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이 오스카상을 주목하는 이유[가깝고도 먼 아세안](7)

2023. 3. 7.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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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3월 12일 열리는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양자경이 주연한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이하 <에에올>)가 감독상, 여우주연상, 남우조연상 등 모두 11개 부문 후보로 올랐다. 세상의 관심사는 말레이시아 출신의 양자경이 아시아인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거머쥘 수 있을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1억의 베트남 사람들에게는 각기 다른 작품으로 남녀조연상 후보에 나란히 오른 두 명의 베트남계 배우들의 수상 여부가 최대 관심사다.

베트남 사상 최대 흥행을 하고 있는 영화 / 영화 공식 포스터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키 호이 콴(Ke Huy Quan)은 영화 <에에올>에서 양자경의 남편역으로 인상적인 연기를 펼치며 관객과 평단 모두의 러브콜을 받았다. 이에 더해 그는 지난 1월 80회 골든글러브 남우조연상을 포함해 크고 작은 영화제에서 이미 40차례 수상했다. 이번 아카데미에서의 수상 역시 기대되고 있다. 40대 이상의 한국인이라면 추억의 영화 <구니스>, <인디아나 존스 2>에 출연했던 동양인 꼬마 아이를 기억할 텐데 키 호이 콴이 바로 그 아역 배우이다. 키 호이 콴은 전 세계적으로 흥행한 영화에서 아역 스타로 데뷔했지만, 1980~1990년대 아시아계 배우가 마땅히 설 자리가 없었던 할리우드에서 배우로 활동할 기회를 잡지 못했다. 배우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조감독, 무술 연기 지도자로서 영화계의 인연을 붙잡고 있었다. 그러다가 아시아계 감독과 배우들만으로 이뤄진 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이 3주 연속 북미 박스 오피스 1위를 하고 제작비의 7배에 달하는 2억달러의 수익을 거두며 대흥행을 하는 것을 보고 용기를 얻어 다시 영화계에 데뷔했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영화 <더 웨일>로 이번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홍 차우(Hong Chau)는 이미 몇 년 전부터 할리우드에서 실력파 배우로 인정받는 명배우다. 2018년 영화 <다운사이징>으로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으며 75회 골든글로브 여우조연상 후보와 미국배우조합상(Screen Actors Guild Awards)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이번 아카데미상 3개 부문에 후보를 올린 <더 웨일>과 함께 1년 사이에 연달아 개봉한 영화 <더 메뉴>(2022), <쇼잉 업>(2022)에서 모두 인상 깊고 매력 있는 조연을 펼쳐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고 있다. 말 그대로 요즘 할리우드에서 가장 잘나가는 배우다. 훌륭한 작품과 명품 연기에도 불구하고 유력한 여우주연상 후보와 남우조연상 모두 아시아인인 데다 2022년 아카데미에서 한국의 윤여정 배우가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터라 텃세 심한 아카데미가 여우조연상까지 2년 연속해 아시아인에게 줄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연달아 상영 예정인 홍 짜우의 작품들과 그 연기력을 감안하면 조만간 다시 한 번 아카데미에서 수상 경쟁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키 호이 콴과 홍 차우의 삶은 그들이 출연한 영화만큼이나 극적이다. 두 사람 모두 전쟁 직후 베트남을 탈출한 피란민 출신들로, 키 호이 콴은 1978년 여섯 살 때 가족이 베트남을 탈출해 말레이시아, 홍콩 피란민수용소에 지내다 미국으로 옮겨가 정착했다. 홍 차우의 부모는 1979년 베트남을 탈출해 태국 피란민수용소에서 홍 차우를 낳았고, 이내 미국으로 옮겨갔다. 목숨을 걸고 탈출한 피란민들이 미국 최고의 영화배우들이 된 것 자체가 대단한 드라마다. 그런데 필자는 이들의 드라마와 같은 인생보다는 선진국에서 거주하는 개발도상국 출신 이민자들의 성공을 통해 해당 국가들의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더 흥미롭다. 개도국 출신 이민자들의 성공적인 정착과 해당 개도국의 발전 가능성에 대한 연관 관계나 특별한 이론을 통해 증명된 것은 아직 없어 보인다. 하지만 힘겨운 이민 생활이라 하더라도 한국인, 중국인, 인도인들처럼 특정 국적의 이민자 중에는 미국처럼 좋은 사회경제 환경과 능력에 따른 기회가 주어졌을 때 사회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선진국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특정 개발도상국 출신 이민자들의 모습을 통해 해당 개발도상국의 발전 가능성을 가늠해볼 수 있다.

할리우드에는 키 호이 콴이나 홍 차우 이외에도 인기 영화에서 훌륭한 역을 소화하고 있는 배우들이 꽤 있다.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 조연과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의 주인공 켈리 마리 트랜(Kelly Marie Tran)이 우선 떠오른다.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 조연과 베트남 영화 사상 처음으로 미국에서 개봉한 <퓨리에>의 주인공 베로니카 응오(Veronica Ngo)도 있다. <엑스맨: 아포칼립스> 조연과 넷플릭스 시리즈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의 주인공 라나 콘도르(Lana Condor) 역시 명배우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 속에서 자신의 능력을 펼치고 있다.

제 76회 영국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로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Hong Chau / tomandlorenzo.com



베트남 영화계도 든든한 한국 자본과 기획력을 바탕으로 훌륭한 성과를 내고 있다. CJ ENM이 제작한 <냐 바 누>(Nha Ba Nu·누의 가족)가 베트남 영화 사상 최고의 흥행 기록을 세우고 있다. 이 영화는 2월 17일 현재, 개봉 24일 만에 4500억동(약 250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4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고 있다. 3월 3일 CJ엔터테인먼트 배급을 통해 미국 캘리포니아주, 텍사스주, 애리조나주, 플로리다주 등에서 개봉했다. 이 영화는 베트남 영화사에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그간 베트남 영화 흥행 기록 대부분을 차지하던 할리우드 영화들의 흥행 기록을 모두 깨뜨렸다는 것과 그간 역대 흥행 베트남 영화의 대부분은 한국 영화의 리메이크작이었는데 이번에는 순수한 토종 베트남 콘텐츠라는 점에서다.

베트남 본연의 이야기로 사상 최고 흥행 기록을 세운 게 처음은 아니다. 2021년 12월 개봉한 <보 지아>(Bo Gia·아빠 미안해)는 4269억동(약 235억원) 매출을 기록하며 베트남 영화로는 사상 처음으로 관객 400만명을 동원했다. 당시 베트남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1년 넘게 지속된 ‘상영과 운영 금지’가 풀린 직후여서 관객들이 영화에 굶주려 있었다. 게다가 스크린에서 경쟁할 할리우드 대작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훌륭한 흥행 성적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했다. 이번에는 세계적으로 흥행 돌풍을 일으킨 수많은 할리우드 대작이 상영되는 와중에 베트남 영화가 사상 최고의 흥행 성적을 거두었다. 작년 흥행 대작 <보 지아>의 주인공 쩐 탄(Tran Thanh)이 이번 <냐 바 누>에서도 주인공을 맡았다.

세계적으로 K콘텐츠가 대유행이지만 머지않아 V콘텐츠가 유행할지도 모르겠다. 한국의 자본력과 기획력이 베트남계 할리우드 배우들과 베트남 현지의 감성 넘치는 배우들을 만나 함께 큰일을 저지르기를 가슴 벅차게 기대해본다.

호찌민 | 유영국 「왜 베트남 시장인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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