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외교부장 “미국이 외교적 위기 조성, 브레이크 안 밝으면 재앙적 결과”…한반도 언급은 없어 이례적

친강 외교부장 취임 후 첫 내외신 기자회견
“대만 문제는 핵심이익 중 핵심이자 첫 번째 레드라인 ”

친강 중국 외교부장이 7일 베이징 미디어센터에서 내외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친강(秦剛) 중국 외교부장이 7일 베이징에서 처음으로 진행한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한반도 이야기가 전혀 거론되지 않았다. 북한 핵 문제나 한·중 관계에 관한 질문은 매년 외교부장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 단골 이슈였다.

대신 2시간 가까이 진행된 기자회견의 상당 부분을 미·중 관계에 대한 입장을 밝히면서 미국을 비난하는데 할애했다. 이를 두고 한·미, 한·미·일 공조를 강화하고 있는 한국 정부에 대한 중국의 인식이 반영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친 부장은 이날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연례회의의 일환으로 베이징 미디어센터에서 열린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최근 미국 영공에서 격추된 풍선 문제와 관련해 “미국이 국제법 정신과 국제관례를 위반하고 유죄추정과 과잉반응, 무력남용으로 외교적 위기를 조성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대중국 인식에서 심각한 오류를 드러내고 중국을 최대 지정학적 도전으로 여긴다”며 “첫 단추를 잘 못 끼움으로써 대중 정책이 이성적이고 건강한 궤도에서 완전히 벗어나도록 만들었다”고 비난했다.

이어 “미국은 중국과 경쟁하되 충돌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공언하지만 실제 미국이 말하는 경쟁은 ‘네가 죽어야 내가 사는’ 제로섬 게임”이라며 “미국은 말끝마다 규칙을 준수해야 한다고 하면서 올림픽 육상 경기에서 자신의 최고 성적을 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넘어뜨리려 하는 것과 같은 악의적인 대항과 반칙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이 중·미 관계에 있어 가드레일과 불충돌을 말하는 것은 실제로는 중국에 때려도 반격하지 말라는 것이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며 “미국이 브레이크를 밟지 않고 잘못된 길을 따라 폭주하면 아무리 많은 가드레일이 있어도 탈선과 전복을 막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미 간) 충돌과 대항으로 인한 재앙적 결과는 누가 책임질 것이냐”며 “이런 경쟁은 양국 인민의 근본 이익, 나아가 인류 미래 운명을 건 도박으로 중국 측은 단호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친 부장은 이날 대만 문제에 대해서도 미국을 겨냥했다. 그는 “대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중국인 스스로의 일이며 어떤 외국도 간섭할 권리가 없다”며 “최근 미국 고위 관리들이 대만 문제가 중국 내정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에 결연히 반대하고 고도의 경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친 부장은 우크라이나 문제를 놓고도 역시 미국에 날을 세웠다. 그는 “중국은 위기 제조자가 아니고 위기 당사자도 아니며 충돌하는 어느 쪽에도 무기를 제공하지 않았다”며 “무슨 근거로 중국에 책임을 떠넘기고 심지어 제재와 위협까지 하는지 우리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역설했다. 이어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갈등을 증폭시키고 우크라이나 위기를 모종의 지정학적 계략에 이용하는 것처럼 보인다”며 “갈등과 제재, 압박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현재 필요한 것은 냉정과 이성, 대화 그리고 평화협상의 조속한 시작”이라고 말했다.

친 부장은 중·러 관계에 대해서는 “어떤 국가는 냉전과 동맹의 필터로 중·러 관계를 보지만 그것을 자신의 그림자에 불과하다”며 “중·러 관계는 동맹을 맺지 않고 대항하지 않으며 제3자를 겨냥하지 않는 기초 위에 세워졌고 세계 어느 나라에도 위협이 되지 않으며 어떤 제3자의 방해도 받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날 회견에서는 중국의 ‘전랑(戰狼·늑대전사)외교’에 관한 질문도 나왔다. 친 부장은 중국의 전랑외교에 변화가 있느냐는 질문에 “전랑외교는 말의 함정”이라며 “중국 외교는 충분한 관대함과 선의로 이뤄지지만 승냥이가 길을 막고 굶주린 늑대가 습격해오면 중국 외교관은 반드시 늑대와 함께 춤을 추며 나라를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회견에서는 이 밖에도 중·유럽 관계와 중·일 관계, 중국의 대중동 정책 등에 관한 질문이 이어졌다. 그러나 매년 외교부장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 한반도 문제나 한·중 관계에 대한 외교부장의 발언은 나오지 않았다. 왕이 전 외교부장의 오후 일정 때문에 기자회견이 예상보다 일찍 끝난 2021년을 제외하고는 최근 수년간 외교부장 기자회견에서 한반도 문제가 빠진 적이 없었던 것을 고려하면 이례적이다.

반면 친 부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한국을 제외한 미국을 비롯해 러시아, 일본, 파키스탄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며 각국과의 관계에 대한 전망을 쏟아냈다.

베이징 | 이종섭 특파원 nomad@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