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만에 한일경제 정상화] 정부 `대승적 결단` 자평했지만… 日 성의있는 후속조치 관건
日정부 반성·사죄도 시큰둥
윤석열 정부가 6일 4년 4개월을 끌어온 일제 강제동원(징용) 피해자 배상을 '제3자 변제방식'으로 마무리했다.
정부는 대승적 결단으로 '고르디우스의 매듭'(해결하기 어려운 복잡한 문제)을 풀었다고 자평했으나 일본 측의 시원찮은 호응과 남아 있는 수출규제 협의, 피해자와 유가족 등의 반발까지 새로운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만들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이날 외교부 브리핑룸에서 일제 징용 피해자들에게 제3자를 통한 배상금 변제 방안을 공식 발표한 뒤 "고령의 피해자를 위해 정부가 책임감을 갖고, 과거사로 인한 우리 국민의 아픔을 적극적으로 보듬는 조치"라며 "엄중한 국제 정세 속에서 장기간 경색된 한일관계를 더 이상 방치하지 않고, 한일간 갈등과 반목을 넘어 미래로 가는 새로운 역사적인 기회의 창을 열었다"고 평가했다. 우리나라의 높아진 국격과 국력에 걸맞은 결단이라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정부는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을 통해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은 피해자 15명에게 약 40억원 상당의 판결금과 지연이자를 지급하고, 현재 계류 중인 강제징용 관련 여타 소송이 원고 승소로 확정될 경우에는 역시 같은 방식으로 배상금을 지급할 예정이다.
재원은 민간의 자발적 기여 등을 통해 마련하고, 향후 재단의 목적사업과 관련한 가용재원을 확충한다는 방침이다. 국내 기업 중 포스코를 비롯해 한국도로공사, KT&G, 한국전력, KT 등 16개 국내기업이 재원 출연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 해법이 '반쪽짜리'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피고기업인 일본의 미쓰비시중공업과 일본제철은 공식적으로 재단 출연에 참여하지 않았다. 한국 전국경제인연합회와 일본 게이단렌(경제단체연합회)이 조성하기로 한 '미래청년기금'(가칭)에 참여할 가능성은 열려있다.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일본 기업의 자발적 한국 재단 기부를 용인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이 나오자 "이번 한국 정부가 발표한 조치는 일본 기업의 재단에 대한 거출 등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다만, "정부로서는 민간인 또는 민간 기업에 의한 국내외의 자발적인 기부 활동 등에 대해서는 특별한 입장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했다.
박 장관은 기자회견 후 "이번 배상안이 '반쪽자리'라는 비판이 있다"는 지적에 "동의하지 않는다. 물컵에 물이 절반은 찼다고 생각한다"며 "일본의 성의있는 호응에 따라서 물컵은 더 채워질 것"이라고 답했다. 박 장관은 이어 "경색된 한일 관계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정부의 대승적 결단에 대해 일본 측이 포괄적 사죄, 기업의 자발적 호응을 기대한다"고 했다. 결국 일본의 선의에 기대는 것 외에는 한국 정부와 기업이 오롯하게 배상 책임을 물게 된 셈이다.
일본 정부의 반성과 사죄도 뜨뜻미지근하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이날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역사 인식에 관해서는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해 왔고, 앞으로도 적절하게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 식민 지배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라는 표현이 담긴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 등을 계승하겠다는 것으로 사죄와 유감 표명을 갈음하며 최소한의 성의만 표한 것이다.
징용 해법이 마무리된 뒤 일본 측이 한국에 대한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를 해제하고 화이트리스트(수출관리 우대국 명단)를 재지정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으나 한일 양국은 세계무역기구(WTO) 분쟁 절차를 중단하고 수출규제 협의를 재개하는 선까지만 합의했다. 햐야시 외무상은 수출규제와 관련해 "안보 관점에서 수출관리를 적절히 시행한 것"이라며 "노동자(강제징용) 문제와는 별개"라고 분리했다. 이어 "한국이 시작한 WTO 분쟁 해결 프로세스의 중단을 포함해 한국 측에 적절한 대응을 촉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피해자·유가족 단체를 설득해야 하는 과제도 남아 있다. 피해자 측 대리인단은 "정부의 강제동원 해법은 식민지배의 불법성과 전범기업의 반인도적인 불법행위에 대한 배상책임을 인정한 2018년 대법원 판결을 사실상 무력화하는 것"이라며 "(정부가) 일본 정부에게 저자세로 일관해 일본의 사과도, 강제동원 문제에 대한 일본의 그 어떤 재정적 부담도 없는 오늘의 굴욕적인 해법에 이르렀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피해자 15명 중 생존자 3명 모두가 정부의 해법에 반대 의견을 냈다고 전했다.
여론이 계속 악화할 경우 윤 대통령의 방일과 한일정상회담 성사에도 악재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번 해법을 계기로 한일 관계가 정상화 궤도에 오를 경우 이르면 이달 하순 한일정상회담이 성사될 것이라는 예측이 있었으나 현 상황으로는 여의치 않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양국 한일 정상회담은 아직 논의를 시작하지도 않았다"며 "양국 정상이 한일정상회담을 위해 서로 오고간 것이 중단된지 12년이 지났다는 것을 양국 정부가 직시하고 있다. 필요하다면 (정상회담 관련) 논의를 할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언급했다.
김미경기자 the13ook@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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