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장·야간·휴일근로 가산수당 대신 근로시간 저축해 장기 휴가?

김현주 2023. 3. 7.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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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차도 제대로 못 쓰는 마당에" 회의론도
2021년 기준 연차휴가 소진율 76.1% 불과
연합뉴스
 
정부가 6일 발표한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안은 1953년 근로기준법 제정 후 70년 간 유지돼 온 노동시장의 틀을 근본적으로 바꾼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현재의 '1주 12시간 연장근로'라는 획일적, 경직적 규제는 과거 공장제 기반의 제도로 기술·산업구조의 변화, 다양·개별화된 근로자의 수요 등 시대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게 정부 측 설명이다.

이에 따라 '1주 12시간'이라는 칸막이를 제거해 주 평균 또는 총량 준수 방식으로 근로시간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면서 근로자의 건강권을 강화하고 휴가를 활성화하는 내용이 이번 개편안에 포함됐다.

현재는 '주 52시간제'의 틀에 갇혀 일이 많을 때 집중적으로 일하거나 일이 적을 때 충분히 쉬는 데 한계가 있다. 1주일 최대 52시간 근무만 허용되는 상황에서는 실제로는 더 일해놓고 '주 52시간' 근무에 상응하는 임금·수당만 받는 불합리한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이에 정부는 '11시간 연속 휴식' 여부에 따라 일주일에 최대 69시간 또는 64시간 일할 수 있게 하면서 집중적인 근로를 장기 휴가 등으로 보상받을 수 있도록 했다.

휴가 활성화의 중심에는 근로시간 저축 계좌제 도입이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후보 시절 공약이기도 한 이 제도는 연장·야간·휴일근로를 적립해 휴가로 쓸 수 있도록 한다. 즉 현행 근로기준법은 연장·야간·휴일근로에 대해 가산수당 지급을 원칙으로 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보상을 현금뿐 아니라 미래의 휴가(저축휴가)로도 받을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사업장에 이 제도를 도입하려면 사업주와 근로자 대표 사이 서면 합의가 필요하다. 근로자는 연장·야간·휴일근로에 따른 보상으로 임금 또는 휴가를 적립할 수 있다.

저축계좌에 적립된 휴가와 연차휴가를 붙여 사용하면 '제주 한 달 살기' 같은 장기휴가나 자격증 취득 등을 통한 자기 계발이 가능해진다.

근로시간 저축 계좌제는 근로기준법 제57조에 규정된 보상 휴가제를 대체·강화하는 것이다. 현행 보상 휴가제는 구체적인 운영 기준이 없어 2021년 기준 도입률이 5.1%에 불과하다.

근로자는 적립한 '저축 휴가'를 원하는 시기에 사용할 수 있다. 다만, 저축 휴가 사용이 사업에 막대한 지장을 미치면 사업주가 사용 시기를 바꿀 수 있다.

하지만 근로자들 사이에서는 '연차휴가도 제대로 못 쓰는 마당에 저축휴가를 어떻게 쓸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반응도 나온다.

실제로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근로자의 연간 휴일·휴가 일수는 82∼92일로 주요국(80일 내외)과 비교해 오히려 약간 많은 편이지만, 2021년 기준 연차휴가 소진율은 76.1%에 불과하다. 근로자들이 연차휴가를 다 쓰는 기업은 40.9%에 그친다.

민주노총은 이날 낸 논평에서 휴가를 활성화해 휴식권을 보장한다는 방안에 대해 "만성적인 저임금 구조에서 노동자들이 스스로 건강에 해가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연장근로와 잔업을 거부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말장난에 불과하다"라고 비판했다.

이런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는 근로시간 저축 계좌제 도입에 더해 근로자들이 눈치 보지 않고 휴가를 갈 수 있도록 단체 휴가 등 사용 활성화 대국민 캠페인도 벌일 예정이다.

중장기적으로는 연차휴가 개편도 검토하기로 했다. 연차휴가는 해마다 종업원(근로자)에게 주도록 정해진 유급 휴가다.

이처럼 연차휴가가 근로자에 대한 사업주의 금전 보상과 연계되면서 근로자가 충분히 쉴 수 있는 문화가 형성되지 못한 측면이 있다. 이에 정부는 휴식을 취하는 것이 근로자의 기본권이라는 전제하에 연차휴가를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지 검토할 방침이다.

일각에서는 기본급이 적은 가운데 1.5배 할증 임금이 적용되는 연장근로를 임금이 아닌 휴가로 보상받게 되면 근로자의 소득이 줄어들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정식 노동부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이와 관련한 질문에 "(사업주에게) 1.5배 할증 임금이라는 경제적 강제가 가해져 (근로자의) 실노동 시간을 줄일 수 있게 된다"며 "임금체계 개편에 대해서는 별도의 상생임금위원회에서 구체적 논의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답했다.

정부는 '공짜 노동' 주범으로 꼽히는 포괄임금제 오남용 근절에도 총력을 기울일 계획이다.

이정식 노동부 장관(사진 왼쪽)은 이날 "포괄임금 오·남용을 근절해야 기업이 근로자들의 근로시간을 비용으로 인식하게 된다"며 "포괄임금 오남용 근절이 가장 확실한 근로시간 단축 기제"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현재 포괄임금 오남용을 근절하기 위한 기획감독을 실시 중이다. 조만간 별도 근절 대책도 발표할 예정이다.

업무상 질병으로 이어질 수 있는 야간 근로를 줄이기 위해 올해 하반기에는 '야간작업 건강 보호 가이드라인'도 제작·보급하기로 했다.

아울러 고소득·전문직에 대해서는 근로시간 제도 적용에서 예외를 인정하는 방안을 연구하기로 했다. 의사나 변호사 같은 고소득·전문직은 근로시간과 성과의 연관성이 낮고 재량이 광범위하게 인정된다는 점을 고려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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