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의 간디’, ‘술탄’ 에르도안 대항마로 나선다

김서영 기자 2023. 3. 7.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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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말 클르츠다로울루 공화인민당(CHP) 대표가 6일(현지시간) 앙카라에서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튀르키예 6개 야당 연합이 케말 클르츠다로울루 공화인민당(CHP) 대표(74)를 5월 대선에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과 맞설 대항마로 선출했다.

6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6개 야당은 클르츠다로울루 대표를 단일 대선후보로 추대했다. 야당 소속인 현 이스탄불 시장, 앙카라 시장도 클르츠다로울루 대표가 대통령이 될 경우 부통령이 되겠다며 지지에 나섰다. 그가 야권 대선 후보로 확정되자 지지자들은 거리로 나와 환호했다.

클르츠다로울루 대표는 이날 수도 앙카라에 모인 군중 2000여명을 향해 “우리는 도덕과 정의의 통치를 확립할 것이다. 튀르키예를 평화와 행복으로 이끌겠다”고 선언했다. 이어 “협의와 합의를 통해 튀르키예를 운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클르츠다로울루 대표는 경제학자 및 관료 출신이다. 지난 13년 동안 튀르키예에서 두번째로 큰 정당이자 제1야당인 공화인민당을 이끌었다. 온화한 말투를 비롯해 안경을 쓴 모습이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를 닮아 ‘간디 케말’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스트롱맨’, ‘21세기 술탄’으로 불리는 에르도안 대통령에 비하면 개인적인 카리스마는 덜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알자지라통신은 “클르츠다로울루 대표는 출마한 거의 모든 선거에서 패배했다”며 지난 20년간 선거에서 12차례 이상 승리한 에르도안 대통령과 대조적이라고 짚었다.

그러나 클르츠다로울루 대표는 2017년 앙카라에서 이스탄불까지 ‘정의 행진’을 벌이며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 2016년 군부가 쿠데타를 시도했다가 실패한 이후 에르도안 대통령이 쿠데타의 배후를 색출하겠다면서 언론과 학계를 탄압한 것에 대한 대항이었다. 반부패 운동을 벌이며 “깨끗하고 정직한 인물”이란 이미지를 얻는 등 부패 혐의에서도 상대적으로 자유롭다는 강점을 갖는다.

튀르키예 야당은 에르도안 대통령의 인권 정책, 외교관계, 경제 실패 등을 되돌려 놓겠다고 공약했다. 대표적으로 에르도안 대통령이 2018년 강화했던 대통령제를 의회 체제로 바꾸겠다고 밝혔다. 또한 통화정책을 정상화하고 중앙은행에 자율적인 권한을 부여하겠다고 했다. 현재는 에르도안 대통령이 중앙은행 총재와 통화정책위원회 위원을 임명 및 해고할 권한을 갖는다.

케말 클르츠다로울루 공화인민당(CHP) 대표를 지지하는 시민들이 6일(현지시간) 앙카라에 모여 구호를 외치고 있다. EPA연합뉴스

클르츠다로울루 대표는 또한 정부 부패를 척결하고 에르도안 정권 시기 자산이 현저하게 증가한 이들을 추적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소액 투자자들을 위해 주식 시장에서의 ‘시장 조작’에도 눈감지 않겠다고 밝혔다.

튀르키예 야권이 이처럼 뜻을 모은 건 20년 만에 처음이라고 블룸버그통신은 전했다. 야권은 2019년 지방선거에서 이스탄불과 앙카라 시장직을 에르도안 대통령의 정의개발당(AKP)으로부터 빼앗아오면서부터 협력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에르도안 대통령이 여전히 여론조사에서 앞서는 등 연합의 성공 가능성에 회의론 또한 존재했다.

그러다 지난달 튀르키예 남부에서 발생한 강진과 여진으로 5만명에 가까운 인명피해가 발생하며 에르도안 대통령은 정치적 위기에 처했다. 지진 이후 부실 공사와 부패한 건축허가 관행이 속속 드러나며 토건 산업으로 지지를 얻어 온 에르도안 정권의 발목을 잡고 있다. 클르츠다로울루 대표는 내진 설계 건축 기준을 제대로 강제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진 피해가 컸다고 비판해왔다. 지난해 85%에 달한 물가 상승률 역시 에르도안 대통령에 악재로 작용한다. 야권으로선 놓칠 수 없는 중요한 기회가 찾아온 상황이다.

가디언은 “이번 선거가 튀르키예 민주주의를 보존하고, 독재로 나아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우려가 널리 퍼져 있다”고 전했다. 야권 정치컨설턴트 셀림 사자크는 “야권이 (클르츠다로울루 대표 추대에 대해) 일관된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지 못하거나 유권자들의 질문에 설득력 있게 답변하지 못한다면 에르도안 대통령이 반사이익을 누릴 것”이라고 가디언에 말했다.

워싱턴 소재 싱크탱크인 중동연구소의 고놀 톨 튀르키예 담당 국장은 “클르츠다로울루 대표는 부패하지 않았다. 그는 훔치지 않는다”며 “그는 튀르키예 민주주의를 되살린 사람으로서 자신의 정치 경력을 끝내고 싶어한다. 그래서 적임자인 것”이라고 로이터에 말했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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