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운동' 후 도입된 젠더 부서·전담기자, 5년 지난 지금은…

김고은 기자 입력 2023. 3. 7.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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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사 젠더 조직 현주소]
여성 주제 뉴스레터 등 콘텐츠 확장
뉴스룸 내 성인지 감수성 제고 성과
서울신문, 오너 바뀐 후 자취 감춰
반면 KBS는 젠더데스크 신설 추진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2018년 ‘미투(#MeToo)’ 운동을 거치며 페미니즘은 일대 변혁을 겪었다. 청년세대 여성들을 중심으로 이른바 ‘페미니즘 리부트(재시동)’가 촉발돼 여성 인권과 젠더 이슈가 어느 때보다 주목받기 시작했고, 그만큼 백래시(반발심리)도 강해지며 ‘젠더 갈등’이 중요한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이런 분위기에서 국내 언론사들이 젠더 이슈에 주목하고 전담 인력이나 조직을 만들기 시작한 지도 햇수로 5년째를 맞는다. 2019년 5월 가장 먼저 한겨레가 젠더데스크 직을 만들었고, 같은 해 6월엔 서울신문이 부설 ‘서울젠더연구소’를 설립했다. 이에 영향을 받아 2020년 11월 부산일보가 지역신문으론 최초로 젠더데스크를 도입했고, 2021년 6월 경향신문도 소통·젠더데스크를 만들어 지금에 이른다. 별도의 보직 없이 젠더 이슈를 전담하는 기자도 생겼고, 페미니즘이나 여성 서사를 주제로 하는 뉴스레터 등도 생겨났다.

주한 유럽연합(EU) 대표부가 국제 여성의 날을 이틀 앞둔 지난 6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20층 프레스클럽에서 ‘미디어 속 여성에 대한 관점’을 주제로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국내 언론에서 일하는 여성 기자와 한국인 외신 기자, 유럽의 대사와 언론인 등 참석자들은 여성 언론인들이 처한 현실을 공유하며, 특히 온라인상에서 많은 문제가 되는 여성 기자에 대한 공격에 대해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지 말고 사회적·제도적 대응을 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그리고 2023년 3월 현재. ‘살아남은’ 조직 또는 인력은 많지 않다. 사장 직속으로 만들어졌던 서울신문의 젠더연구소는 대기업 오너가 들어서고 경영진이 바뀌면서 소리도 없이 사라졌다. 젠더연구소와 별개로 편집국에 젠더 이슈 전담 기자를 두고 3주에 한 번씩 젠더 면을 만들기도 했으나, 지난해 가을 조직개편과 인사 발령, 담당 기자의 퇴사 이후 서울신문의 주요 뉴스에서 젠더 이슈는 자취를 감췄다.

한국일보는 2021년 4월 젠더 전문 뉴스레터 ‘허스토리’를 런칭하고, 이듬해 6월엔 담당 기자를 1인 랩 ‘허스펙티브랩장’으로 발령하며 뉴스레터 포함 관련 콘텐츠 생산을 아우르는 실험으로 확장했다. 그러나 반년 만에 실험은 중단됐다. 1인 랩이 없어지고 해당 기자가 일반 취재 부서로 발령 나면서다. 다만 허스펙티브 뉴스레터는 기자의 “사내 사이드 프로젝트”로 남아 재정비를 거쳐 지난 1월 말부터 재발송을 시작했다.

반대로 젠더 조직의 도입을 준비하는 언론사도 있다. 2018년 10월 국내 방송사 최초로 성평등센터를 만든 KBS는 성평등 관점의 뉴스 제작을 위한 보도본부 내 젠더데스크 신설을 검토 중이다. KBS는 올 초 ‘2023년 방송기본계획’에서 저널리즘책무실에 젠더데스크를 도입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여성을 포함해 사회 소수자의 비중과 다양성을 높이자는 방향이며, 공사창립 50주년을 맞아 조만간 발표될 뉴스 혁신안에 이 같은 내용이 담길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한겨레와 부산일보, 경향신문 등에서 도입해 길게는 5년째 시행 중인 젠더데스크는 기본적으로 뉴스룸에서 생산되는 기사를 성인지 감수성에 비춰 모니터링하고 문제가 될만한 관점이나 표현을 바로잡는 역할을 한다. 지난해 6월 미국 연방 대법원이 50여년 만에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었을 때, 기자와 젠더데스크가 머리를 맞대 ‘낙태권’ 대신 ‘임신중지권’이란 표현을 쓴 부산일보 사례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사례와 경험들이 축적되어 한겨레는 2021년 5월, 국내 언론 최초로 내부 ‘젠더 보도 가이드라인’을 만들었고, 경향도 지난해 10월 젠더데스크가 내부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공유했다.

축적된 시간과 경험들은 조직 내 분위기도 바꿔놓았다. 연차나 직급이 높은 ‘선배’가 젠더데스크에 ‘이 표현이 적절한지 봐달라’며 물어오는 일은 이제 일상적인 편이다. 문제가 되는 표현을 발견하고 논의를 거쳐 바로잡는 데 걸리는 시간도 줄었다. 달리 말하면 조직 내 전반의 감수성이 높아진 셈이다. 임아영 경향신문 소통·젠더데스크는 “가이드라인이 중요하다고 많이들 생각하는데, 그보다는 가이드라인을 적용할 수 있는 사람이 조직에 생기는 것, 그 사람이 일할 수 있는 시간이 확보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젠더데스크 같은 전담 인력의 존재는 그 자체로 해당 언론사가 젠더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메시지를 준다. 그래서 사내 공감대 형성이 중요하고, 무엇보다 리더의 결단이 있어야 가능하다. 한겨레는 최초로 젠더데스크를 도입한 데 이어 2019년 10월엔 젠더 전담 버티컬 매체인 ‘슬랩’을 런칭하고, 젠더 이슈만 전담하는 젠더팀도 만들어 팀장 포함 4명의 기자를 두고 있는데, 사내에서 꾸준히 제기된 요구를 리더십이 공감하고 수용한 결과였다. 장수경 젠더데스크 겸 젠더팀장은 “단순히 여성들만의 문제로 치부할 게 아니라 사회 구조적 문제로 인지하고, 이를 지속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서로 공감하는 문화가 있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따라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임아영 데스크는 강조한다. 우리 사회 많은 분야가 그렇듯 언론사에서도 의사결정권은 대부분 남성에게 있기 때문이다. 임 데스크는 “점점 나아질 거란 말을 믿지 않는다. 입사한 지 15년이 됐는데, 가만히 앉아서 나아지지 않더라. 목소리를 내고 노력해야 바뀐다”면서 “아직은 수뇌부에 남성이 많고, 그래서 젠더데스크가 중간 다리 역할을 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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