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이런 한일관계 물려줄거냐 … 여론 의식땐 영원히 해결 못해"

박윤균 기자(gyun@mk.co.kr), 한예경 기자(yeaky@mk.co.kr) 2023. 3. 7.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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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일관계 급물살 ◆

윤석열 대통령이 7일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승환 기자>

한국 정부가 독자적으로 내놓은 일제 강제징용피해 배상 해법에 대해 동맹국 미국은 물론이고 영국·유럽연합(EU) 등 각 국에서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한일 정부 발표를 계기로 양국 외교는 2018년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이후 냉각됐던 관계를 전면 복원하는 데 시동을 걸 전망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방일을 시작으로 한일관계 복원을 위한 프로세스를 본격적으로 가동한다는 구상으로 알려졌다. 강제징용 갈등에서 파생됐던 일본의 대한국 수출 규제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문제도 현재는 구체적인 법적 재개 절차가 남았다. 2014년 이후 중단됐던 한일 외교차관급 전략대화 재개도 거론되고 있다.

#장면1

지난 2월 대통령실 내부에서 한일 협상 속도를 늦춰야 한다는 '속도조절론'이 들끓었다. 정무 라인에서는 자칫 대통령 지지율이 급속도로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전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심사숙고해서 진행한 위안부 합의도 역풍을 맞았다는 과거 사례도 보고됐다. 사도광산 유네스코 등재 추진,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 등 한일 간 악재가 산적해 있기 때문에 정상회담 추진 일정을 올 하반기로 미뤄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윤 대통령은 그러나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며 한 마디로 정리했다. 2월 윤 대통령을 만난 한 국민의힘 의원 전언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지지율이 떨어질 것을 생각하면 한일관계는 앞으로 영원히 이대로 가야 한다. 누군가는 결단을 해야 한다. 이런 한일관계를 다음 세대에게 그냥 넘겨줄거냐"고 했다고 한다. 최근 성사된 국민의힘 의원들과 윤 대통령의 관저 만찬에서도 윤 대통령은 "언제까지 이렇게 갈 수는 없다. 총선 가서 할거냐"고 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 대통령은 또 대통령실 참모들에게 "어차피 할 거라면 매도 미리 맞는 게 낫다. 지지율 1%가 나오더라도 할 일은 할 것"이라며 오히려 협상에 속도를 낼 것을 주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장면2

한국이 피해국인데 왜 일본보다 먼저 해법을 내놓아야 하느냐는 의견도 나왔다. 그러자 법조인 출신 윤 대통령의 판단이 발동했다. 외교부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국제법상 조약을 지키면서도 개인의 손해배상 청구권을 지킬 수 있는 방안에 대한 법률가적 고민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2018년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소송할 수 있다는 김능환 대법관의 판결로 한일 청구권협정에도 피해자 개인이 손해배상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판례가 생겼다. 이 때문에 일본 기업에 대한 자산현금화가 진행됐고, 일본은 이를 두고 한국이 국제법을 깼다고 주장해 왔다. 윤 대통령은 '개인의 손해배상 청구권은 민법상 권리로 지켜져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를 존중하면서도, 동시에 국제법 또한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결국 한국 정부가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을 통해 배상하는 것이 국제법과 민법상 권리를 모두 지킬 수 있는 대안이라고 판단했다.

이 고위 관계자는 "윤 대통령은 일본과 돈문제로 협상하는 것은 우리 국격에 맞지 않는다고 보면서 대신 피해자의 청구권은 정당한 민법상 권리이므로 일본에 매달릴 게 아니라 우리 정부가 직접 해결하는 게 맞는다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장면3

한일관계 개선이 급물살을 탄 것은 3·1절 기념사였다. 윤 대통령과 한국 정부에 대해 의구심을 거두지 않던 일본도 3·1절 기념사에 마음이 움직였다. 일본은 3·1절 기념사에서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직시 등 발언이 나올 것으로 예상했으나 일본을 '협력 파트너'로 규정하자 다급히 한국과 협의 방안을 준비하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처럼 드라마틱한 기념사를 전달하기 위해 대통령실은 3·1절 당일 아침까지도 기념사 내용을 비공개에 부쳤다. 심지어 일부 인사의 반대를 우려해 극소수만 기념사 내용을 공유한 것으로 전해졌다.

3·1절 기념사가 발표되자 협상팀의 시계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3·1절 이후 주말 동안 한·미·일 외교 실무자·차관·장관급 모두 밀착 공조가 이뤄졌다. 인도 쿼드 회의에 참석하고 돌아온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과 박진 외교부 장관이 지난 5일(일요일) 이른 아침에 통화를 한 후 우리 정부의 강제징용 해법 독자 발표 내용이 미·일 측에도 공유됐다. 일본은 박 장관의 발표 직후 하야시 외무상이 일본 측 입장을 발표하겠다고 알려왔고, 미국도 백악관·국무부를 시작으로 고위급 발표가 이어졌다.

이에 앞서 박 장관은 지난 1~2일 인도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외교장관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하루 전날인 지난달 28일 출국할 예정이었다. 인도에서 하야시 외무상을 만나 최종 협상을 할 계획이었지만 윤 대통령의 지시로 출장을 포기하고 대신 강제징용 피해자들과의 단체 만남에 나섰다. 일본과의 협상에 대해 결론을 짓기에 앞서 피해자들 의견을 진정성 있게 청취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박윤균 기자 / 한예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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