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골퍼를 겁쟁이로 만드는 파3홀 ··· TPC 소그래스 17번홀 ‘골프 호러쇼’ [오태식의 골프이야기]
하지만 티샷을 할 때마다 공이 수장되다 보니 노이로제가 걸려 그 홀에서만큼은 항상 헌 공을 쓸 수밖에 없었다. TPC 소그래스에서 라운드가 있던 어느 날이었다. 그 골퍼가 또 마의 17번홀을 맞닥뜨렸다. 하지만 그날은 느낌이 달랐다. 티잉그라운드에 오르고 잠시 하늘에 기도했다. 구름 사이에서 누군가 이런 소리를 하는 것 같았다. “잠깐 멈춰라. 헌 공 대신 새 공으로 티업해라.” 그 골퍼는 생각했다. ‘아 마침내 내 평생 소원이 이뤄지는구나.’ 헌 공을 새 공으로 바꾸고 샷을 하려 할 때 다시 하늘에서 우렁찬 소리가 들렸다. “잠깐 물러서서 다시 한번 더 연습 스윙을 해라.” 그는 그 말에 따라 충실하게 연습 스윙을 한 번 더 했다. 그리고 다시 셋업을 하고 샷을 하려는 순간, 갑자기 모기 소리 같은 작은 음성이 들려왔다. “아니다. 그냥, 헌 공을 쓰도록 해라.” 과연 그 골퍼는 공을 그린에 올렸을까? 아니면 또다시 물에 넣었을까?
제5의 메이저대회로 불리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이 열리는 미국 플로리다주 폰테베드라비치의 TPC 소그래스 17번홀이 워낙 악명을 떨치다 보니 나온 골프 유머다. 원조 골프황제 잭 니클라우스조차도 “많은 선수들이 그 밑에 폭탄을 설치하고 싶어할 것이다”라고 말했을 정도다.
2003년 이후 작성된 통계만 봐도 이 짧은 홀이 세계적인 톱골퍼들을 얼마나 괴롭혔는 지 알 수 있다. 이 홀에 수장된 골프공은 868개에 이른다. 전체 샷의 11%에 해당하는 숫자다. 2007년에는 무려 93개 골프공이 물에 빠졌는데, 1라운드에만 50개가 물로 사라졌다.
2005년 밥 트웨이(미국)는 무려 12타를 치고야 이 홀을 빠져 나올 수 있었다. 2021년 대회에서는 안병훈이 공을 4개나 잃어 버리면서 11타를 기록했다. 8타를 까먹는 ‘옥튜플 보기’였다.
TPC 소그래스는 2020년 세상을 떠난 ‘코스 설계의 거장’ 피트 다이가 만든 골프장이다. 다이는 코스를 설계할 때 골프의 여러 요소 중 특히 두 가지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페어(Fair·공정함)’와 ‘피어(Fear·두려움)’다. 코스가 선수들에게 공정함을 주기 위해서는 샷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도록 어려워야 하고, 또 선수들은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어야 진짜 훌륭해진다고 생각했다.
‘아일랜드 그린’을 처음 코스에 도입한 주인공도 바로 다이인데, TPC 소그래스 17번홀은 두려움과 공정함을 모두 잡은 대표적인 홀이라고 할 수 있다.
9일(현지시간)부터 열릴 올해 대회에는 세계랭킹 1~3위인 욘 람(스페인), 스코티 셰플러(미국),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가 모두 출전해 세계랭킹 1위 전쟁을 이어간다. 새롭게 ‘뜨는 별’ 김주형은 TPC 소그래스 데뷔전을 치른다. ‘물의 공포’가 톱골퍼들 심장을 스멀스멀 파고들 ‘17번홀의 호러쇼’가 이제 곧 펼쳐진다.
오태식기자(ots@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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