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전기·가스비 2배 올라”… 유럽 곳곳서 돌아가는 풍력발전기
지난 1일(현지시각) 벨기에 브뤼셀에서 북부 지역인 플랑드르를 향해 100㎞의 고속도로를 달리는 동안 마을 곳곳에 놓인 풍력발전기들이 눈에 띄었다. 벨기에 에너지 협동조합이 운영하는 풍력발전 단지들이었다. 시민들이 에너지 협동조합에 출자금을 내고 가입하면, 전력을 고정 가격에 살 수 있고 이익도 나눠 받을 수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벨기에에는 40여개의 에너지 협동조합이 있다. 가장 규모가 큰 에코파워(Ecopower)는 8000만킬로와트시(㎾h)의 풍력발전기와 태양광 패널로 5만5000가구에 전기를 공급하고 있다. 벨기에 전체 가구의 2%가 에너지 협동조합을 통해 전력을 공급받는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면서 에너지 협동조합의 인기도 늘었다. 지원이 급증해 조합원 모집을 임시 중단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브뤼셀에 사는 현지 교민 A씨는 “한달 평균 전기·가스비가 90유로(약 12만5000원) 정도였는데 1년새 200유로(약 28만원)로 뛰었다”며 “확실히 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고 말했다.
지난 3일 브뤼셀에서 독일 쾰른과 본을 지나 프랑크푸르트까지 향하는 동안에도 곳곳에서 풍력 발전기가 눈에 띄었다. 독일도 탄소 배출량 감축을 목표로 발 빠르게 에너지 협동조합과 에너지 자립 마을 등을 구축해왔다. 독일은 2021년 기준 전체 전력의 41%를 재생에너지로 생산했고, 그 절반이 풍력발전에서 나왔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함께 EU 역내 에너지 안보가 중요해지면서 재생에너지 발전 관련 투자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커졌다. 지난 2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만난 세사르 루에나(Cesar Luena) EU 의회 환경위원회 부의장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유럽에 에너지 자립의 중요성을 크게 일깨워주는 계기가 됐다”며 “저렴한 가스는 정상적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스페인과 포르투갈 정부는 선도적으로 에너지 시장을 개혁하고, EU의 재생에너지 사용량을 늘리는 중요한 결과물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EU 국가들은 대규모 풍력발전 투자 계획을 밝히고 있다. 독일과 벨기에, 덴마크, 네덜란드 등 4개국은 지난해 북해 연안 풍력발전 역량을 2050년까지 지금보다 10배 늘린 150기가와트(GW)로 확대하기로 했다. 또 독일을 비롯해 발트해 8개국은 발트해 연안 풍력발전 용량을 2.8GW에서 20GW로 확대하기로 했다. 보통 10GW면 1000만 가구의 전력 수요를 충당할 수 있다.
EU 차원에서도 재생에너지 기반의 수소(그린 수소)를 핵심 에너지원으로 꼽고 재정적으로 뒷받침할 계획이다. EU 집행위원회는 지난달 ‘그린딜 산업계획(Green Deal Industrial Plan)’을 제시하면서 총 2700억유로(약 370조원)를 넷제로(Net 0·온실가스 순배출 0) 분야에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비어리 누츠(Veerle Nuyts) EU 집행위 경제‧재무 담당 대변인은 “배출권 거래제 수익금 등으로 만든 400억유로 규모의 혁신 기금으로 수소와 재생에너지 등에 10년 동안 투자할 계획”이라며 “올해 여름 전까지 EU 국부펀드 조성도 제안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아제강과 씨에스윈드 등 국내 풍력발전 타워(하부구조물) 업체가 유럽 지역 수출 실적을 쌓고 있는 가운데, 앞으로 시장이 커지면서 이익 규모가 늘어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는 그리스와 독일에 풍력발전 하부구조물을 각각 792만달러(약 1000억원), 183만달러(약 230억원) 수출했다.
정만기 한국무역협회 부회장은 “EU 집행위원회와 의회 관계자를 만나 우리 기업의 수소 사업을 설명하자 큰 관심을 보였다”며 “앞으로 EU와 관련 산업 협력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뒷받침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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