것”이라며 반대 의견을 표명하긴 했지만, 연립정부 내에서 나온 다른 목소리로 여겨졌다. 그러나 독일 정부가 결정적인 순간에 공식 반대를 선택한 것이다.

독일의 표면적 반대 이유는 “‘e퓨얼’ 사용을 허용하라”는 것이다. 폴커 비싱 독일 교통부 장관은 최근 트위터에 “기후 친화적인 e퓨얼의 사용이 영구 허용돼야 한다”는 글을 여러 차례 올리고 있다. e퓨얼은 수소와 탄소를 합성해 만드는 연료로 가솔린·디젤처럼 기존 엔진차에 넣어 쓸 수 있다. 배출가스가 나오긴 하지만, 연료를 만드는 과정에서 공기 중에 있는 탄소를 포집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탄소 중립’이 달성된다는 주장이다. 수소는 풍력 등 친환경 발전으로 만든 전기로 물을 분해해 얻는다. e퓨얼은 높은 생산 비용과 낮은 에너지 효율로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지만, 독일 정부는 엔진자동차를 포기하지 않겠다며 향후 ‘e퓨얼’에 약 2조원의 예산을 투자하겠다는 방침이다. 독일 포르셰는 e퓨얼 생산 공장을 칠레에 건설했으며, 이를 주도했던 올리버 블루메 포르셰 CEO는 현재 독일 최대 자동차업체 폴크스바겐그룹 CEO로 재임 중이다.

◇이탈리아 “중국에 선물 주는 미친 결정”

독일이 EU 법안에 대한 전면 재협상을 노리는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한 EU 고위 관계자는 파이낸셜 타임스에 “독일이 EU위원회를 꼼짝 못 하게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며 “이미 합의된 법안의 이상을 요구하는 것은 전체 협상을 다시 하자는 뜻”이라고 말했다.

이탈리아는 더 노골적으로 반대 이유를 밝히고 있다. 마테오 살비니 이탈리아 부총리 겸 인프라교통부 장관은 “EU의 규제 법안은 중국 자동차 기업에 선물을 안겨주는 미친 결정이며 자살 행위”라며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안토니오 타야니 외무장관도 “난 전기차의 지지자지만 서류가 아니라 현실을 들여다봐야 한다”며 “달성 가능한 목표를 설정하고, 자동차 산업에 적응할 기회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의 반대에는 중국이 주도하는 전기차로 산업이 완전히 전환되면, 유럽의 전통 자동차 강국이 과거만큼의 위상을 갖지 못할 것이란 위기감이 반영돼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실제 독일 폴크스바겐·벤츠 같은 주요 업체들의 전기차는 내연차 만큼의 위상을 갖지는 못하고 있다. 지난해 전 세계 전기차(플러그인하이브리드 포함) 판매 1위는 중국 BYD, 2위는 테슬라, 3위가 폴크스바겐그룹이었다.

이탈리아는 페라리, 람보르기니, 마세라티, 알파로메오 같은 전통 스포츠카 브랜드들이 포진해있다. 이들은 전기차 전환에 나서고는 있지만, 아직까지 제대로 된 전기차 신차를 출시하지 못하고 있다. 배충식 카이스트 교수는 “유럽 정치인들은 대중 지지를 얻기 위해 ‘그린 프로파간다(친환경 정책 선전)’를 계속 내세우지만 아직은 산업 전환 속도가 따라가지 못한다는 현실을 알고 있다”며 “유럽 내 내연기관차 금지를 둘러싼 ‘밀당(밀고당기기)’이 상당 기간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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