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형적 입시에 전국민이 사교육 볼모 … 소비도 출산도 '뚝뚝'
툭하면 바뀌는 교육제도에
"내 애만 뒤처질라" 공포 커져
영어유치원 보내려 대출까지
코로나로 방과후 학교 줄자
초등 2년 사교육비 증가 최대
◆ 망국병 사교육 ◆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 거주하는 직장인 이 모씨(38)는 유치원생 자녀의 영어유치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최근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했다. 유치원비만 월 200만원 가까이 돼 월급만으로는 대출 이자와 생활비까지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씨는 "주위에서 영어유치원은 필수라고 하더라"며 "남편 직장에서 연말에 성과급이 나오면 메울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결정했지만 결국 빚이나 마찬가지"라고 하소연했다.
서울 강남구에 거주 중인 40대 정 모씨는 중학교 2학년 자녀의 외국어고 입학을 위해 월 수백만 원의 학원비를 지출한다. 정씨는 "초등학생 때 고등학교 수학 선행학습을 시작해 중1 때 끝내고, 지금은 복습을 하고 있는데 이미 좋은 대학을 보내기 위한 기본 코스가 됐다"며 "학원비가 초등학생 때는 월 200만원, 지금은 학기 중에 월 300만원, 방학 때는 500만원까지 들지만 아이에 대한 투자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치원생부터 초·중·고교생까지 자녀를 둔 대한민국 학부모 대부분이 사교육 부담으로 허리가 휠 지경이다. 오직 입시만을 향해 달리는 아이들의 불행은 말할 것도 없다. 지난해 사교육비 총액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사교육 시장은 더욱 과열되고 있다. 학령인구는 줄어들고 있지만 조기교육 열풍과 수시로 바뀌는 교육정책 등 복합적 이유로 사교육비는 오히려 늘어나는 '기현상'이 멈출 줄 모른다.
사교육비는 가계 경제를 무너뜨리는 요인일 뿐 아니라 자라나는 학생들에게는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한국 합계출산율이 0.78명으로 전 세계 최저 수준으로 추락한 한 원인이기도 하다. 학부모와 학생 모두가 '피해자'인데, 정작 가격을 계속 올리는 사교육 업체와 인기 강사들만 부모들의 불안감에 편승해 득을 보는 구조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교육부와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초·중·고교생 1인당 사교육비는 학원을 가지 않는 학생까지 합해 월평균 41만원으로 전년(36만7000원) 대비 11.8% 증가했다.
코로나19 기간 비대면 수업 시행에 따라 학력 저하에 대한 우려가 커진 점도 사교육비가 증가한 원인으로 풀이된다. 특히 문해력 저하 문제로 초등 독서논술 학원이 인기를 끌면서 중·고교생보다는 초등학생, 초등학생 중에는 저학년에 속하는 1~2학년에서 사교육비 증가세가 가팔랐다.
지난해 사교육을 받은 초등학생 중 2학년의 월평균 사교육비는 41만3000원으로 전년(35만6000원) 대비 15.9% 뛰면서 전체 학년 가운데 증가세가 가장 가팔랐다. 1학년은 36만7000원으로 13% 증가해 그 뒤를 이었다.
정제영 이화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코로나19로 학교를 못 가다 보니 학습 격차가 심화되면서 부모들 불안이 증폭된 것"이라며 "방과 후 학교가 맞벌이 부부에게는 아이를 돌봐주는 역할도 있었는데, 코로나19로 이게 줄어들다 보니 사교육으로 풍선 효과가 일어난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2025년 고교학점제 도입에 발맞춰 절대평가가 강화될 것이라는 전망에 특목고 진학에 대한 욕구가 커지면서 중등 선행을 부추기고 있다. 고교학점제와 함께 그 핵심 정책인 성취평가제(절대평가)가 시행되면 고교 내신은 변별력이 떨어지고 고등학교 이름값이 중요해질 것이라는 우려 탓에 중학생 사이에서 '특목고 광풍'이 불고 있다는 것이다. 성남시 분당구에 거주하는 안 모씨(50)의 둘째 자녀는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고등학교 과정 선행학습에 돌입했는데, 지난달에는 사교육비 지출만 200만원에 육박했다.
안씨는 "고교학점제로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고교 입시가 곧 대학 입시'라는 분위기"라며 "둘째가 올해 중2에 올라갔는데 작년에 대학 간 첫째가 중학생일 때보다 사교육비를 6배는 더 쓴다"고 토로했다.
성취평가제는 고교 성적을 절대평가 방식인 성취도만으로 성적표에 기재하는 제도다. 내신 절대평가가 시행되면 고등학교 사이에서 좋은 성적을 남발하는 '내신 부풀리기'로 변별력이 사라지니, '이름값'이 비싼 특목고가 대입에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이렇다 보니 학생들은 중학교 때부터 3~5개 학원에 다니며 특목고 입시를 준비하는 경우가 흔하다.
이처럼 사교육 열기가 뜨거운 상황에서 방송 매체에 출연하는 소위 '일타 강사'로 불리는 입시학원 인기 강사들은 우리나라 사교육의 현실을 반영하는 모양새다. 인터넷 강의 강사 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많아야 오를 수 있는 이들은 많게는 한 해에 100억원 넘는 수익을 올리는 등 큰돈을 벌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반 시민들도 스타 강사가 빌딩 건물주가 됐다는 뉴스가 올라올 때마다 허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 교육업체 관계자는 "부동산에서 일컫는 '똘똘한 한 채'처럼 저출산 여파 속에서 부모들이 자녀 한 명에게 양질의 사교육을 하는 데 집중해 1인당 사교육비는 더 크게 올라갈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문가영 기자 / 한상헌 기자 / 김정석 기자 / 박나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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