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여당의 지나친 KT CEO선임 개입에 '역풍'

금준경 기자 입력 2023. 3. 7. 18:24 수정 2023. 3. 7.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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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림 부문장 대표이사 내정, 주총서 국민연금 반발 가능성
정부 개입에 소액주주 행동 예고, 시민사회 국민연금 행태 지적
KT는 투사? 견제 없이 '셀프연임' 추진했던 이사회 개선 필요

[미디어오늘 금준경 기자]

우여곡절 끝에 윤경림 KT그룹 트랜스포메이션부문장(사장)이 KT 대표이사에 내정됐다. KT이사회가 정치권 출신 인사를 배제해 국민연금의 반대가 예상되는 가운데 소액주주들과 시민사회가 정치권의 지나친 개입에 반발하는 등 역풍이 불고 있다. '민간기업' KT를 향한 외압도 문제지만 그간 제대로 된 견제장치 없이 '셀프연임' '깜깜이 심사'를 해온 '국민기업' KT의 이사회 역시 돌아볼 대목이 있다.

노골적인 압박에 구현모·사외이사들 사퇴

지난달 28일 KT이사회가 34명의 차기 대표이사 후보자 가운데 KT 출신 인사 4명을 면접 대상 후보자로 선정하자 정치권의 압박이 노골화됐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지난 2일 브리핑에서 KT 대표이사 선임에 관해 “민생에 영향이 크고 주인이 없는 회사, 특히 대기업은 지배구조가 중요한 측면이 있다”며 “그것(공정·투명한 거버넌스)이 안 되면 조직 내에서 모럴 해저드가 일어나고 그 손해는 우리 국민이 볼 수밖에 없지 않으냐는 시각에서 보고 있다”고 했다.

▲ 서울 광화문 KT 본사. ⓒ 연합뉴스

같은 날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대표이사 선임 절차 중단을 촉구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KT이사회가 “그들만의 이익 카르텔”이라며 “검찰과 경찰은 KT 구현모 대표이사와 그 일당들에 대한 수사에 조속히 착수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승재 국민의힘 의원은 7일 입장문을 내고 “철저히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특정인들을 밀어주고 당겨주며 현재의 이익카르텔을 유지하려고 하는 수법”이라고 반발했다.

정부여당의 개입은 지난해부터 예견됐다. 지난해 KT이사회는 경선을 거쳐 구현모 KT 대표이사의 연임을 결정했지만 KT의 대주주인 국민연금이 '반대' 입장을 내면서 이례적인 재공모가 시작됐다. 직후인 지난 1월 윤석열 대통령이 “민영화되면서 소유가 분산된 기업들은 소위 스튜어드십(기관투자자의 적극적 의결권 행사)이라는 것이 작동돼야 한다”고 밝혔다. 국민연금의 반발은 사실상 윤석열 정부의 사람을 심으려는 의도로 풀이됐다.

정부는 윤석열 대선캠프, 인수위 출신인 윤진식 전 산업자원부 장관의 선임을 원했던 것으로 보인다. <[단독] KT 새 대표 윤진식 유력>(서울신문), <KT 차기 CEO에 尹캠프 고문 윤진식 급부상>(조선일보) 기사가 나오는 등 일부 언론은 윤진식 전 장관이 유력하다고 보도했다. 정치권에서 그가 유력하다고 자평해왔기에 가능한 보도였다.

정치권의 압박은 대표이사 선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민연금의 반대에도 굽히지 않고 재공모에 응했던 구현모 대표이사가 지난달 23일 급작스럽게 중도 하차했다. 임기가 2년 남은 벤자민 홍 사외이사가 7일 급작스럽게 사임했다. 지난 1월엔 이강철 전 사외이사가 중도사퇴해 대표이사 선임 국면에서 2명의 사외이사가 사퇴했다. KT이사회 대표이사후보심사위원회는 사내이사 1인과 사외이사 전원으로 구성돼 사외이사는 면접관 역할을 맡는다.

표대결 가능성에 소액주주 반발, 시민사회도 공론화

KT 대표이사 내정자가 선정됐으나 국민연금이 이번에도 반발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특히 윤경림 내정자는 현 대표 선임 업무를 맡은 이사회 멤버라는 점에서 '부적절하다'는 비판에 힘이 실릴 수 있다. 다만, 구현모 대표이사의 연임 포기와 KT이사회의 공개심사 방침을 통해 국민연금의 반대 논리였던 '셀프 연임' '깜깜이 심사' 문제가 이번 재공모에 한해 개선돼 반대 명분이 부족한 상황이다. 국민연금이 지난해에 이어 반대 입장을 지속적으로 내 경영 공백이 발생할 경우 책임론이 대두될 수 있다.

과도한 개입이 이어지자 역풍이 불고 있다. 정부여당의 개입 이후 KT 주가가 급락하면서 소액주주들이 집단 행동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달 25일 개설된 카페 KT주주모임에선 소액주주들이 모여 KT 사장 최종 후보자에 찬성표를 던지겠다는 입장을 모으고 있다. KT의 소액주주 지분은 57%에 달한다.

시민사회도 공론화를 예고했다. 경제개혁연대, 금속노조,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생경제위원회, 민주노총, 참여연대, KT새노조 등은 8일 좌담회를 통해 KT 등 기업의 지배구조 문제를 조명하고 국민연금의 역할을 촉구할 계획이다. 이들 단체는 “국민연금이 새정부 출범 후 첫 주주총회를 앞두고는 도리어 KT, 우리금융지주 등 소위 '주인없는 회사'에 대해서만큼은 특별히 적극 대응하고 있어 낙하산 임명 의혹 등 우려가 큰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언론도 민영화된 기업인 KT 대표이사 선임에 정부여당이 나서는 건 부적절하다고 입을 모은다. 조선일보, 동아일보, 한겨레, 경향신문, 한국일보, 세계일보 등이 관련 사설을 내고 정부를 비판했다.

이사회의 강단? '셀프연임' 비판도 필요해

일각에선 KT이사회를 외압에 저항하는 것처럼 묘사하기도 한다. 일례로 머니투데이는 “KT 이사회는 정치권의 직간접 압력에도 압축후보자를 KT 전현직 임원으로 꾸리면서 '강단'을 보였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했다.

정권 교체 때마다 반복되는 정치 개입이 본질적인 문제이지만 KT이사회를 '외압에 맞선 투사'로 규정하기에는 모호한 면이 있다. 지난해 국민연금의 구현모 대표이사 연임 반대는 정치적이지만 그 근거였던 '불투명한 심사'와 '셀프연임 우려' 지적 자체는 타당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구현모 대표이사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현 이사회 멤버인 윤경림 후보가 내정되면서 이같은 비판은 힘이 실리게 됐다.

▲ 2022년 1월 KT 신년식에서 발언 중인 구현모 KT 대표이사. 사진=KT 제공

이호계 KT 새노조 사무국장은 “KT가 민간기업이기에 정치권의 개입이 부당하다고 보지만 한편으로 보편적 서비스를 하는 국민 기업이기에 이사들의 이익을 위한 회사가 돼서도 곤란하다”며 “구현모 대표이사는 KT의 비자금 조성 당시 경영지원총괄 부사장을 했고, 국회의원 불법 후원에 가담해 재판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이사회가 구현모 사장을 단수 추천했다”고 지적했다.

이호계 사무국장은 “KT이사회는 정관에도 없는 현직 대표이사 연임 우선심사 규정을 적용해 사장의 연임까지 밀어주는 점은 개선이 필요하다”며 “이사회의 감시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그러려면 노동 이사, 소비자단체 추천을 받은 소비자 이사 등을 선임해 구성을 다양하게 해야 한다”고 밝혔다. 참여연대는 지난 1월 'KT 대표이사 연임우선제도의 문제점' 자료를 통해 KT이사회가 정관에 없는 현직 대표이사 연임 우선심사 규정을 두고 있다며 “셀프연임을 가능하게 하는 잘못된 제도”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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