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지배구조 개선한다던 국민연금, 주가 떨어뜨리고 단타로 이익까지 챙겼다
당일 사고팔며 차익 챙기기도
주가 하락에 소액주주만 피해
KT의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이 KT 지배구조 개입으로 주가 변동성을 스스로 키운 상황에서 보유지분을 대거 매도하는 비상식적 거래를 일삼은 것으로 나타났다. 큰손 국민연금의 이해할 수 없는 매매 패턴 때문에 소액주주들이 큰 피해를 입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11월 초부터 지난달까지 4개월 연속 KT 주식을 매도했다. 전반적으로 매도를 지속하는 상황에서 지난해 12월 이해할 수 없는 매매 패턴을 보였다. 높은 가격에 주식을 매수해 당일 매수가격보다 낮은 가격에 매도하는 행위를 반복했다. 대표적 배당주인 KT를 연말 배당 확정을 앞두고 손해를 보며 계속 팔았던 것이다. 국민연금은 지난해에만 79조6000억원의 손실을 보며 사상 최악의 해를 기록했는데 손실을 줄이기는커녕 손실을 불리기는 투자를 했던 셈이다.
또 국민연금이 구현모 현 대표의 연임을 반대해 지배구조 리스크가 불거지며 주가가 급락했던 지난해 12월 28일에는 시장에서 3만3000원대에 KT주식을 매수해 3만4000원대에 매도하는 등 일종의 단타 차익 거래도 했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국민연금의 KT 주식 매매 행위에 대해 전문가들도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라는 의견이 많다.
국민연금의 KT 지배구조 개입과 함께 이뤄진 지분 대량 매도로 KT 주가는 급락했고, 이런 거대 자본의 무책임한 행동으로 소액주주인 개인투자자들은 손실을 피할 수 없게 됐다.
7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지난 2월 27일 기준 KT 주식 2226만2450주(8.53%)를 보유하고 있다. 4개월 전인 지난해 10월 말보다 보유 지분이 584만8081주(2.24%) 줄었다. 국민연금이 KT지분을 매도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11월부터다. 10월 6만9286주를 순매수했던 국민연금은 11월 들어 107만2546주를 매도했고 12월에도 매도를 이어가며 지분율을 10% 밑으로 낮췄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국민연금의 KT지분율은 9.99%(2609만6776주)였다.
금융투자업계에서 국민연금의 KT 주식 매도를 부적절하게 보는 이유는 최대 주주인 국민연금 스스로 주가를 급격하게 떨어뜨린 후 손실을 보면서 주식을 매도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이 현 구현모 대표이사 연임을 공개적으로 반대해 주가 변동성이 커진 지난해 12월 28일 당일에는 매수가격보다 높은 가격에 매도해 단기 차익을 얻기도 했다.
국민연금의 KT 주식 매도 패턴을 구체적으로 보면 12월 한 달(총 21거래일) 중 20거래일 동안 KT 주식을 사고팔았다. 이 중 12월 19일을 제외하고는 장중 매수와 매도를 같은 날 진행했다. 장중 매수가격이 매도가격보다 높았던 날은 14거래일이었다. 주식을 손해를 보고 판 것이다. 12월 19일에는 매도만 했다.
운용업계의 한 펀드매니저는 “배당주인 KT를 연말 배당 확정을 앞두고 손실을 보면서까지 매도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라면서 “운용하는 매니저 개인의 판단이었겠지만 쉽게 이해되지 않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12월 28일의 KT 지분 매도도 논란거리다. 이날은 배당락일(배당받을 권리가 사라진 날)이어서 KT 주가가 하락했고 여기에 더해 전날 서원주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CIO)이 구현모 현 KT 대표이사 연임을 공개적으로 반대하면서 주가 낙폭이 더 컸던 날이다. 구 대표는 KT를 디지털 플랫폼 기업으로 만들자는 전략을 강조하며 기업가치를 끌어올렸고 실적 개선도 이끌었던 CEO인데 국민연금의 반대로 차기 대표이사 선임 리스크가 불거졌기 때문이다. 이날 KT 주가는 전날보다 6.75% 급락했다.
그런데 이날 국민연금은 KT 지분을 3만3979원에 3만9128주를 매수한 후 3만4043원에 35만5319주를 매도했다. 매수가와 매도가 차이가 크지는 않았지만 주가 변동성이 커진 틈을 타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전략을 취한 셈이다.
일각에서는 국민연금이 행동주의 펀드보다도 못한 투자를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지배구조를 개선해 기업가치를 높이겠다는 주장을 펴는 행동주의 펀드는 지분을 유지하거나 오히려 지분을 추가로 매수한 후 본인들의 주장대로 기업가치를 높이는 전략을 사용한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구현모 대표가 문제가 많다며 대표이사 교체로 지배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한 후 오히려 주식을 팔았다. 기업가치 개선을 주장한 최대 주주가 본인들의 주장과는 모순된 행동을 한 것이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국민연금이 KT 지배구조를 문제 삼아 구현모 대표 연임을 반대했을 때는 주가가 이렇게 하락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라면서 “KT 지분을 판 시점도 엄밀하게 따져봐야지만 이런 논란이 되는 시기에 주식을 판 건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이라고 했다.
김범준 가톨릭대 회계학과 교수도 “국민연금이 대표이사를 교체해 KT 지배구조를 개선하겠다는 주장의 전제는 기업가치 개선으로 주가를 올릴 수 있다는 것인데 오히려 이런 주장을 하면서 지분을 정리했다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이 대표이사를 교체해 KT 지배구조를 개선하겠다는 주장의 전제는 기업가치 개선으로 주가를 올릴 수 있다는 것인데 오히려 이런 주장을 하면서 지분을 정리했다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
김범준 가톨릭대 회계학과 교수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의 KT 지분 대량 매도는 개인투자자들에게도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다. 국민연금은 갑자기 지배구조 개선을 언급하며 CEO 리스크를 부각시켜 주가를 떨어뜨린데 이어 보유 지분마저 대량 매도했고 이 과정에서 소액주주인 개인투자자들은 손실을 피할 수 없었다. 기업 실적과는 무관하게 대형 자본의 독단적 행위로 벌어진 일이다.
KT 주가는 3만원 선 안팎까지 하락했다. 지난달 28일 장중 2만9800원까지 하락하며 52주 신저가를 경신했고 지난 6일에는 3만5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서원주 국민연금 CIO가 KT 대표이사 교체를 언급하기 전인 지난해 12월 27일 종가는 3만6300원이었는데 두 달여 만에 15.9%(5800원) 하락했다. KT 주식 200주를 보유하고 있는 회사원 정성욱(43)씨는 “국민연금이 왜 논란이 되는 행동으로 멀쩡한 기업의 주가를 떨어뜨리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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