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정부가 고향기부제 활성화 막아

한겨레 2023. 3. 6.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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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안부의 기부 플랫폼 독점
‘고향사랑e음’ 모바일 누리집 갈무리.

[왜냐면] 정법모 | 부경대 국제지역학부 교수

올해 본격적으로 시행한 고향사랑기부제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내가 사는 지역을 제외한 어느 지자체에도 기부할 수 있고, 기부한 금액으로 지자체의 숙원사업과 다양한 공익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 특히 인구소멸 지역에는 관계인구를 활성화해 전입을 유도할 수 있기 때문에 가뭄에 단비 같은 역할을 할 것이다. 기부자에게는 10만원까지 전액 세액 공제가 되며, 이에 더해 3만원 상당의 답례품도 받을 수 있어 일석이조다. 시행한 지 얼마 안 됐지만 많은 이들이 기부에 동참하는 이유다.

그러나 제도 운용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기부금이 지나치게 답례품 홍보에만 집중돼 있어 제도의 취지가 무색해 보이기 때문이다. 기부금의 특성상 사용처는 매우 중요하다. 고향기부금은 지역 활성화와 주민 복리 증진에만 사용하도록 시행령에 명시돼 있다. 그러나 행정안전부에서 운영하는 고향기부 플랫폼 ‘고향사랑e음’(ilovegohyang.go.kr)에는 답례품 목록만 있고, 모은 기부금을 어디에 어떻게 쓸지 계획이나 정보를 찾아볼 수 없다. 국내외 기부전문가들은 기부금을 어떻게 쓰는지 기부자에게 실시간으로 알려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기부금을 불투명하게 집행한다는 인식이 커지면 기부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커져 기부 시장 전체에 악영향을 준다. 정부가 법을 만들어 운용하는 고향기부제라고 다르지 않다.

기부금의 용처를 기부자가 확인할 수 있으면 신뢰를 바탕으로 기부할 수 있다. 그것이 ‘지정기부’다. 공신력 있는 기부단체들은 기부자에게 기부금을 어떻게 쓸지 지정기부로 알린다. 많은 기부금을 모으기 위해서도 이는 무척 중요하다. 기부자에게 기부실천의 감동과 경험을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기부금이 무엇을 바꾸고 변화시킬지 직접 확인하는 것만큼 효과적인 것은 없다.

우리보다 15년 먼저 고향기부제를 시작한 일본은 지난해에만 8조원의 기부 시장을 형성했다. 적극적 행정 지원과 창의적 답례품, 민관협업이 성공 이유로 꼽힌다. 그리고 국민의 적극적 참여로 연결할 수 있었던 비결 가운데 하나가 사용처를 사전에 명시하고 투명하게 집행한 것이다. 기부자는 기부 지역을 답례품을 보고 결정하기도 하지만, 기부금을 사용할 지역개발, 복지, 재난 구호 등 내용을 보고 선택하기도 한다. 일본의 고베시는 2020년부터 코로나로 인해 타격을 입은 학생들을 지원하는 ‘고베 학생지원 응원 조성’ 사업에 고향기부금을 활용했다. 취약계층 학생들에게 경제적 지원을 하거나 식량과 마스크를 지급한 것이다.

고향기부금은 일반 세금으로 해결할 수 없는 여러 지역사회의 문제에 보다 효과적이고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후쿠시마현 야부키초는 농자재 비용 급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가를 지원하고 있으며, 이와테현 리쿠젠카타시는 시 브랜드 쌀을 답례품으로 제공하며 모금액으로 결식아동을 지원하는 ‘어린이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을 기부를 시작할 때 지정기부 형태로 기부자에게 투명하게 공개한다. 고향기부제에 대한 호응도가 높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에 반해 우리는 어떨까? ‘고향사랑e음이 답례품 쇼핑몰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지자체 관계자들은 기부자의 공감을 얻기 위해 지정기부를 하고 싶어도 고향사랑e음 시스템 안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행안부는 “올 한해는 우선 지켜보자”는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얼마 전 강원도 양구군은 한 민간 플랫폼 업체와 협업해 지정기부를 진행했다. 이마저도 행안부의 제재로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중단하고 말았다. 지정기부에 대한 지원 계획도 없이 행안부가 지자체의 지정기부 노력마저 막는 조치는 이해할 수 없는 행태다. 정부는 오히려 지정기부를 권하고 도와야 한다. 성공적 고향기부제 정착을 위해 정부의 전향적 방향 전환이 시급해 보인다.

그 방향은 두 가지다. 첫째, 행안부가 독점한 고향기부 플랫폼을 열어 지자체와 민간이 더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둘째, 지자체가 민간과 협업해 지정기부를 적극적으로 해나갈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이것이 고향기부금의 투명성을 높이고 기부금을 증대해 장기적으로 지역 발전에 도움이 되도록 이끄는 가장 효과적 방법이다. 정보 보호나 관리 등을 이유로 고향기부제 자체의 취지를 살리지 못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일이다. 기술적 문제는 속히 보완해 해결하되, 지역문제 해결이나 관계인구 확대 등 원래 이 제도가 달성하고자 하는 취지가 절차에 묻혀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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