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사향노루 멸종 위기인데…‘돈 되는 물건’으로만 보는 사람들

한겨레 2023. 3. 7.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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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연합 야생동물기록단(2)-사향노루
사향노루가 배설하는 모습. 국내에서 사향노루의 생활상은 알려진 것이 별로 없다. 연구도 많이 되어 있지 않다. 야생동물 학자들이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전에 밀렵으로 거의 사라졌다. 반달가슴곰과 함께 가장 희귀한 멸종위기 야생동물로 꼽힌다. 녹색연합 무인카메라
*편집자주: 3월 3일은 세계야생동물의 날이다. 기후위기 시대 인간과 동물의 공존은 지구의 모든 생명에게 절박한 현실이다. 녹색연합과 한겨레교육문화센터가 세계야생동물의 날을 맞아 한국의 멸종위기 야생동물을 기획 취재한 결과를 5회에 걸쳐 연재한다.

얼마 남지 않았다. 50마리도 채 되지 않는다.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 천연기념물 제216호 사향노루가 처한 상황이다. 한반도 생태계 종축인 백두대간과 횡축인 DMZ 일원에서 극히 일부 서식하고 있다. 사향노루는 향수의 원료나 한약재로 사용되며 지속적인 밀렵의 희생양이 됐다. 경계심이 강하고 겁이 많아 통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사향노루는 지난 2020년, 녹색연합의 무인 카메라에 반가운 모습을 남겼다.

사향노루는 아시아 동부에만 분포하며, 높은 산 바위 지대와 침엽수림이 섞인 곳에 주로 거주한다. 발달한 발굽과 뒷다리로 몸무게를 분산하고, 하이힐 모양의 며느리발톱으로 눈이 많이 쌓인 데서도 깊이 빠지지 않고 잘 견디는 특징이 있다.

2월 중순, 강원도 허리의 사향노루 서식지를 모니터링했다. 그들의 흔적을 찾고 아직 생존해 있는지, 그렇다면 몇 마리 정도인지 추정했다. 인간들이 사향노루에게 나름의 안부를 묻는 방식이다. 현장에는 녹색연합 야생동물기록단과 사향노루 전문가인 네이처원 황기영 소장이 동행했다.

강원도 접경지역에서 발견된 사향노루의 모습이다. 얼굴 모습이 한눈에 사향노루라는 것을 보여준다. 녹색연합 무인카메라

강원도의 인적 드문 산길. 중심지와는 차로 한 시간 이상 떨어진 곳에서 산을 계속 오르고 또 올랐다. 높이 오르면 오를수록 인간의 흔적은 사라지고 큰 나무와 돌을 겨우 붙잡아야 오를 수 있는 산길뿐이었다. 이렇게 사람의 흔적이 거의 없는 숲속까지 파고들어야 비로소 사향노루의 서식지 초입으로 진입하게 된다.

황기영 소장은 굽이진 산길을 오르며 몇 년 전 이곳을 찾았을 때만 해도 ‘길’이라고 볼 수 있는 곳이 없었는데, 어느새 알음알음 입소문이 나면서 인간이 오갈 수 있는 등산로가 생겼다고 한탄했다. 한참을 올랐을까. 황 소장의 등산 스틱이 분주하게 낙엽을 흩뜨렸다. 쌀알보다 조금 큰 정도의 작은 분변. 사향노루가 아직 어딘가에 잘 살고 있다는 분명한 증거였다.

“물기가 없고 단단하게 얼은 걸로 봐서는, 지난 가을 정도의 분변 같네요.”

황 소장은 가끔 수컷의 분변에서는 사향노루의 독특한 페로몬 향이 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원래는 더 낮은 지대에서도 자주 발견되었는데, 이제는 더 적은 분변이 더 높은 곳에서 발견되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환경적으로 바뀐 것은 단 하나. 민간인 출입이 자유로워진 것이다.

생태계 보전이 최우선

종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개체 수 이하로 서식하고 있는 사향노루. 이들의 개체 수를 증식하는 연구는 진행되고 있지 않은 걸까. 사향노루 연구의 가장 큰 어려움은 ‘개체 수’에 있다. 연구 대상 종 자체가 매우 적게 생존해 있어 정확한 서식 현황 파악조차 힘든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체 증식 연구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은 ‘생태계 보전’이다. 사향노루가 자연 생태계 그 자체에서 자생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서식지를 보호하는 게 최우선이라는 뜻이다. 멸종 위기종을 보호하는 것은 단순히 하나의 종을 보호하고 복원하는 일이 아니다. 그 종이 ‘자연의 일부’로써 기능하도록 보전하고, 생태계가 명맥을 이어갈 수 있게 돕는 일에 가깝다. 사향노루는 초식동물로, 생태계에서는 식물을 먹는 1차 소비자 역할을 한다. 유사한 생태적 지위를 가지는 고라니나 노루, 산양 등의 종도 있지만 각 환경에서 고유한 역할이 있기에 다른 종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다.

가녀린 사향노루의 이동하는 모습. 성체의 몸 길이가 1m도 되지 않는다. 산 정상 능선보다는 산지 사면에서 주로 활동한다. 다른 야생동물보다 관찰이 어려운 이유다. 양구사향노루센터

사향노루에 대한 연구와 지원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이들에 대한 인식 개선이 급선무다. 돈이 되는 ‘물건’이 아니라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는 생명체라는 점을 먼저 떠올려야 한다. 사향노루는 멸종위기종이지만 아직 국내에 적은 개체가 남아있다. 지금이, 이 땅에서 사향노루가 완전히 사라지기 전 보호할 수 있는 마지막 시기라는 의미다.

‘진짜 사향’으로 만든 향수·공진단 여전히 찾는 사람들

오래전부터 사향은 주요 밀거래 대상이었다. 현재는 밀렵이 힘들 만큼 아주 적은 수가 남아있지만, 여전히 암암리에 밀렵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 사향노루는 동식물종 국제 거래에 관한 협약(CITES)으로 보호받고 있지만, 가공된 사향노루 제품을 수입해 들여오는 것은 가능하다. CITES 부속서 I로 분류된 멸종위기종은 상업 목적 거래가 금지되고 오로지 학술, 연구 목적으로만 거래가 가능하지만 러시아산 사향노루는 CITES 부속서 II, 즉 '예비' 멸종 위기종으로 분류되어 엄격한 규제 하에 거래할 수 있다. 국내에서는 여전히 사향노루의 향낭으로 만든 머스크 향수와 공진단의 수요가 엄청나다.

사향노루 향수

사향노루

부산역에서 향에 반해 외국인에게 향수를 물어봤는데, ‘오리지날 머스크’라고 쓰인 인도 향수였다는 일화에서 비롯한 일명 ‘부산역 향수’는 향수 마니아 사이에서 인기였다. 현재 향수 브랜드 대부분은 머스크 향을 인공 합성향료로 대체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과 인도는 아직 실제 사향노루로 머스크 향수를 만들고 있다는 건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이다. 또, 브랜드 공식 홈페이지에 쓰인 ‘100% 오리지날 천연 향료’라는 문구 덕분에 입소문은 더 빠르게 퍼졌다.
실제로 직구 후기와 구매 가능 사이트를 공유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이들은 ‘진짜 사향으로 만들었을지도 모르는’ 향수를 샀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

야생동물기록단 강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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