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경영지원본부 칼럼] MBTI와 하학상달
사주팔자를 다루는 명리학(命理學)은 복잡한 이론체계를 가지고 있다. 중국과 한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이를 통해 조심하고 마음 가짐을 경계하여 지혜롭게 인생을 살아가려는 방편으로 이용했다. 태어난 시간, 일, 월, 그리고 연도에 따른 경우의 수는 50만개가 넘고, 남녀의 경우까지 계산하면 대략 100만이 넘는 사주가 있는 셈이다. 사주는 길흉화복의 미래를 궁금해 하는 호기심과 불안 때문에 존재한 것이었다. 반면, 자신의 성격을 알고 이를 코드화 하여 나타내어 마음 맞는 친구들을 만나고 싶은 욕망에서 요즘 MZ 세대에게 사주보다 더 인기 높은 것이 MBTI이다.
MBTI(Myers-Briggs Type Indicator)는 전 인류의 성격을 알파벳 4개의 조합으로 구분하여 총 16개의 성격유형으로 분류하는 것이다. 1920년대 미국의 가정주부 캐더린 브릭스(Katharine Briggs)와 그녀의 딸 이사벨 브릭스 마이어스(Isabel Briggs Myers)가 스위스의 심리학자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의 ‘심리유형’을 좀 더 발전 시켜 만든 것이다. 이는 외부로 향하는 외향성(E)인지 자신의 내부를 중시하는 내향성(I)인지, 감각적으로 정보를 받아들이는지(S) 아니면 자신의 직관에 더 의존하는지(N), 논리적 사고에 의한 결정을 하는 성향인지(T) 또는 감정에 치우치는 성향인지(F), 외부 대응 문제에서 논리적이며 계획적인 판단(J)을 하는지 아니면 주로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유연하게 대처하는 타입(P) 인지를 선택하게 하여 그의 성격 타입을 16개 중의 하나로 한정 짓는 것이다.
혈액형이나 관상 또는 별자리로 성격을 예단하는 것보다는 훨씬 합리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문제는 이에 대한 과신과 오용이다. MBTI는 미국에서 시작되었지만 어디까지나 성격에 따라 적합할 것이라고 추측되는 보직을 물색하는 보조적 수단이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에서 MBTI에 대한 검색 건수는 세계 최고이며, MZ 세대에게는 고정불변의 자기 성격코드로 애용되고 있으니 티셔츠에 자신의 성격 코드를 새겨 입고 다닐 정도이다. 심지어 어떤 기업은 16개 유형 중 “특정 성격 코드는 환영이고, 어떤 성격 유형은 환영하지 않는다”하여 이슈가 되었으니 그 오용의 정도가 심각함을 알 수 있다.
사주나 궁합보다는 알기 쉽고 명쾌한 장점은 있지만, MBTI를 가지고 성격을 확정하고, 기업이 특정 유형을 선호하는 것은 여러가지 사회적, 법적 문제를 야기할 것이다. 각 요소를 확정하기 위한 설문이 너무 이분법적이고 주관적이므로, 자기 성격 진단 시 얼마든지 사실과 다른 답변으로 원하는 성격 유형을 진단받을 수 있다. ‘마이어스 브릭스 재단’에서도 MBTI를 구직자 선별 용도로 사용하는 것은 비윤리적이고 불법이라 충고하였다. 만일 미국에서 MBTI를 직원 선발 시 평가요소로 사용한다면 이는 차별(Discrimination)의 문제로 비화될 가능성 있어 위험하다. 각 인종마다 일반적으로 많이 나오는 유형이 있기 때문이다.
MBTI에는 세가지 약점이 있기 때문에 기업은 그것을 인사에 적용하거나 과신해서는 안된다. 첫째는, 조직 구성원의 다양성(Diversity)에 제한을 준다는 것이다. 다양성은 조직이 시들지 않고 골고루 가지를 활짝 펼 수 있는 자양분과 같은 것이다. 경영학의 권위자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는 “반대가 충분히 있지 않다면 의사결정 자체를 하지 말라”고 충고 할 정도로 다양성의 힘을 강조하고 있다. 조직에는 다양한 성격의 구성원이 필요하다.
둘째, MBTI성격 유형을 혈액형처럼 고정불변의 것으로 보아서는 안된다. 명리학에서 타고난 사주팔자는 바뀌지 않지만, 인생의 때에 따라 대운(大運)과 세운(歲運)의 영향으로 운수가 가변적이라는 논리를 세운다. 사람의 성격도 경험에 따라 또는 자기 계발과 수양에 영향 받으며 생애 발달 주기와 환경에 따라 점차 바뀔 수 있다. MBTI의 원조(元祖)격인 칼 구스타프 융도 성격은 변화는 것으로 봤다. 그는 인연(因緣) 관(觀)에서 힌트 받은 듯, “타고난 성격이 씨앗이고, 햇빛, 수분, 영양 등 성장 환경에 따라 바뀌는 것이 MBTI이므로, 이는 곧 나를 찾아 가는 과정의 하나”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본시 타고난 성격이 씨앗처럼 인(因)이고, 햇볕, 수분 등 성장 환경은 연(緣)이라는 설명이다. 인과 연은 합작으로 열매(果)를 맺는다.
인연은 가꾸기 나름이듯이 성격도 얼마든지 원하는 방향으로 바꿀 수 있다. 따라서 특정 성격 유형이 어떤 일을 잘 한다라는 통계는 있을 수 있지만, 꼭 그러리라는 고정관념은 맞지 않다. 예를 들어, 타고난 성격이 외향적(E)이고 직관적(N)인 사람만이 사업과 영업을 잘 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경험과 교육, 훈련의 힘을 무시하는 편견이다. 자동차 세일즈맨 중 전국 영업왕은 외향적이고(E) 직관적이며(N) 사교적인 사람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오히려 내성적이나 꼼꼼하게 챙겨가며 고객과 끈끈하게 장기적 신뢰관계를 형성한 사람이 대기만성으로 영업왕의 자리를 더 많이 그리고 더 오래 차지한다. 기업 조직에서도 내향적(I)인 직원을 훈련과 교육을 통하여 얼마든지 대외 업무에 활용할 수 있고, 그 경우 단점보다도 장점이 더 클 수 있다.
세번째로, MBTI나 점술사의 말을 옳다고 믿는 일반 대중의 심리는 ‘포러 효과(Forer Effect)’에 기인한다. 보통 사람들은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근거보다는 이미 자신이 가지고 있는 욕망, 추론, 확증편향 등에 기인하여 일반적인 사항을 견강부회(牽强附會) 격으로 과대 해석하여 자신에게 딱 막는 말이라고 믿는 성향을 가지는데, 이를 미국의 심리학자 버트럼 포러(Bertram Forer)의 이름을 따 ‘포러 효과’라 한다. 거리에 지나가는 중년 남자를 붙잡고 운수를 봐 주겠다고 하고, “아! 죽을 고비를 한 번 넘기셨으니 이젠 좋은 일이 곧 일어날 겁니다.”라고 말해준다면 누구든지 바로 수긍하고 딱 맞는 말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한 번쯤 죽을 고비’는 중년 남자라면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아주 주관적이고 일반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운전 중 죽을 뻔한 위기가 있었을 것이고, 군대에서 목숨이 아슬아슬한 위기는 생각하기에 따라 누구나 가지고 있는 추억이다. 부정적인 과거의 위험은 잘 넘겼으니, 미래는 자신의 바램과 욕망에 부합한 것이 올 것이라는 긍정적 멘트는 누구든지 쉽게 받아들이고 수긍할 것이다. 그런 심리 현상이 바로 ‘포러 효과’이다.
경영자는 어떤 경우에는 외로운 환경에서 고독한 결정을 해야 할 때가 종종 있다.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의 기본 원칙, 페이욜(Henry Fayol)의 14가지 경영원칙 등 경영자가 의존하던 전통적 경영이론도 이젠 빛을 잃고, 새로운 현대적 이론들이 나타나 혼선을 더해 준다. 그 중에 하나가 ‘상황이론(Contingency Theory)’이다. 경영에서 모든 상황에 적용될 수 있는 유일한 최선의 원칙은 없으므로 상황에 따라 유연한 경영원칙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상황적합 이론’을 말한다. “상황이 이렇다면(If~), 대응(then~)은 이렇게 해야 한다”면서 결국 경영자에게 모든 판단을 떠 맡긴다.
MBTI가 MZ 세대에게 인기있는 일시적 유행 같은 것일지라도 경영자는 선입견을 가지지 말고 그 내용을 알아야 한다. ‘하학이상달(下學而上達)’이란 공자의 말이 있다. ‘낮고 가까운 일상적인 일에서 배워(下學), 높은 경지에 도달(上達)함’을 말한다. 경영자는 MBTI 등 새로운 시대적 흐름을 알고 배우되, 그를 통하여 높은 경지의 경영상 판단을 하는 것이 ‘상황이론’에 적응하는 바람직한 모습이다.
[진의환 매경경영지원본부 칼럼니스트/ 현) 소프트랜더스 고문/ 서울대학교 산학협력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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