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전문성 독립성 강조하더니 검찰 출신엔 입 닫았다

박재령 기자 2023. 3. 7.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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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상근전문위원에 검사 출신 한석훈 변호사 선임
조선일보, 한국경제, 비판 대신 "운용본부 서울 이전" 반복
"국민연금 놓고 정치세력, 기재부, 재벌 느슨한 네트워크"

[미디어오늘 박재령 기자]

기금운용 관련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상근전문위원에 검사 출신이자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무효'를 주장했던 한석훈 변호사가 임명되면서 전문성·독립성 논란이 일고 있다. 일간지 대부분이 이번 인사를 비판했지만 그간 국민연금의 정치 독립성을 강하게 촉구했던 조선일보·한국경제 등은 침묵했다. 대신 대통령실과 호응해 현재 전주에 있는 기금운용본부를 서울로 이전해야 한다는 주장을 반복했다.

▲ 지난 2일 오후 서울 국민연금공단 종로중구지사 모습. 사진=연합뉴스

지난 5일 보건복지부는 국민연금 기금운용 전문위 상근전문위원에 한석훈 법무법인 우리 선임 변호사를 선임했다고 밝혔다. 한 변호사는 서울동부지검 부부장을 지낸 검사 출신으로 사용자, 근로자, 지역가입자가 각각 추천하는 상근전문위원 중 사용자 단체의 추천을 받았다. 부부장을 지낸 이후에는 법학전문대학원에서 상법 및 기업범죄를 가르쳐 자산운용보다는 자금 범죄 전문가라는 평가다.

국민연금 기금위에서 활동했던 관계자는 6일 통화에서 “상근전문위원을 하게 되면 의결권 행사할 때 주요사안을 판단하는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뿐 아니라 투자정책전문위원회, 위험관리성과보상전문위원회 활동도 한다”며 “순수하게 법률만 가지고 활동하신 분이라 투자·금융·재무 이쪽은 잘 모른다고 봐야 한다. 경제수리적 이해도를 가진 인사의 보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 7일 경향신문 10면 기사.

한 변호사가 정치적으로 편향됐다는 지적도 있다. 2018년 '박근혜 탄핵 무효'를 주장하는 논문을 썼고, 2021년 국민의힘 추천으로 공수처장 후보추천위원 등을 맡았다. 7일 경향신문은 2019년 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하도록 국민연금공단을 압박한 혐의로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에게 유죄 판결이 나온 것과 관련해 한 변호사가 “납득할 수 없다”는 취지의 논문을 게재했다고 보도했다. 기금운용을 놓고 국민연금의 자율성, 독립성을 한 변호사가 부정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논란의 인사에 보수언론 포함 대부분의 일간지가 비판 사설을 냈다. 중앙일보는 지난 6일 사설 <'정치 편향' 논란 연금 전문위원 부적절하다>에서 “국민연금 상근 전문위원은 높은 수준의 정치적 중립성이 요구되는 자리다. 국민연금 기금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890조원에 이른다. 특정 정치집단이 아니라 국민 모두의 노후 준비 자금이다. 그런데 한 위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옹호하면서 정치 편향성 논란을 자초했다”며 “한 위원의 경력을 보면 자본시장이나 금융 부문에서 충분한 전문성이 있는지 의구심을 갖게 한다”고 했다.

동아일보 역시 사설 <국민연금 상근 기금운용위원에 하필 또 검사 출신을>에서 “상법을 가르쳤다고는 하나 펴낸 책이나 논문을 보면 기업범죄가 전문이다. 자산 운용과 관련된 연구나 실무 경력은 거의 없다. 교수 근무 중 국민의힘이 단골로 추천하는 인물이 돼 국가인권위 비상임 위원, 세월호 특검후보추천위원,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원 등을 지냈다”며 “한 변호사가 기금 운용과 관련해 얼마나 전문성을 갖추고 있는지가 문제”라고 했다.

▲ 6일자 조선일보 사설.
▲ 2022년 글로벌 연기금 운용수익률 비교. 2일 국민연금 보도자료 갈무리

하지만 조선일보는 국민연금 관련 사설에서 한 변호사 임명을 둘러싼 우려를 지적하지 않았다. 조선일보는 6일 사설에서 인사 대신 기금운용본부의 위치를 지적했다. 조선일보는 “2017년 기금운용본부를 전주로 이전한 것부터가 황당한 정치적 이해관계로 이뤄졌다. 900조원의 돈을 굴리는 기금운용본부를 유치하면 지역에 뭔가 엄청난 혜택이 돌아갈 것처럼 정치인들이 부풀렸다”며 “기금 운용직은 국내외 금융시장 관계자들을 만나 깊이 있게 투자 동향도 파악하고 투자 기회도 모색해야 한다. 금융 중심지인 서울과 멀리 떨어져서는 인재 영입도, 정보 수집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통화에서 “몇몇 언론이 기금운용본부의 서울 이전에 왜 그렇게 목을 매는지 모르겠다”며 “주장의 주요 근거는 수익률인데 최근의 수익률 발표 수치도 다른 나라의 공적연금과 비교해봤을 때 중간 정도였다. 기금운용본부가 먼 곳에 있어서 이해관계자들이 마음 놓고 조율하기가 어려운 것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 6일자 한국경제 3면 기사.

한국경제도 마찬가지다. 한국경제는 1면에 국민연금 관련 기사 <국민연금 기금운용 싹 뜯어고친다>를 냈지만 연금의 수익률 제고 대책을 밝힌 대통령실의 입장을 단순 전달하는데 그쳤다. 이어 3면 기사 <캐나다연금 CIO 연봉 39억 vs 국민연금 CIO 3억대>에서 국민연금 CIO(최고 투자책임자)의 연봉이 적다고 지적했고, <국민연금 운용역 '6년간 164명' 줄퇴사… “기금본부 서울로 옮겨야”>기사에선 기금운용본부의 위치를 서울로 이전해야 한다는 주장을 반복했다.

[관련 기사 : '국민연금 10년 수익률 꼴찌' 한국경제 보도 "나쁜 통계 억지로 만들어"]

그간 한국경제와 조선일보는 국민연금 수익률이 저조하다며 국민연금의 전문성·독립성을 비판하는데 앞장 섰다. 하지만 막상 윤 정부 인사가 논란이 되자 침묵하는 모습이다. 한국경제는 지난달 4일 기사에서 기금위를 '아마추어'로 지칭하며 “전문성보다 정치에 휘둘리는 기금운용 의사결정 시스템이 문제로 지목된다”고 했고, 조선일보 또한 지난달 4일 칼럼 <지배 구조 걱정, 국민연금부터 하라>에서 “지금 한국의 국민연금은 진짜 주인인 국민을 대표하지 않는 인사들이 연금의 소유자도 아닌 정부 뜻에 따라 중요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이런 상태를 흔히 '나쁜 지배 구조'라고 한다”고 비판했다.

기금위 업무를 봤던 관계자는 “기금운용은 말 그대로 독립적이고 순수하게 비정치적인 입장에서 운영을 해야 한다. 친정부적, 여권지향적 인사가 오면 기금운용을 현 정부 지지율과 연결지으려고 하는 우려도 할 수 있지 않겠나”라며 “경제지가 그토록 필요하다고 강조했던 금융투자전문가 인사와는 완전 배치되는 인사”라고 말했다.

[관련 기사 : 쏟아지는 '연금 공포 마케팅' 보도에 "재벌보험사 관계 의심"]

국민연금은 여러 기업들의 이해관계가 달린 문제다. 종합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선 보도 의도를 생각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세은 충남대 교수는 “국민연금은 수많은 기업들의 주식을 가지고 있어 주주총회 등에서 국민연금이 발언하는 것 자체가 기업들에게 위협이 된다. 또 국민연금이 주주로 들어와 있어 (국민연금에) 보고해야 하니까 대주주 마음대로 할 수가 없어 불편하다. 국민연금을 둘러싸고 정치세력, 기획재정부, 재벌, 여러 기업 등이 느슨한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라며 “경제신문이 (국민연금을) 때리면 발맞춰 대통령실이 호응하는 모양새가 있었다. 정말로 국민연금을 걱정해서 이런 보도를 쏟아내는 것인지 따져봐야 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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