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원도 못 낸다’ 일본 논리 따르고도…사과는커녕 경제보복도 못 풀어[강제동원 ‘3자 변제’ 후폭풍]

이홍근·김세훈 기자 2023. 3. 7.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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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 “행정부가 대법 판결 무력화…일본에 치외법권 줘”
기시다 ‘내각 계승’엔 사죄 거부 아베·고이즈미 내각도 포함
수출규제 ‘철회 논의’뿐…“명분도 실리도 다 잃은 굴욕 외교”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김성주 할머니와 611개의 시민사회단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등 의원들이 7일 국회 본청 앞에서 일본 전범 기업의 참여와 배상이 빠진 정부의 강제동원 해법안에 대한 긴급 시국선언 발표를 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윤석열 정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제3자 변제안을 놓고 명분도 실리도 챙기지 못했다는 전문가들의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피해자가 원치 않는 방식을 강행하고도 일본의 제대로 된 사과 한마디 듣지 못했다는 것이다. 일본이 대법원 판결을 문제 삼아 시작한 경제보복의 ‘완전 철회’가 아닌 ‘철회 논의’만 끌어낸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김창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7일 제3자 변제안에 대해 “강제동원은 없고 위자료 청구권도 없다는 일본 정부의 논리를 그대로 따른 것”이라며 “대법원 판결을 무시해 사실상 일본에 치외법권을 줬다”고 했다. 2018년 대법원은 일제강점 당시 신일본제철에 강제로 끌려가 노역한 피해자들에게 일본 기업이 1억원씩 위자료를 배상해야 한다고 확정 판결했다.

제3자 변제안은 국내 기업들로부터 기부금을 받아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판결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일본 기업도 참여할 수는 있으나 피고인 일본제철과 미쓰비시는 돈을 내지 않는다. 김 교수는 “행정부가 일본 기업이 배상하라는 사법부 판결 논리를 뒤집어 한 푼도 내지 않을 수 있게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피해자 측 법률대리인인 임재성 변호사도 “강제동원 문제에 대해서는 1원도 낼 수 없다는 일본의 안이 그대로 관철된 것”이라며 “얻어낸 것 하나 없이 피해자들의 채권을 소멸시켰다. 대법원 판결을 사실상 무력화한 것”이라고 했다.

‘굴욕 외교’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저자세 외교를 펼쳤으나 실익이 없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강제동원 피해배상 해법 발표 이후 별다른 사과 메시지를 던지지 않고 “역사 인식에 관해서는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해왔다”고만 했다. 기자들과 만나 ‘식민통치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사죄’가 담긴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언급하면서도 “이 공동선언을 포함해 역사 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 이것을 전체적으로 계승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시다 총리의 말대로라면 일본 정부는 전쟁과 사죄 반성을 거부한 아베 신조 내각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의 역사관도 계승하는 셈이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김 교수는 “2015년 아베 담화는 사실상 식민지배 책임을 부정하는 담화”라면서 “이 담화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라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외교부 1차관을 지낸 최종건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무라야마 선언이나 김대중·오부치 선언 후에 고이즈미와 아베 내각이 있었던 만큼 정확한 시기를 짚어줘야 사과의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 측이 경제보복 철회를 명확하게 약속하지 않은 점도 문제로 꼽힌다. 일본 측은 “한국이 WTO(세계무역기구) 분쟁 해결 절차를 중단한다는 의사를 보여 정책대화를 재개할 환경이 조성됐다”고 했을 뿐 경제보복을 철회하겠다고는 약속하지 않았다. 최 교수는 이를 두고 “우리는 명분도 실리도 다 잃은 것”이라며 “사실상 일본은 한 게 없다”고 했다. 최 교수는 “타임라인을 보면 강제징용 판결 후 일본이 경제보복을 했고, 이에 한국이 일본을 WTO에 제소했다”면서 “우리가 먼저 제소를 취하하니 일본이 대화를 해보겠다고 한 걸 놓고 수출규제 회복이라고 할 순 없다”고 말했다. 이어 “협상이라고 하면 99 대 1이 됐든 90 대 10이 됐든 뭔가를 우리가 가져와야 하는데 얻은 게 없지 않으냐”고 말했다.

이홍근·김세훈 기자 redroo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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