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1년, 시스템을 무너뜨렸다
검찰개혁 후퇴·외교관행 파괴·관료사회 냉각으로
“상대방 인정하고, 자신에게도 법과 원칙 적용해야”
1년 전 대한민국 시민은 윤석열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를 제20대 대통령으로 뽑았다. 정치 경험이 없고 평생 검사로 일한 윤 후보를 대통령으로 뽑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그가 검사 시절 보여준 법과 원칙, 공정과 상식,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 태도, 권력자에게 굴종하지 않는 기개가 아니었을까?
이제 1년이 지났다. 전문가, 정치인, 전 정부 고위 공직자들에게 윤석열 정부에 대해 물었다. 대체로 윤 대통령이 기존 시스템이나 관행을 무너뜨린 사례를 많이 언급했다. 물론 기존 시스템과 관행을 무너뜨리고 더 나은 것을 세웠다면 좋은 일이다. 그러나 현재까지의 평가는 ‘검찰공화국’ ‘검사 독재’ 같은 단어가 상징하는 부정적인 쪽이 많다. 지난 1년, 윤 대통령의 활동을 돌아보고 평가를 정리해봤다.
1. 붕괴의 서막: 대통령실 용산 이전
전문가들은 윤석열 정부의 스타일을 알린 상징적 사건으로 ‘대통령실 용산 이전’을 꼽았다. 이 일은 대통령선거가 끝난 지 엿새 만인 2022년 3월15일 전격적으로 결정됐다. 시민들은 충격을 받았다. 첫째, 이전 대상지가 애초 공약한 정부서울청사가 아니라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로 갑자기 변경됐기 때문이다. 둘째, 윤 당선자가 이전 시기를 두 달 뒤 취임일인 2022년 5월10일로 못박았기 때문이다.
두 달 만에 대통령실을 옮기는 일은 대부분 사람이 무리라고 봤다. 심지어 윤 당선자 주변의 장제원·김한길·김병준·박주선·임태희 같은 이들까지 시간을 갖고 준비하자고 조언했다. 그러나 윤 당선자는 숱한 우려에도 굽힘 없이 두 달 만의 대통령실 용산 이전을 밀어붙였다.
김종대 전 정의당 의원은 “폭정의 시작이었다. 국가의 중대사를 단 한 차례 토론도 없이 대통령 말 한마디로 결정하고 집행했다. 민주주의 사회에선 중대사를 공론화로 결정해야 한다. 그런 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행동이었다”고 말했다.
그 뒤 벌어진 상황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윤 당선자 쪽은 3월15일 국방부를 방문해 4월 초까지 사무실을 통째로 비우라고 요구했다. 국방부가 바로 옆 합동참모본부 건물로 이전함에 따라 모두 16개 국방부 관련 기관이 연쇄적으로 이동해야 했다. 청와대 안 경호처와 청와대 주변 경비부대들도 5월10일까지 용산으로 모두 이동해야 했다.
빈 청와대의 활용 방안 역시 충격적이었다. 1948년부터 74년 동안 대통령의 집무실 겸 관저로 1급 보안시설이었던 청와대를 5월10일 대통령 취임 당일부터 시민 관람을 위해 개방했다. 활용 방안도 쏟아졌다. 그러나 12월5일 행사장이 마땅치 않았던 대통령실이 영빈관을 다시 쓰겠다고 발표하면서 청와대 활용 계획은 사실상 무기한 보류됐다.
문재인 정부 때 탁현민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은 “윤 대통령이 다시 영빈관과 상춘재를 쓰는 것은 서울에서 청와대보다 더 나은 대통령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다음 정부에선 청와대 일부 시설을 새로 짓거나 고쳐서 돌아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게 아니라면 세종시로 가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2. 용산 이전의 후폭풍: 침수, 참사…
대통령실 이전은 엄청난 후폭풍을 불러왔다. 첫째는 8월8일 수도권의 폭우에 대한 대응이었다. 이날 낮 12시50분부터 서울에 호우경보가 내려졌다. 그러나 대통령은 이날 저녁 ‘평상시처럼’ 서울 서초동 사저로 퇴근했다. 이날 밤 9시 전후로 폭우로 침수 피해가 속출할 때도 윤 대통령은 사저에 계속 머물렀고 아무런 지시도 없었다. 용산 대통령실의 국가위기관리센터(벙커)나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중앙재난안전상황실로도 가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폭우가 지나간 8월9일 오전에야 광화문 중앙재난안전상황실에 나타났다.
한병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윤 대통령이 청와대에 있었다면 청와대 안의 국가위기관리센터로 바로 가서 관계 기관과 협의하고 대책을 지시할 수 있었다. 청와대의 위기관리 시스템은 오랫동안 축적된 것이다. 그런 대응을 가장 잘할 수 있는 곳이 청와대”라고 말했다.
폭우는 전조에 불과했다. 10월29일 이태원 핼러윈 축제에 모였던 젊은이 158명이 한 골목에서 압사하는 대참사가 일어났다. 이미 전날인 10월28일에도 핼러윈 축제 참가자가 많았기 때문에 이를 통제할 경찰력 투입이 필수적인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날 경찰은 이태원 축제 참가자를 통제하기 위한 경찰력을 투입하지 않았다. 이날 오후 용산 대통령실 쪽에서 4개의 대형 집회가 있었고, 경찰은 밤 9시까지 이 집회에 집중했다. 이날 도심과 용산 집회엔 70개 기동대가 투입됐으나, 이태원엔 1개 기동대도 투입되지 않았다. 이태원에 투입된 137명의 경찰력도 주로 교통정리와 마약 단속을 위한 인원이었다.
경찰의 한 간부는 “용산경찰서는 대통령실 경호, 경비나 대규모 집회, 시위 대응을 해보지 않은 곳이다. 종로서가 70년 넘게 해왔는데, 그런 역량과 경험은 쉽게 갖출 수 없다. 준비 없이 대통령실을 옮겨서 용산서가 제대로 대응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런 사고가 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실 이전의 악영향은 12월26일 북한의 무인기 침투 때도 그대로 나타났다. 이날 5대의 무인기가 군사분계선을 넘어 서울과 수도권 상공에 나타났는데, 군은 한 대도 격추하지 못했다. 12월29일 김병주 민주당 의원은 “청와대 주변의 인왕산, 북악산 일대엔 무인기 레이더와 무인기 전파 차단기를 집중 배치했다. 그러나 (용산 대통령실은) 통합방어시스템, 통합훈련이 미진했다. 무인기가 용산 대통령실 상공의 비행금지구역을 통과했을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군과 대통령실은 처음엔 북한 무인기가 대통령실 비행금지구역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부인했으나, 며칠 뒤 비행금지구역을 통과했음을 시인했다.
3. 검찰개혁 후퇴, 경찰은 장악 시도
문재인 정부와 윤석열 검찰의 충돌엔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검찰개혁으로 검사 수사권이 대폭 축소된 것에 대한 반감이 깔려 있었다. 2020년 1차 검찰개혁으로 검사 수사권은 모든 범죄에서 6개 범죄로, 2022년 2차 검찰개혁으로 2개 범죄로 대폭 축소됐다. 애초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2023년까지 검사의 모든 수사권을 폐지할 계획이었다.
오히려 윤석열 정부는 국회가 2개 범죄로 축소해놓은 검사 수사권을 다시 확대했다. 2022년 8월 법무부는 개정된 검찰청법의 시행령을 마련하면서, 법률에서 폐지된 공직자, 선거 범죄 중 일부, 마약, 조직, 무고, 위증 등 범죄를 계속 검사가 수사할 수 있도록 했다. 심지어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검찰개혁 관련 법률이 위헌이라며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도 청구했다.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입법부가 법을 만들면 행정부는 그 법에 따라 집행하도록 한 것이 민주주의 권력 분립의 핵심이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상위법에서 허용하지 않은 내용을 무리하게 시행령에 포함했다. 마치 법 위에 서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는 검사 수사권을 상당 부분 넘겨받은 경찰도 장악하려 했다. 윤 대통령의 고교, 대학 후배인 이상민 전 판사를 행정안전부 장관에 임명해 2022년 8월 많은 반대 속에서 행안부에 경찰국을 설치했다.
또 2023년 2월2일엔 행안부 경찰국 설치를 반대하는 회의를 연 총경 50여 명의 보직을 사실상 강등했다. 이어 2월24일엔 윤석열 대통령의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인권감독관(현재 인권보호관)을 지낸 정순신 전 검사를 경찰 수사의 최고 책임자인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했다. 그러나 정 전 검사는 2017년 인권감독관 시절 아들이 저지른 학교폭력을 인정하지 않고 학교를 상대로 소송을 벌인 일이 드러나 하루 만에 사퇴했다.
민관기 전국경찰직장협의회 위원장은 “현재 법률은 경찰에 독립적인 수사권을 주고 소신껏 일하도록 했다. 그런데 윤 정부는 법률이 정한 시스템을 어그러뜨리고 있다. 지금 경찰관들은 법대로 일하지 못하고 윗사람 눈치만 보고 있다”고 말했다.
4. 외교 관행도 인정 않는 대통령
문제는 외교안보 분야에서도 일어났다. 윤석열 대통령은 2022년 9월21일(현지시각) 미국 방문 중 한 행사장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잠시 만난 뒤 행사장을 나가면서 “국회에서 이 새끼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또는 ‘승인 안 해주고 날리면’) 쪽팔려서 어떡하나”라고 말했다.
이 내용이 언론에 보도돼 파문이 일어났으나, 대통령실은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윤 대통령은 9월26일 귀국 뒤 첫 출근길 문답에서 “사실과 다른 보도로 동맹을 훼손하는 것은 국민을 굉장히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라고 반박했다. 그 뒤 국민의힘은 ‘바이든’이라고 자막을 달아 보도한 엠비시(MBC)를 고발했고, 대통령실은 엠비시 기자의 대통령 전용기 탑승을 거부했다.
김준형 전 국립외교원장(한동대 교수)은 “외교 현장에선 신중하고 모호하게 해야 하는 일이 많다. 그래서 외교적 발언이나 의전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그런 관행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2023년 1월2일 윤 대통령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제는 실효적 확장 억제를 위해 미국과 핵에 대한 ‘공동기획, 공동연습’ 개념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같은 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한국과 핵 연습 논의를 하고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아니다”라고 잘랐다.
문재인 정부의 최종건 전 외교부 1차관은 “문재인 정부도 확장 억제를 기본으로 했다. 그러나 함부로 ‘확장 억제’ 같은 용어를 쓰지 않았다. 안보 상황을 고려해 말을 조심스럽게 했다. 지금 정부는 북한에 큰소리치는데, 안보 상황은 훨씬 더 불안하다”고 말했다.
중국과의 성급한 ‘거리두기’ 정책에도 우려가 크다.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은 “현재 세계는 미-중 대립으로 인한 신냉전 전환기에 들어가고 있다. 그러나 전환에는 시간이 걸리므로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 특히 중국과는 경제적으로 중요한 관계에 있는데, 너무 성급하게 전환하고 있다. 실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5. 얼어붙은 관료들은 살 궁리만
윤석열 정부는 한편으로 ‘관료 정부’다. 검사 자체가 행정 관료이고, 고위직 인사에서도 과거 정부보다 더 많은 관료 출신을 쓰고 있다. 그럼에도 관료 사회는 얼어붙었다. 공무원들이 전 정부 일로 잇따라 처벌되고 있기 때문이다. 탈원전 정책을 추진한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 3명, 티브이(TV)조선 재승인에 관여한 방송통신위원회 공무원 2명과 외부 심사위원장 1명이 구속 기소됐다. 문재인 정부에서 대북 정책에 관여한 장관급 인사 6명도 역시 기소됐다.
정부의 한 고위 관료는 “정권이 바뀌자 공무원들이 희생양이 됐다. 지난 정부에서 선출직, 임명직을 보좌해서 한 일을 처벌하면 이번 정부에선 일을 소극적으로 할 수밖에 없다. 선출직, 임명직들이 좀더 크게 보고 일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 전직 고위 관료도 “최근 후배들이 물어보면 ‘지금 분위기에 휩쓸리지 말고 살 궁리를 하고 일하라’고 조언한다. 나중에 숙청당할 수 있다면 누가 열심히 일하겠는가”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에게 4년의 임기를 남겨둔 윤 정부에 대한 조언을 들어봤다. 우석훈 성결대 교수(경제학)는 “상황에 즉자적으로 대응해선 안 되고 중장기 계획을 세우고 미래를 예측해야 한다. 상황을 계속 점검하고 정보를 축적하면 리스크를 발견할 수 있고 대책을 세울 수 있다”고 말했다. 오재록 전주대 교수(행정학)는 “윤 대통령이 자신에게 법과 원칙을 적용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자신의 부인과 장모 사건에 대해 특검을 도입하는 용기를 내야 한다. 임기 중에 아들들에 대한 수사를 받아들인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처럼 비상한 결단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정치 경험이 없는 윤 정부가 사심 없이 정치를 개혁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검찰의 나쁜 지시, 복종 문화만 강요하고 있다. 고집과 신념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상대방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개혁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정치학)는 “대통령이 자신이 정치인이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그리고 야당과 대화하고 타협하려 해야 한다. 여야 간 협력 정치를 살려야 사회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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