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곡법 바로보기]② ‘호남’과 ‘농심’… 민주당이 양곡법에 꽂힌 이유
입지 흔들리는 이재명, 강대강 대치 정국 유도할 듯
文 정부 ‘수급 조절 실패’ 가리기라는 분석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제1호 법안’으로 꼽을 정도로 강한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호남 표심을 의식한 전략적 행보라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 최대 쌀 산지인 전남·전북 지역의 농심을 다지고, 총선 이후 차기 대선까지 호남 지역에서의 지지 세력을 공고히 하기 위한 전략적 수단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대선 때부터 이재명 대표의 지지세력으로 활동해 온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의 입김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7일 국회와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민주당은 3월 국회 본회의에서 양곡관리법 개정안 표결을 강행할 방침이다. 김진표 국회의장이 여야 합의를 강조하며 제동을 걸어 2월 국회는 넘겼지만, 3월 국회까지 넘기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특히 지난달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진행된 체포동의안 표결에서 다수의 이탈표가 발생해 당내 입지가 흔들리는 이 대표로선 양곡관리법을 당내 리더십 회복 수단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 본회의 표결로 양곡관리법 개정안 처리를 강행하고,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유도함으로써 여야 강대강 대치 정국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 호남 노린 양곡관리법…文정부 ‘수급 조절 실패’도 가리기
정부와 상당수 전문가는 양곡법 개정안에 대해 시장주의에 어긋나고 쌀값 회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민주당이 추진하는 양곡법 개정안은 쌀 초과 생산량이 3% 이상이거나 가격이 5% 이상 떨어질 경우 정부가 과잉 생산된 쌀을 의무적으로 매입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치권 안팎에선 해당 개정안에 대해 벼논 재배가 많은 호남 지역 지원법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경지면적조사 결과’에 따르면 논 면적은 전남(16만6000ha), 충남(14만2000ha), 전북(12만4000ha) 순으로 넓다. 비율로 따지면 전남과 전북의 논지가 전체의 40% 수준이다. 반면 밭 면적은 경북(14만4000ha)이 제일 넓고, 전남(11만1000ha), 충남(7만4000ha) 순이다.
지난 문재인 정부 임기 동안 국내에서 쌀이 과잉생산되며 쌀값이 폭락했다. 호남지역 농가에선 문재인 정부의 농업정책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쌀 격리에도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며 격리 적기를 놓쳐 쌀값 안정에 실패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농식품부 고위관계자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는 2020년 흉작으로 시장에 쌀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되자 다음해 필요한 양보다 세 배나 많은 양을 시중에 공급했다.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감염증 사태로 민생이 어려운 상황에서 쌀값이 급등해 민심이 요동칠 것을 대비한 대응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는 결과적으로는 과잉 대응이라는 평가로 돌아왔다.
2021년 가을엔 쌀농사가 대풍작을 거뒀다. 연초에 시장에 푼 쌀이 대량으로 남아있는 상황에서 과잉 공급까지 겹치며 쌀값은 큰폭으로 떨어졌다. 수급조절에 실패한 정부는 이번엔 격리에 소극적으로 대응했다. 시장 가격에 영향이 거의 없었고, 농가들의 불만은 커져만 갔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3년에 걸친 문재인 정부의 수급 조절 실패로 민주당에 대한 농민들의 신뢰는 떨어졌다. 여기에 국민의힘은 대선 기간 ‘서진전략’을 구사하며, 호남 표심을 자극하며 민주당 내 위기감이 커지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재명 대표가 취임 직후 전북 김제 등 농가를 찾아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1호 법안으로 처리하겠다고 밝힌 것은 수급조절 실패라는 ‘주홍글씨’를 지우고, 농심 이반을 회복하기 위한 조치라는 분석이다.
◇ 농민단체 입장 엇갈리는데… ‘전농’ 편드는 민주당
현재 농민단체들은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엇갈린 입장을 취하고 있다. 6개 단체로 구성된 한국종합농업단체협의회(한종협)는 “쌀 시장격리를 의무화하면 타작물 전환 유도가 쉽지 않다”면서 “쌀 가격 하락에 따른 농가경영 문제를 초래할 수 있는 만큼 법률 개정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밝혔다.
축산·가금단체들은 양곡관리법 개정안 통과가 축산·가금 관련 지원 사업에 대한 예산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며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반면 진보적 농민단체인 전농을 비롯해 전국쌀생산자협회 등은 ‘쌀 최저가격제’가 필요하다며 의무매입제 도입을 촉구하고 있다.
농민단체들의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는 상황에도 민주당이 유독 전농 측의 입장에 손을 들어주는 것에 대해선 이 대표와의 각별한 관계가 작용했을 것이라는 게 한 정치권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양곡관리법 개정안과 관련해 가장 큰 목소리를 내는 단체인 ‘전농’의 주요 인사들은 지난 대선 때 이 대표에 대한 공개 지지를 선언한 특수 관계”라며 “정치적 이해 관계를 같이 하는 단체에 대한 선심성 지원 성격이 강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전농은 윤 대통령의 사퇴를 요구하는 등 ‘정부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특히 전농의 주요 인사들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아 구속된 것과 관련, ‘공안탄압’이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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