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곡법 바로보기]③ 의무매입 시행은 왜 쌀값 하락을 불러오나

윤희훈 기자 2023. 3. 8.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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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위적인 수급 조절에 시장선 ‘쌀 넘친다’ 인식
유럽·태국서도 의무매입제 피해만 남겨
중소농가 손해 키우는 쌀 의무매입
해법은 재배 전환 유도…인센티브 늘려야
2월 28일 경기도의 한 미곡종합처리장에서 관계자가 수매 후 보관중인 쌀의 수량 확인을 하고 있다. /뉴스1

더불어민주당은 쌀값 안정을 위해 과잉 생산된 쌀을 정부가 의무매입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정부는 의무매입제가 오히려 쌀값 하락을 유도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누구의 말이 맞을까?

“남는 쌀을 격리시켜 시장 공급이 줄면 가격은 자연스럽게 오른다”는 게 민주당의 주장이다. 수요와 공급의 구조를 생각하면 합리적인 판단으로 볼 수 있다. 문제는 쌀값이 오르기 위해선 공급이 부족하다는 신호와 더불어 실제적인 ‘쌀 매수 러시’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 의무매입해도 쌀값은 안오른다…점진적 우하향 전망

8일 정부에 따르면 수급 조절을 담당하는 정부는 시장에 공급이 부족하다는 신호가 감지되면 비축 물량을 푸는 역할을 한다. 쌀 격리는 결국 부족할 때 풀기 위한 조치다. 이는 시장 참여자에게 ‘쌀은 항상 넘친다’는 신호를 주게 되고, 쌀 가격은 점진적으로 하락하게 된다는 게 농림축산식품부의 설명이다. 쌀값 폭락 방지를 위해 막대한 재정을 쓰면서도, 쌀값은 계속 양곡관리법에서 명시한 가격하락 방지선 ‘5%’선 이내에서 우하향세를 기록하게 된다는 것이다.

현재 민주당이 발의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수요 대비 초과생산량이 3%를 넘거나, 쌀 가격 전년 대비 5% 하락할 때 정부가 의무적으로 매입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정부의 의무매입 시기를 지정한 기준은 역설적으로 정부의 공급 조절 및 가격 관리 목표가 된다. 쌀 생산량이 수요 대비 3%를 넘지 않고, 가격이 5% 이상 떨어지지 않으면 매입 의무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즉 생산량과 가격을 한도 범위 내에서 유지할 경우 쌀값은 조금씩 내려가게 된다.

농가로선 떨어진 쌀값만큼의 수익을 내기 위해 더 많은 쌀을 생산하고자 하는 유인이 생긴다. 이는 쌀 과잉 생산을 촉발하고, 결국 재정낭비로 이어지게 된다.

외국에서도 의무매입제도는 대부분 실패로 귀결됐다. 유럽은 1962년 ‘유럽 공동 농업 정책’(CAP)을 마련해 버터·쇠고기 등의 최저 가격을 보장했다. 하지만 이는 생산 과잉, 가격 추가 하락, 농가소득 감소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농업예산이 늘어나면서 정부 재정은 크게 악화됐다.

태국 역시 의무수매제의 실패를 겪었다. 2011년 총선에서 승리한 잉락 친나왓 당시 총리는 농가가 수확한 쌀을 지정 창고 입고 후 4개월 간 소유권을 유지하며 시장 가격이 높은 경우 시장에 판매하도록 하고, 미판매시 정부가 국제시세의 1.5배 가격에 매입하는 쌀 수매제도를 실시했다. 이후 태국의 쌀 생산량은 연 20% 이상 증가했다. 태국 재무부 조사 결과, 쌀 의무 매입 수매제도로 인한 총 손실은 9조5000억원에 달했다.

윤종철 농촌진흥청 차장이 11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2023년 농촌진흥청 주요 업무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쌀값 하락 피해는 중소농가의 몫…해법은 감산 위한 재배 전환

과잉 생산에 따른 쌀값 하락은 중소농가에 더 치명적이다. 농사 규모가 커 자체적으로 생산 물량을 장기 보관할 수 있는 대농은 쌀값 시황에 맞춰 탄력적으로 출하를 해 가격 방어를 할 수 있지만, 수확기에 쌀을 전량 농협이나 민간 쌀 유통업체(RPC)에 넘기는 중소농은 이러한 대응이 어렵기 때문이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0.5ha 미만 논을 경작하는 중소농가의 경우, 2021년 산지 쌀값이 22만602원(80kg기준)일 때 마진율이 22.9%였다.

하지만, 양곡관리법 개정안 시행 이후 2030년 산지 쌀값은 17만2709원(한국농촌경제연구원 전망치)으로 떨어지게 된다. 공급 과잉에 따른 가격 하락이다. 이때 중소농가의 순수익률은 2.6%에 불과하다.

7~10ha 농지를 보유한 대농들은 같은 기간 마진율이 41.8%에서 23.5%로 떨어지지만, 중소농가보다는 훨씬 유리한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쌀값 안정에 가장 중요한 것은 적정량 생산이라고 지적한다. 특히 쌀에 편중된 농업 구조를 개혁해 타 작물의 자급률을 높여야 한다고 꼬집는다.

정부도 이를 위해 재배 작물 전환 시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안을 시행하고 있다. 정부는 올해부터 콩·가루쌀(분말로 만들기 쉬운 쌀 품종)을 이모작할 경우 ha당 250만원의 직불금을 지급하는 ‘전략작물 직불제’를 시행한다. 벼 대신 콩이나 가루쌀을 단작하면 ha당 100만원, 밀이나 조사료 등을 벼와 함께 이어 지으면 ha당 50만원을 지원한다. 총 720억원의 예산을 배정했다.

적지 않은 지원이지만 농업계에선 작물 전환을 서두를 정도의 큰 메리트는 아니라고 지적한다. 쌀값은 지속적으로 정부가 방어해주는 반면, 채소나 타작물은 흉작이나 과잉 생산 시 농가가 져야 할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황성혁 농협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농가의 재배 작물 전환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전략작물 직불금이 쌀을 재배했을 때의 소득과 전략작물을 재배했을 때의 소득 차이를 상쇄할 수 있는 만큼이 돼야 한다”면서 “정부로서도 고심한 정책이겠지만 현장에서는 작물 전환시 들어가는 노력 등을 비교했을 때 인센티브가 적다고 보는 듯 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콩·밀 등 전략작물 재배가 늘어나면 해당 작물의 가격도 생산 확대로 내려간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며 “전략 작물을 재배해도 쌀 이상의 소득을 낼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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